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게임 속의 당신, 개인에게 잘못을 탓하지 말길, 작가 ‘조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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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게임 속의 당신, 개인에게 잘못을 탓하지 말길, 작가 ‘조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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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직장에 출근한지 몇 달 안 됐을 무렵, 수많은 일들과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허둥지둥 손과 발을 움직여 헤엄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상한 상황이라 사표를 내고 싶었지만, 오히려 나는 나약한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 상황들 속에 버티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고, 나를 화나게 만든 상황들에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조직 앞에서 다시 굴복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까지는 낯선 상사가 한마디 건넨다.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마.” 그것은 어떤 것보다도 큰 위로이고, 한편으로는 해답 없는 막연함이었다. 조원득 작가에게 그 위로를 다시 받는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지 9개월 정도 됐다. 입주 기간 동안 해온 일들, 그리고 지내온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심정이 궁금하다.
A. 그동안 개인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업해왔다면, 올해에는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고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예전 작품 ‘공동체’를 보면 공동체 속에서의 고통 받는 개인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그리는 방법적인 면에서도 예전에는 벗은 인체를 갖고 불안전하게 그리곤 했는데, 그것도 어쩌면 나름의 강박이었던 것 같다.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던 와중에 입주 기간 동안 나름대로 시도를 해서 자유롭게 그려봤고 개인전까지 열게 되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는 발전적인 일들이었다고 생각한다.전에는 혼자 그림을 그려왔다. 동문들 전시 정도에만 가고, 다른 학교에서 작업했던 작가들을 만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작가들의 뒤풀이에 가거나 교류하는 활동을 하지 않았고, 다른 작가들이 모여서 하는 그룹전의 경우에도 전시만 했지 작가들과 친해지고 작업에 대해 얘기하지는 않았다. 작가들과 이렇게 함께 기획(괘념미술 전에서는 평론가, 작가와 ‘아노님’으로 작업)하고 얘기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동안 정보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 쓴 적이 없었는데, 함께 입주한 최현석, 최선 작가 등이 지식적인 부분부터 미술을 하며 느꼈던 일 등 여러 가지 정보들을 공유해줘서 도움이 많이 됐고,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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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잘못된 게임’은 지난 작품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더 날것의 느낌이 든다. 그 날것의 끝(완성)을 어디로 보고 있는가?
A. 앞으로 더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 지금보다 거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뺄 수도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Q. 관심 있는 창작의 소재를 찾을 때, 보통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과 매체와 주변 등 간접적인 경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A. 둘 다 중요하다. 기사, 인터넷 사진 같은 것을 활용해서 거기에서 느끼는 특이한 감정을 그림에 담을 때도 있다. 인천에 살다가 아예 짐을 빼서 이사를 하면서 힘든 경험이 있었다. 계약 기간이 다 돼서 집을 빼야 하는데, 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얘기하자, 가족과 친구 등 친한 사람들조차 내가 그 사람에게 똑바로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고 트집잡는 거라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서 작업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또 10년 전에 본 ‘울 100%’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버림받은 자매가 주인공인데, 자매는 새벽마다 사람들로부터 눈에 띄지 않게 그림자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나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한다. 그리고 오뚜기 인형을 주웠다면, 깨끗하게 닦은 후에 그 모습을 공책에 그리고 이름을 짓는다. 나중에는 버려진 물건들을 너무 많이 모아서 집에서 넘칠 정도가 된다. 쓸모없는 것들이 버림받은 자매에 의해 닦아지고 이름까지 붙여지게 된다. 누군가에게 버려졌던 자매가 버려진 물건들을 모으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모으는 것과 같은 행위였을 테고, 나중에는 그것들을 불태우면서 극복하는 것으로 영화에는 나온다.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어떤 새로운 것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영화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서 언젠가 작업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스쳐지나가며 읽은 기사 속에서 느껴졌던 감정을 그릴 수도 있고, 방금 말했듯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것들을 갖고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경계를 두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Q. ‘잘못된 게임’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의 내용을 떠나서 전체적으로 꽉 막힌, 무엇인가가 얹힌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작품 한 점씩을 읽어보려고 하면 솔직히 굉장히 어렵다. 어떤 내용이 담긴 것 같기는 한데, 명확하게 작품의 내용이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직접적으로 내용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편인가?
A. 그렇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여러 방향으로 해석됐으면 한다. 감정이 뭉뚱그려진 점이 분명히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느끼기보다 그림을 보고 불편한 감정, 무서운 감정 등을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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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 속 자신의 생각을 쉽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에 반대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전시장에서 궁금해서 물어본다면 어떤 의도로 작업했는지에 대해 말을 안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굳이 보는 사람의 생각에 앞서 작가 자신의 생각을 먼저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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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에는 인체의 살이 보이는 작품이 더 강하고 잔인한 느낌이 들었지만, 작품을 보면 볼수록 ‘지리멸렬’ 작품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작품을 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A. 죽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사는 느낌일 수도 있고, 쉬고 싶은데 아침에 꾸역꾸역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 하는 느낌일 수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감정을 담은 것이다. 작품을 그렸던 당시에는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해서 오전에 일찍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느낄 때의 감정은 마치 (그림처럼) 불을 꺼야 하는데 수심이 깊을지 안 깊을지도 모를 물에 함부로 뛰어들 수도 없고,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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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에 약자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약자의 모습이 약자같지 않아 보이게 그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짐승 같은 어린 아이의 모습, ‘바르게 살자’ 돌 앞바닥에 앉아 있는 술 취한 노숙자 같은 남자의 모습, 옷을 벗은 여러 명이 테이블에서 무엇인가를 삼켜 먹듯 하는 모습들이다. 의도한 것인가? 길을 지나가다 소위 약자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무서워하게 되는데… 그것처럼 의도하여 표현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감정 속에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인가?
A. 나무 위 어린 아이의 그림을 보고 김홍기 평론가가 ‘약자와 동물의 폭력성을 연계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약육강식 작품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약자가 강자에게 항상 친절하게 웃으면서 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마치 강자인 것처럼 포장하며 살아가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의도와 의도하지 않은 것이 섞여 있다. 어린이의 눈빛이나 약육강식의 깃털은 의도한 것이고, 눈에서 불이 나는 노동자의 경우에는 무서워 보이기보다는 처절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바르게 살자’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인위적으로 거친 느낌을 주기보는 그들이 가진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다. 

Q. 언제부터 약자와 권력화 된 것들에 대한 반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는가?
A. 조교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교수들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느꼈었다. 당시에는 얼굴에 십 원짜리 훈장이 달린 ‘무조건 충성’이라는 그림으로 교수와 조교 간의 권력 관계를표현했다. 그때부터 사람들 사이에 작동하는 권력 관계에 관심을 가졌는데,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보통 그림을 그릴 때 나 자신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내가 속한 가장 작은 사회인 가족, 그 가족 속에서 느꼈던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의 힘, 남녀의 문제, 돈 있는 자와 없는 자 등에 대해 작업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회와 나에 대해 작업해왔고, 지금은 딱히 나로 한정짓기보다는 더 전반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Q.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그 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크게 반향을 일으키는 작업을 하기보다는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길 바란다. 다만 관객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이야기를 공감하고,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정도만 돼도 좋겠다. 앞으로 더 공부를 해서 발전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다른 작가들에게도 물어봤었는데 동양화라는 매체에 집착하는가? 아니면 작업 필요에 따라 매체와 범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가? 작가의 작업을 보면 유화의 느낌이 들 때도 있다.
A. 딱히 유화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최근에 서양화 붓을 썼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동양화 붓은 길어서 툭툭 치는 듯한 느낌이 나지 않아 서양화 붓을 쓰게 됐고, 많은 재료들 중에 표현하기에 느낌이 좋은 것을 선택해서 쓸 뿐이다.

Q. 전문적으로 예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 보이는데?
A. 그런 부분에 부담이 많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는 힘든 일이고 도전이다. 인천아트플랫폼에 들어오면서 입주 작가들에게 내 작업을 소개하는 플랫폼 살롱, 오픈스튜디오 등은 그래서 꽤 큰 도전이고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겪다보니 공포증은 조금씩 없어진 것 같아서 좋은 경험이었다.

Q. 내년도 계획에 대해 말해주면 좋겠다.
A. 아까 말했던 ‘쓸모없는 것’에 관한 작업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개인전을 위한 작업을 해볼 예정이다.

* 조원득 작가의 작업과 전시 소식은 페이스북과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홈페이지 : http://wondeuk.blogspot.kr


 
정리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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