인천의 공연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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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나무 기태인 대표 인터뷰
“눈높이를 낮춘다는 건 소통할 준비를 한다는 거예요”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공연콘텐츠 강화,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교류 활성화, 지역 우수 공연프로그램 향유 기회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극단 나무는 서구문화회관의 상주단체로서 환경이란 대주제와 “세상의 중심에 어린이가 있다”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하는 어린이연극 전문단체이며, 8월 11일 <이야기 하루>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극단 나무의 사무실을 찾아가 기태인 대표를 만났다. 공연소품들로 붐비는 공간에서 공연준비가 한창이었다. 인터뷰 중에서도 언급되지만, 기태인 대표가 말하는 환경은 자연적 조건이기도하고 우리를 둘러싼 형편이기도하다. 훌륭한 어른이 반드시 훌륭한 성장환경을 의미하는 게 아니듯, 훌륭한 공연이 반드시 훌륭한 준비환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공연 뒤에는 언제나 관객이 볼 수 없는 불투명한 영역이 있다. 무대를 본다는 게 어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면, 무대의 밖을 본다는 건 아이를 둘러싼 환경들을 보는 것이다. 전자는 우리에게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후자는 뼈아픈 질문들을 동반한다. 아마 후자의 물음들을 전달해주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게 본 인터뷰 연재가 해야 할 역할이지 않을까 한다. 기태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 상주단체로 참여하고 계신다. 극단 나무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극단 나무는 2006년에 인천에서 처음 창단해서 이제 11년 차에 들어서는 연극 단체입니다. 어린이연극을 중점으로 두고 창작극을 만들고 있어요. 주로 가족단위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죠. 기본적으로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멋지게 발휘해보자, 특히 어린이들에게. 이런 모티브로 시작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스무 살 때부터 배우를 했었는데, 지역에서 괜찮은 극단을 만들어 보리라는 야심찬 생각에 소속되어있던 극단을 뛰쳐나왔죠. 당시 제가 속해있던 극단 대표님께 “대표님 저도 대표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래? 10년만 버텨라. 그럼 뭔가 길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넌 10년 안에 관둘 것이다. 배우가 무슨 대표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지역에 와서 극단을 만들고 공연을 하다 보니 벌써 11년차에요(웃음).

Q. 그래서 길이 보이셨어요?
길은 애초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젊을 때 그런 거 꿈꾸잖아요. 대박치리라! 그런데, 어떤 일이라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건 절대 없는 거 같아요. 단지, 제가 위로 받는 건 딱 한가지죠.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있구나.

Q. 어린이연극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0년대 초반에 일본 유학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의 대표 어린이연극 극단 가제노꼬 큐슈와 협업을 했었어요. 일본은 학교로 찾아가서 하는 공연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두어 달 정도 일본의 학교들을 돌면서 공연을 했는데, 한번은 나이 드신 노배우 분이 눈물을 보이시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거기가 그분이 젊었을 때 공연했던 곳이었데요. 그때 연극을 보고 편지를 써줬던 꼬마가 선생님이 되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그 분을 다시 만나러 왔다는 거에요. 소름이 돋더라고요. 아 이거구나! 단순한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매김하는 거구나. 그 꼬마의 눈에 비췄던 젊은 배우의 모습, 그리고 중년이 된 멋있는 노배우의 모습. 저런 사람이 돼야지. 그때 어린이연극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의 중심에 어린이가 있다”라는 저희 극단의 중심 모티브도 거기서 만났던 연출가 나카지마 켄이라는 분에게 선물 받은 거예요.

Q. 우리나라에는 어린이연극을 하는 극단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싶다.
우리나라에는 90년대 초중반에 어린이연극 붐이 일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앞장섰던 게 ‘사다리’라는 극단이었는데, 그 팀을 통해서 어린이연극도 이렇게 되어야하는구나 배웠죠. 사실, 그 전에 어린이연극이라 하면 대학로에 있는 배우들의 아르바이트거리였거든요. 오전에 어린이연극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저녁때는 제대로 된 극을 하리라, 그런 거였죠. 그러던 중 90년대부터 어린이연극을 하나의 예술장르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죠. 그리고 그게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면서 괜찮은 극단들이 많이 생기고, 어린이연극을 폄하하는 시선이 많이 없어졌어요. 인천에서 어린이연극 극단으로는 아마 저희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부모님들도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연극을 보여주려 하고, 그러다 보니까 극단들의 자생력도 많이 생겼죠. 또 한편으로는 문화예술교육사 같은 사업들도 많이 열려있어서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도 새롭게 재기되었어요. 저는 여기에 전문성이 있어야한다고 봐요. 무대에 많이 선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듯이, 어린이연극도 많이, 그리고 오래 한 사람들이 더 전문적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거예요.

Q. 8월 11일에 <이야기 하루>라는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데,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다.
생이란 이야기를 해보자. <이야기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 작품이에요. 정말 다양하고 천차만별의 인생들이 있지만 그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같은 크기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주마등’이라는 걸 초점으로 잡고 ‘하루’ 할아버지의 인생을 거꾸로 추적해가는 과정을 들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여기서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 과정들의 끝엔 커다란 선물이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건 공연을 보셔야 알 수 있겠죠?(웃음) 아무튼, 할아버지의 기억 조각들을 수집하면서, 우리 할아버지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라는 걸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또 동시에 우리 인생에 있어서 앞으로 겪게 될 일들, 당시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소중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관객 분들이 이 작품을 처음 만나면 좀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이게 어린이연극이에요?”라고 물어보기도 하죠.

Q. 아이의 수준에 맞춘다는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어찌됐던 지금 우리는 그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으니까 말이다.
저는 어려워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에요. 모든 게 다 읽히면 재미가 없죠. 어찌되었건 아이의 ‘물음표’가 나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는 엄마한테 물어보겠죠. “저건 뭐 하는 거야?” 엄마가 답을 해줘도 아마 잘 모를 수도 있어요. 다만, 그 아이가 커서 “아 그게 이런 거였구나.”라고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게,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뭔가를 다 알려주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 거 있잖아요. 유치한. 이런 친절함이 아니라 다른 장치들을 두자는 거예요. 중요한건 우리가 너희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Q. 재활용품을 이용한 레퍼토리공연이 많은 것 같다. 환경과 아이가 함께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사실, 아이와 환경의 연계성을 의도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환경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잖아요? 이놈에 미세먼지!(웃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이연극을 하다 보니 환경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말하자면, 소 뒷걸음질하다가 만난 친구랄까? 다른 이유도 있어요. 사실 환경은 자연 환경도 있지만, 사회적 환경이란 것도 있잖아요? 2006년 극단을 창단할 무렵 인천에 내려왔는데, 가진 거라곤 자신감과 용기밖에 없는 젊은 배우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재활용품이죠. 그래, 이걸로 한 번 해보자. 이걸로 비주얼을 만들어보자, 분명 환영이 생길거야, 사람들은 이 재활용품이 갖고 있는 영혼을 믿게 될 거야, 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렇게 몇 년 하고나서 보니까 환경이란 주제와 친숙해진 거예요. 저희 작품 중에 <로봇 폐품>과 <신문지 주라기> 등이 그런 작품들이에요. 박스가 로봇이 되고, 신문지가 공룡이 되는, 물론 그 안에선 배우들이 연기를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Q.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다. 올해 검단복지회관에서 서구문화회관으로 상주공연장을 옮기셨다. 비교적 큰 중대형 공연장으로 온 것인데, 무대 규모에 부담은 없으셨는지 궁금하다.
우선, 기존의 저희 작품들이 큰 규모의 무대에 맞춰 만든 공연들이 아니기 때문에, 무대가 확장되어 생기는 문제들이 있을거라 생각해요.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들도 보일 거고, 공백들도 생기겠죠. 무엇보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볼 때 생기는 문제들이 있어요. 그것들은 무조건 해결해야 될 것들이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뭐냐면 무대그림을 만드는 것에요. 사실 이건 정말 하고 싶었던 거예요. 검단복지회관도 물론 소극장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긴 하지만, 이건 대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걸 시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긴 해요. 무대도 커지고, 시설도 좋아지고, 이런 부분들은 예술가로서는 누구나 한 번씩 해보고 싶은 거 아닌가요? “여기가 내 극장이야!” 이런 자랑 같은 거 말이죠.(웃음)

Q. 올해가 벌써 반이나 지났다. 올해 본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장점이나 보완점이 있다면?
상주사업이라는 게 예술단체 입장에서는 분명 메리트가 있죠.  예산을 지원해주면서 예술단체의 프로그램 창작도 보장해주고, 게다가 공연을 올릴 극장까지 제공되니까 말이에요. 이 부분을 잘 활용하면 좋은 시너지가 날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사실 이건 저희가 상주하고 있는 공연장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공연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가든 그 공연장만의 세팅이 되어 있어요. 예컨대, 조명으로 치면 여기는 사회자, 저기는 단상을 비추는 그 공연장만의 조명 세팅 같은 거 말이죠. 그렇게 세팅되어 있는 조명 기구들을 흐트러트릴 수가 없어요. 공연장 입장에서는 그 다음날도 행사가 잡혀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까 조명에 뽀얗게 먼지가 쌓여요. 모종의 관성 같은 게 공연장에 있다는 거죠. 그걸 거스르면 큰일 날 것 같은. 공연장은 그 공연장만이 가질 수 있는 구조와 느낌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예술단체가 공연장과 만나면서 그런 것들을 함께 찾아가고자 실험하고 고민하는 건데, 그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고민과 어려움들을 서로 얼마나 나누느냐에 따라 그 다음 스텝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건데 말이죠.

Q. 앞으로의 활동계획과 함께, 극단 나무의 공연을 관람하러 올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저희가 서구문화회관에 오게 될 때 얼마나 흥분했는지 몰라요. 드디어 대극장에 가는구나! 앞서 말씀드렸던 <신문지 주라기>를 무대 위로 올리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에요. 이게 사실 거리 공연이거든요. 저희는 이게 인천만이 갖고 있는 그런 작업 중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좀 더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터클한 그런 공연을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이기도 하고요. 신문지로 만든 밸로시랩터(‘날쌘 도둑’이란 뜻으로 재빠른 몸놀림을 가진 공룡)가 무대 위를 뛰어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이 공룡 엄청 좋아하잖아요. 관객 분들께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저희가 무대에 서는 목표는 정확해요. 박수 받으려고요. 박수 많이 쳐주세요. 커튼콜 할 때 한 열 번은 왔다 갔다 하고 싶어요.

 

글, 인터뷰 정리/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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