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전(元雨田(1903~1970)은 인천 연극계의 할아버지라 불러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 비단 인천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연극사(演劇史)에도 큰 획을 긋는 인물이다. 지난날 몇 년간 인천 땅에서 활동했던 탓에 그냥 인천에서는 몇 줄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를 이르는 사람이 없다. 무대미술가였으니까 감독이나 배우처럼 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배경화(背景畵) 정도에 머물러 있던 당시 연극 무대 장치의 수준을 사실적, 입체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이 선구적 예술가에 대해 모두가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원우전은 원 인천 사람은 아니다. 1923년 창설된 서울의 극단 토월회(土月會)에서 무대미술가로 활동하던 사람이다. 그러던 원우전이 인천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토월회의 해산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토월회는 멤버의 정비, 분열, 해체, 재발족 등등의 곡절 끝에 1926년 2월 24일 제56회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산하는데, 그때 인천 태생으로 같은 토월회 멤버였던 유명 배우 정암(鄭岩)이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함께 인천행을 택한 듯이 보인다.
정암과 원우전은 인천에 오자마자 극작가 진우촌 등과 더불어 인천 최초의 연극단체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를 창설한다. 칠면구락부의 창설 연도가 1926년으로 인천시사(仁川市史)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그 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원우전은 인천에서 연극 활동을 하며 특히 어린이들을 좋아해서 소년소녀들의 아동극 지도나 무용 교습 외에도 제자를 두어 연기지도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중구 경동 ‘싸리재 일대 간판이 근대식으로 진화했다’는 고일(高逸) 선생의 증언인데, 그가 무대미술 솜씨를 상점 간판 제작에도 십분 발휘했던 모양이다.
정황으로 보아 그는 3~4년 가까이 인천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서울로 간 듯하다. 1930년대 초부터 서울에서의 그의 동태가 신문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연극 무대미술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선구자이면서 초창기 인천 연극의 개척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