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된 바다, 김순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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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된 바다, 김순임 작가

개항장 일대를 걷다보면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 사람들이 의외로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있는 이곳 또한 과거에 바다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9월, 바람이 분다. 바다로부터… 그리고 바다로부터 온 무엇이 인천아트플랫폼 스튜디오 앞 거대한 나무가 되어 자라났다. 김순임 작가의 작품 <굴 땅>이다.
김순임은 일정 공간에서 리서치 과정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정서, 삶, 공간이 형성되어 온 배경 등을 주로 자연물을 이용해 예술 형태로 발전시킨다. 작품 <굴 땅>은 인천 해안가 사람들의 고된 삶의 역사가 그 지역 생계수단인 굴과 그 껍질로 덮혀 개간된 땅 위에 살고 있음에 주목한 작업이다. 작가가 직접 그곳에서 수집한 굴 껍질과 같은 오브제를 사용해 만든 설치작품은 그들의 삶과 노동, 소멸이 잉태한 새로운 생성을 상징한다. 또한 바다를 땅으로 일구고 척박한 삶과 역사를 버텨내며 살아온 이 지역 사람들의 생명력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김순임 작가의 개인전 《땅이 된 바다》는 10월 30일 까지 진행되며 인천아트플랫폼 오픈스튜디오 연계전시 《웻페인트 WET PAINT》전(2016.8.26-9.25 B,G1,G3 전시장)에서는 본 작업과정이 기록된 영상과 도면, 모형 등과 같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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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이번 전시《땅이 된 바다》의 작품 <굴 땅>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만석동에 갔다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닷가에 이주한 땅 없는 사람들은 바다가 공짜로 내어준 굴을 캐어 팔아 가족과 자신을 생존케 하면서 오랜 시간 이 곳(인천 만석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팔고 버려지는 것은 산처럼 쌓이는 굴 껍질들뿐이었는데 그 장면이 매우 인상깊었다. 굴이 원래는 한 생명체의 집이었지만 또 다른 생명(사람)을 위해 내어주고, 그 껍질들로 다시 해변을 메우고 땅을 개간한 곳에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온 것이다. 굴로 개간된 땅들은 점점 넓어져 이제는 이곳이 원래 바다였다는 것조차 알 수 없지만, 이곳엔 사람이든 굴이든 생명을 담았고 살게 했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노동과 생존이 꿈처럼 피어나고 넝쿨처럼 자란 형상을 풍요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다. 

Q2. <굴 땅> 작업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다는데, 그것은 무엇이고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15 겨울 인천 만석동 우리미술관 개관전(집과 집 사이)을 위해 지역 리서치를 하면서 이 지역과 이곳 사람들의 삶의 단편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인천 만석동은 매우 검소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 버려지는 것은, 내다팔고 남은 굴 껍질과 연탄재뿐이다. 버려지는 굴 껍질조차 오랫동안 이 지역에 쌓여 땅으로 개간되는데 쓰였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밟고 있는 땅 아래를 채운 것이다. <굴 땅>은 인천 해안가 사람들의 고된 삶의 역사가 만들어낸 땅의 이야기를, 그 지역의 생계수단인 굴, 그 껍질로 덮혀 개간된 땅 위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내어준 바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자 했다.
 

빈손으로 바다에게 와
땅을 짓고 집을 세워 가족을 지킨 사람들
그들을 위해 기꺼이 정착해준 바다.
바다였던 도시
바다였던 집들
바다였던 길
바다였던 사람들
잠시 정주하지만, 보이지 않는 땅 속에 숨은 바다의 꿈
사람에게 자신을 내 준 바다 이야기
그리고 그런 사람의 이야기

Q3. 주로 만나는 주변, 그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대상, 그리고 그 만남에 의해 생성되는 기억이 얼마나 특별해 지는지에 주목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자연, 주변의 것들을 작업으로 연결시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떤 특정 계기가 있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소백산 자락의 풍기에서 자라면서 자연 외에는 놀거리가 없었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로는 도저히 충당할 수 없는 미술대학의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교 뒷산 숲에서 구한 재료나, 버려지는 것들로 작업을 해야 했던 대학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강력한 가부장으로 가족을 지배하셨던 할아버지, 아버지와 아버지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함께 살았던 시골에서 어린 여자아이로 성장하며, 주변인을 관찰하게 된 것까지… 나의 성장 과정과 배경이 자연스레 작업의 방식 속으로 들어왔고, 그 대상이 확장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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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장소 특정적 또는 대지미술에 가까운 작업들을 해오면서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 오히려 자연이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작품을 설치할 때 고려하는 요소가 있는가?

공간과 자연을 내가 직접 고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 공간과 자연이 작업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작가가 어떤 작업을 구현하고 그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을 찾는 일보다 마음에 들어오는 공간을 만나고 그 공간과 함께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나의 이상이라는 얘기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실 이 두 가지가 모두 일치했다. 먼저 인천의 ‘만석동’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 자연, 환경 등을 배웠고, 그래서 그 공간이 마음으로 들어와 작업의 씨앗으로 발현되었다. 그곳에서 받아온 굴 껍질과, 어떤 형상으로 세상에 나올지에 대한 대략적인 드로잉이 나오고, 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서 주변 공간과 환경을 한 달 넘도록 산책하며 관찰했었다. 이 작품이 어디에서 행복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이번 작품 <굴 땅>은 이렇게 해안동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매번 매 작품, 매 만나지는 공간마다 고민하는 요소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Q5. 거대한 설치 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어려운 점들이 많았을 것 같다. 노동 집약적이고 큰 규모의 작품을 작은 체구의 작가가 직접 설치하는 모습이 가히 수행자를 방불케 했다. 구상만 하고 실현하지 못한 작품이 있거나,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헤프닝이 있다면?
사실 무척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정도의 무게는 가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어려움을 잊을 만큼의 큰 즐거움이 있어 이런 작업들을 계속하는 것 같다. 대형작업들은 특히 나 혼자의 힘이나 경제력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렵고, 당연히 공공 공간일 경우가 많으므로 다양한 서류작업들이 필요하다. 작가들이 무척 힘들어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일 것이다. 작업을 구현하기 위해 지원 가능한 단체나 기관을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 나머지 작업을 구현하는과정에서 날씨, 사람, 기술 등의 것들은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귀이 여기고 배우며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잘 준비하면 오히려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는 행운도 필요하다.
구상하고 실현하지 못한 작업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드로잉 북에 쌓인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서, 기술적으로 아직 몰라서, 재정적으로 불가능해서…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것들은 사실 모두 큰 문제는 아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 드로잉 북을 봤을 때 그때 실현가능하면 하면 되는 것이니까. 드로잉한 작업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충분히 익지 않았고 충분히 배고프지 않아서가 아닐까? 개념이 소통가능할 만큼 잡혔고, 방식이 이해가능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무너무 해보고 싶어지면, 실현 가능한 방법들을 찾고 제안하고 지원하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 아깝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뜨거운 날씨에 《땅이 된 바다》의 설치를 진행했었다.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나다니던 주민들에게서 기운을 얻었다. “어? ‘땅이 된 바다?’ 그래, 여기가 오래 전에 바다였지, 하하하” 하고 웃으며 지나가는 할아버지들, “이게 뭔지 알아? 바다의 굴 껍질이야” 아가에게 말해주는 아기 엄마, 그리고 갓난아이를 안고 바다와 넝쿨, 굴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부르는 등 작업 주변에서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이 작업 중인 나와 우리를 깨어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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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과 작가의 특별함으로 재해석한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는 국내외에서 작가 김순임을 주목하게 한 대표 작업으로 보여진다. 작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I meet with stone. –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일명 ‘Stone Project’는 2003년 1월 안양에서 처음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5년에 한번씩 전체를 모아 개인전을 통해 발표를 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새로운 지역이나 새로운 시간에 길 위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만나면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셔터를 눌러 그 돌멩이가 보았음직한 풍경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돌멩이 위에 돌멩이를 만난 날짜와 장소를 적어둔다. 산의 돌은 그 산을, 강의 돌은 그 강을, 시골의 돌은 그 시골을, 도시의 돌은 그 도시를 닮아있다. 그곳에 오래 산 사람인 것 처럼 말이다. 사실 돌멩이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지만 이름 없이 길 위에서 사람들의 발에 차이기도 한다. 그런 이름 없는 돌멩이를 누군가 작가가 만나고 그 만남을 기록하면, 전시장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돌멩이를 자세히 보고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으려 하게 되니 말이다. 전시장 벽에 붙은 종이에 있는 사진과 새겨진 날자와 장소, 돌멩이에 써진 날자와 장소를 기반으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인연이 생겨난다. 매칭되는 사진과 돌멩이를 찾는 관람객에게는 작품을 1,000원만 받고 그 자리에서 나눠준다. 그 관객이 그 돌과 맞여진 인연을 위해 찾는데 들인 시간이 그 비용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돌은 또 누군가에게 기억되기에 이제 더 이상 이름 없는 ‘무엇’이 아니게 된다.

Q7. 그럼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은 무엇이고, 그 이유가 있다면?
모든 작업이 다 애착이 가지만 작업이 완성되고 나면 작품은 모두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다. 나의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은 ‘다음 작업’이다. 그 이유는 지금 나의 온 영혼이 집중해 있고 또 다음에 만들어질 작품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직 이야기하기엔 이르지만 말이다.

Q8.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반드시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내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전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관객들 모두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보았거나 느꼈던 것들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흔하고 사소한 것들을 작품을 통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또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다시 보게 하는 것이 나의,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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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1. 전시명 : 김순임 개인전《땅이 된 바다_ 굴 땅》
2. 기 간 : 2016년 8월 26일(금) ~ 10월30일(일)
3. 장 소 : 인천아트플랫폼 E동 앞 야외
4. 전시연계 간담회 :《땅이 된 바다》에 관한 수다
1) 초대패널_ 채은영(임시공간 기획자), 정상희(Space Ado 기획자), 김순임(작가)
2) 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G2
3) 일시 : 2016년 10월 29일(토), 오후 3시

글 / 오혜미(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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