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7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들이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7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 분들을 소개합니다.
김홍기
미술비평가, 번역가, 미학 연구자. 동시대 작가, 작품, 전시, 담론에 대한 글을 쓴다. 또한 미술과 철학 분야 해외서적을 번역하며, 개인적으로 매체미학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김홍기는 오늘날 미술의 이론과 실천이 간직한 동시대적 징후를 수집하며, 발터 벤야민, 질 들뢰즈,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자크 데리다, 조르조 아감벤, 장-뤽 낭시 등이 개진한 현대철학의 논의를 주된 이론적 참조로 삼아 다분히 무질서해 보이는 동시대미술을 관통하는 공통의 개념들을 모색하고 있다. 입주 기간에 김홍기는 비디오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시간의 감속과 사건의 지연이 지니는 미학적, 정치적 의의를 밝히는 작업을 수행할 계획이다.
“다가올 해방의 유토피아를 앞당기는 가속과 진보의 시간관으로 대표되는 지난 세기의 아방가르드와 달리, 다가올 파국과 디스토피아를 지연시켜야 하는 오늘날의 예술적 실천이 갖춰야 할 에토스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연계의 (불)가능성_동시대 미술의 범주들(2016) 중 일부]
20세기 후반기는 아마도 온갖 종류의 종말론에 시달린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예술계에서는 회화의 종말, 모더니즘의 종말, 더 나아가 예술의 종말이 거론되었고, 정치경제 분야에서는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로 역사의 종말까지 회자되었던 것이다. 1999년 말 불어닥친 밀레니엄 버그 소동은 이 모든 사망선고로 인해 증폭된 불안이 응집되어 나타났던 민망한 해프닝이었다. 시간은 인간의 호들갑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페이스를 유지하며 흘러갔고 우리는 어느새 21세기의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내고 있다. 알다시피 거의 모든 것이 종말론의 저주에 희생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회화와 조각부터 뉴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택해 다양한 양식을 구사하며 활동하고 있고,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는 유예되고 갈등과 반목의 역사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우후죽순 생겨났던 종말론들은 그저 세기말이면 한차례씩 휩쓸고 지나가는 주기적인 열병으로만 여겨야 할 것인가? 미술계와 관련하여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리오타르의 말처럼 거대서사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모더니즘이나 리얼리즘이나 또는 그 외의 다른 어떤 담론도 그 자체로 유효성을 상실하진 않았지만, 이제는 그중 어느 것도 거대서사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예술을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한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 실각한 것이다. 위계와 기준을 세우는 거대서사가 신용을 잃자 그 자리엔 숱한 담론과 실천이 각각 작은 서사로서 평등한 권리를 갖기 시작한다. 리오타르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포스트모던한 상황”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미술을 총체화하고 정돈할 아무런 규정도 없는 이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이란 그저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이라는 다소 중립적인 명칭에 합의하는 것뿐이다.
* 이 글은 2016년 12월에 발행된 New.In.Paper NIP(newinpaper.com) 프로젝트에서 발표된 글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