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예은은 프랑스 클레르몽 메트로폴 고등 미술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작가는 ‘집’이 갖는 기호, 물질적 특성을 재구성하면서, 실내와 실외, 물질과 사고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모호한 공간과 비선형적 시간을 시각화 한다. 여러 사람이 사용한 물건을 수집해 미리 마련한 프레임 안에 같이 배치하고, 변화가 일어나는 소재, 물질이 가진 특성과 이야기, 관객의 참여 등을 통해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만든다. 서로 다른 시공간이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 연결되고 뒤엉키는 과정에서 수직적 타임라인을 없는 것처럼 만들고, 수평적 경계 또한 흐릿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분리된 공간에서 발생시킨 동시성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축적된 시간을 상기하기 위해 시간성을 지우거나 모호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지, 공간으로 흩어지는 사물을 고정하기 위한 시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새롭게 질문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9 |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집’이 갖는 기호와 물질적 특성을 공간에 재구성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사고(思考)가 뒤섞이는 공간, ‘생각의 혼혈‘로 발생한 ’제3의 공간’으로서 집에 주목해 다양한 개념으로 바꿔보고, 또 번역하는 설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거주 공간에서 개인 또는 가족과 같은 그 구성원의 삶은 사람과 사물이 집 안으로 넘나들면서 생기는 순환으로 인해 밖과 단절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뚫려 있지도 않은 상태가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시간과 함께 집 자체에 사물이 기록되는 것이다.
나는 때로 ‘거주 공간’의 안과 밖을 뒤집거나, 여러 다른 공간을 자르고 이를 다시 하나로 모아 배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받은 물건을 한 공간 안에 다시 모아 어떤 누군가의 장소도 아닌 새로운 장소로 구성한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의 삶이 기록된 뒤집어진 집이나, 잘라서 모인 공간, 수집한 사물들은 새로운 공간 안에서 서로 뒤섞인 채 드러난다. 이를 위해 의도에 맞도록 재료를 선정하거나 때로는, 의도치 않은(?) 방식의 소재와 재료가 천차만별로 선택된다. 또한, 작업의 순서의 경우에도, 오브제를 모으거나, 주제를 구상하거나 모형을 만드는 등 과정을 뒤섞어 진행한다. 하지만, 개념은 언제나 염두하고 진행한다. 여러 가지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노지암, 발사나무, 나무지, 회색지, 하드보드지, 목재, 흑연, 120×120×50cm, 2012 |
집(들), 복합 매체, 가변크기, 2017 |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이전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생각의 혼혈’이 일어나거나 이를 발견하는 현상, 또는 그 공간을 구성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면,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현지에서 작업을 일정 부분 정리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활동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생각을 주로 하였다. 이는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가구오두막> 작업을 위해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도 많이 고민했던 주제이다. 나는 현상과 공간의 구성을 위해 임의로 고정하다시피 설정한 ‘시간’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이 고민의 해결을 위해 아주 짧은 시간과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하나의 공간 안에 구성되는 형태 등 여러 가지의 실험을 진행해왔다.
가구 오두막, 혼합매체, 400×500×390cm, 2013 |
그중, 2019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진행되었던 개인전 《예측할 수 없는 투명함》은 나에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분리된 공간에서 발생시킨 동시성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축적된 시간을 상기하기 위해 시간성을 지우거나 모호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공간으로 흩어지는 사물을 고정하기 위한 시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생각의 전환을 하며, 그 답을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의 첫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즉, ‘생각의 혼혈로 발생한 제3의 공간’의 시간성에 대한 일련의 물음을 처음으로 질문했던 전시이다. 이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 <라비하마하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2019)은 크기의 직육면체를 6개의 동일하지 않은 크기 조각으로 나눈 설치 작업이다. 각 조각은 집의 특정 내부 공간을 은유하는 재료, 이를테면 화장실 타일, 벽걸이 시계, 거울 등이 달려있는 반면, 조각의 외부는 직육면체를 만들었던 각목과 합성목재(MDF 합판)가 그대로 노출된 형태로 제작하였다. 부착된 소품들은 애초에 쓸모를 잃어버린 것들로, 이전 주인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팔려고 내놓은 물건들을 수집한 것이다. 마치 암호처럼 읽히는 작품의 제목은 물건의 주인들이 커뮤니티에서 사용했던 인터넷 아이디의 조합이다.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9 |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문화 충돌이나 혼종은 과거에는 전쟁이나 종교를 통해서 일방적 그리고 국지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요즘과 비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에는 여행, 유학, 글로벌 경제와 인터넷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아주 흔히 일어나고 있다. 이는 여러 문화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결속감이 낮아지며 생긴 소외와 정체성의 혼란도 더불어 늘어나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나거나 충돌하는 지점에서 개인은 (비율은 각기 다르겠지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거나, 또는 이 지점에서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은 어떨까? 나는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이 대개 이런 혼합된 문화권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둘 또는 그 이상의 문화가 뒤섞인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은 어떤 정체성을 발견하거나 갖게 되며,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에 대해 늘 질문을 던져오고 있다. 이 질문에서 출발한 나의 작업의 주된 개념으로서 ‘생각의 혼혈로 발생한 제3의 공간’은 나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가상공간이자 실재 공간이다. 가상의 공간이라 언급한 것은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는 무언가로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것이 혼재하고 모호해서 무엇으로도 구분할 수 없지만,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실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각자의 ‘제3의 공간’에서 혼재된 문화를 다른 언어로 번역해 표현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나만의 작업 언어를 찾아 ‘생각의 혼혈로 발생한 제3의 공간’을 이야기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번역은 언제나 일대일로 대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종종 다른 많은 것이 끼어들어 오가거나 다른 모호함을 낳는 경우가 많다. 에두아르 글리상(Édouard Glissant, 카리브 군도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출신의 프랑스 작가, 시인, 철학자 및 문학 비평가)이 이야기한 혼종적 문화가 가진 정체성과 <천 개의 고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가 언급한 개념은 이런 의미에서 내 작업과 일정 부분에서 맥락이 닿는다고 할 수 있다.
트랜스-마이그레이션, 레진, 나무가루, 합판, 페인트, 목탄, 숯, 가변크기, 2019 |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작품은 각기 제목과 설명이 없을 때도 보는 사람과 자신의 언어로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꼭 창작자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어떤 작품의 내용은 너무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본래 숨은 뜻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어 궁금해하는 관람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개념의 실마리라도 넌지시 알려주고자 이름을 짓는데 많은 고민을 한다. 작품의 이야기를 담은 제목은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가령 작품의 다양한 해석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거나, 동시에 단초를 슬쩍 내비친다. 앞서 언급했던 작업 <라비하마하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의 경우, 관람객이 작품의 제목이나 설명을 읽지 않고도, 입구에 설치된 스위치를 켰다 끄면서 작품을 적극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나는 관람객이 이 스위치를 켰다 끌 때, 그 즉시 스스로 작품 안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분리된 공간에서 발생시킨 동시성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실험적인 의도가 숨어있지만, 관람객과 상관이 있을 수도, 또는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직관적인 소통은 그런 의미에서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색, 종이에 수채, 50x70cm(5pcs), 2019 |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나는 언어, 공간, 시간, 관계, 재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요즘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시간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나는 이 개념들을 확장하고 여러 실험을 진행하며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의 연상 작용을 거치곤 한다. 하지만 다음 작업을 위한 주제나 방법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떠오를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어쩌면 내일의 나는 전혀 다른 작업을 구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작가분들이나 비평가분들이 참고하거나 연구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고, 그렇게 기억되면 좋겠다.
삭, 강화유리, 클램프, 비닐, 페인트, 합판, 가변크기, 2019 |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 yeeunm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