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사회 속 존재의 이유 – 작가 손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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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픈 사회 속 존재의 이유 – 작가 손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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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정신 질병과 관련한 황당한 사건을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 등장하는 웃고 있지만 공포스럽고 괴기한 잭 니파이어의 얼굴은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폭력이라는 인간 감정의 양면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현대사회 속 우리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겉으로는 웃고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감정과 매일 싸우며 속으로 우는 사람들이 바로 현재인이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다. 동화 ‘파랑새’에서 꿈속에서 행복한 파랑새를 찾기 위해 막연히 길을 떠났지만 결국 찾지 못해 좌절했고, 결국 꿈속에서 찾지 못했던 파랑새는 현실 속 자신들의 새장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현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막연한 몽상을 꿈꾸는 현대사회 속 우리의 불안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오늘날 ‘파랑새 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고, 누구에게도 비난받고 싶지 않은 ‘착한아이 콤플렉스’도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에서 파생된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정신 질병으로 불린다.

이러한 질병들은 인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기계화, 도시화, 자본화된 현대사회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현상으로 인해 만들어진 정신적 폐해를 세상에 알리기보다는 숨기기에 바쁘다. 왜냐하면 정신적 폐해를 드러내는 순간 결국 나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웃음, 화려한 행동과 치장 속에 감춘다.

7기 입주 작가 손승범은 이런 현대사회의 양면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인간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숨으려고 한다. 다 가려지지도 않는 어떤 사물이나 배경 뒤에 필사적으로 숨는다. 그리고 어쩌면 바보 같이 순진할 정도로 무모했던 인간은 어느 순간 숨는 대신 자신을 알아볼 수 없을 법한 변장과 위장의 허물을 쓴다.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숨는 인간은 변태하며 결국 감정을 폭발시키고 터트린다.

손승범 작가는 화려함과 암울함의 양면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드러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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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가 생각하는 현대사회 속 인간의 특징은 무엇인가?
A. 넘쳐나는 정보와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생활화되고 교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반면에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과 타인을 훔쳐 보는 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 고립되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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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비유하고 은유하여 드러내는 작품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창작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A. 특별한 이유보다는 그런 것들을 보고 자라왔다. 가족들, 친구들과 같은 주변인들부터 내가 경험한 모든 이들이 예외 없이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Q. 인간의 양면성은 천성인가, 아니면 외부적인 요인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A. 천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면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작은 뾰루지였는데, 자꾸 자극을 주다보면 큰 여드름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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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의식을 갖는 인간이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되는가?
A. 완벽에 가까운 것이 존재할지는 몰라도 완벽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Q.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면?
A. 작품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상기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한 더 나은 삶을 위한 탐욕과 욕심, 허망한 염원 등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만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Q. 존재의 본질은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이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추상적인 존재의 이야기를 발화시키고 싶을 때, 철학적 담론에 기댈 때가 있다. 작가에게 있어, 혹시 이 부분을 대신 설명해줄 수 있는 철학(미학) 책이 있는가?
A. 『사라짐에 대하여』(장 보드리야르, 민음사)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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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관람객의 눈을 현란하게 만드는 장치가 있다. 이 장치들이 작품의 내용과도 연결되는데 설명을 덧붙인다면?
A.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 방법과 내용적인 측면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함(가속화되어 발전하는 사회) 속 이면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 또는 주변에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작품을 구상할 때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 한 화면에서 나타날 때 더욱 극적인 상황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Q.위에서 이어지는 질문인데, 대비적인 표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할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작품을 보면 표현적인 면에서 실험적인 모습이 특히 드러나는 것 같다.
A. 대비적인 표현 방법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 있어서 자연스러워져서 어느 정도 나를 표현하는 색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래서 특별히 많은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구상하는 과정 속에 있던 것들이 작업하다보면 즉흥적으로 교체되는 부분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부분들은 작품 속에 어떤 이미지 또는 소재들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 고민하고 작업에 대입시키고 있는 부분은 형체가 없는 ‘사라짐’을 표현하는 부분이다.

Q.작품의 레퍼런스는 어디에서 갖고 오는가?
A. 주로 경험을 비롯하여 특별하게 느껴졌던 순간들이나 사건들을 우선으로 하고,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웃픈 이야기를 가져와 설정하기도 한다. 또는 예전에 나에게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변질되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체험할 때 그때의기묘한 느낌을 기록해 두었다가 작품에 대입시키기도 한다.

Q.<허망한 염원>展은 소재도 약간은 다르지만, 표현 방식에서 감정을 누르기도 하고, 초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던데?
A. ‘허망한 염원’에 출품됐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라짐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표현 방식을 고민했었다. 애니메이션이나 공상과학영화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분자들이 서로 해체되면서 사라지는 장면을 보고 차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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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최근 작품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아젠다가 있다면?
A.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라는 오픈스튜디오의 타이틀처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대상은 어떤 물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본질들과 같이 형상이 없는 어떤 의미에 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본래와 현재의 의미가 변해버린 것들, 또는 변질되어서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들이 안타깝게 느껴지면서도 재미있었다. 사실 어떤 존재가 존재 그 자체로 영원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렸을 때 그토록 의미있던 트로피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가치 있지 않다. 그 트로피는 결국 트로피 자체로가 아니라, 전시장의 작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의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작품은 전시장 내에 설치될 때 작품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갖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는 역사 속으로 남겨질 뿐이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그렇게 계속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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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예술의 힘, 예술의 매력은 무엇인가?
A. 예술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차츰 번져나가 예술을 체득한 이들에게 올바른 영향을 준다. 더불어 삶의 다양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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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이전에도 평면 속에 다양한 물질을 쌓아 올리기도 하였지만, 매체(한국화)를 실험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실험은 작가의 작업 내용에 필요하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화를 다루는 작가들의 경우, 고유 매체를 지키며 실험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한 작가의 의견과 작가가 느끼는 한국화의 매력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실험함에 있어, 어느 선까지 자신의 고유 매체를 지키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다.
A. 고유 매체를 지켜가면서 확장시키는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다. 아예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이거나, 전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고유 매체를 버리지는 않는다. 재료적인 면보다는 재료를 다루는 의식과 정신,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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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가을 오픈스튜디오 때 보여준 것은 작품들이 모여 하나의 무대가 연출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극적인 요소를 작품을 창작함에 있어 염두하고 있는지(혹은 작품을 연극적 무대로 보여주는 것을 염두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
A. 연극적인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연출적인 부분이 보이게 된 것 같다. 미술 작품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듯이, 작품의 맥락과 그 속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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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안에 마무리해야 할 일들과 앞으로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올해는 평면 작품과 더불어 새롭게 입체작업들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참여했던 ‘웻페인트’전에 입체 작품을 출품했는데 나 스스로도 제작 과정에서부터 결과물까지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됐다. 향후에는 입체작품들로만 구성된 전시도 계획 중이다. 올해에는 머릿속에서 그려둔 계획들을 잘 꺼내 놓을 수 있게 준비하고, 내년에 실행하는 것이 목표다. 평면이라는 매체에서 처음으로 벗어나는 시도를 했으니 앞으로는 좀 더 확장된 영역의 작품들을 구상하고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글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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