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atter, Paste>는 어렵고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추상미술을 ‘틀과 반죽’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한 기획 전시이다. 이 전시는 지난해 9월 서울 문래동에 있는 공간 사일삼에서 처음 선보인 후, 올해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 주관하는 2019년 ‘미술창작 전시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올해는 5월 25일부터 7월 14일까지 인천 트라이보울 3층에서 진행되며, 추상미술 작가인 문이삭, 심혜린, 이승찬 작가가 참여하였다.
추상미술이란 20세기 후반의 미술을 일컫는 현대미술 중 한 장르로, 작품들이 어떠한 대상의 형상이 아니라, 점, 선, 면, 색깔과 같은 요소로만 표현된다. 때문에,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작품을 보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특징으로 볼 때 추상미술은 그야말로 ‘추상적(抽象的, 어떤 사물이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지 않은. 또는 그런 것)’인 미술이다.
때문에 많은 관람객이 추상미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나 작품에 쓰인 표현 기법 등의 설명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시는 금, 토, 일요일 오후 2시와 3시에 열리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시간을 풍부하게 마련하였다. 나는 현대미술에 한 발짝 가까워지고 싶어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트라이보울 3층에 도착하여 전시장을 눈으로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전시는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바로 알아차릴 만큼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공간의 특이점이다.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미술관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대부분 흰색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작품을 걸어놓는 사각형 공간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공간은 전형적인 미술관의 모습에서 벗어나 트라이보울의 공간 특성에 맞게 변화를 주었다.
두 번째 특이한 점은 추상미술 작품 제작 과정을 ‘틀에 맞게 반죽을 하여 빵이 빚어지는 과정’에 비유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빵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도슨트 프로그램 시간이 되자 2층 안내데스크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윤태웅 작가가 맡았다. 윤 작가는 이 전시가 ‘작가들이 현대미술의 발전으로 변형된 정보와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창작하고 있는지’, ‘기술과 미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전시장 환경 조건에 따라 작가들의 작품이 어떻게 변형되는지’ 등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관람객들을 3층 전시장으로 안내하였다.
이승찬 작가
작가는 프린터기로 출력된 그림들이 작가가 손으로 그리는 그림보다 훨씬 매끄럽고 다양한 색채로 표현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승찬 작가는 발전된 기술에서 나오는 이미지와 사람의 손으로 나오는 이미지의 차이를 위해서 작가가 어떻게 이미지를 다루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였다.
이 작가의 창작 과정은 매우 특이하다. 웹사이트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눈을 수집한 후 2D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대형 출판용 프린터기로 출력한다. 이후 출력본에 물감을 덧바르며 캐릭터 눈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캐릭터의 눈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변화되어 예측 불가한 이미지를 작품에 녹여낸다.
이승찬 작가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벽에 걸었던 기존의 작품 형태와 달리, 공간 특성에 맞게 비교적 형태의 변형이 자유로운 천 소재에 자신의 그림을 표현하였다.
문이삭 작가
문 작가는 3D 프린터기, 아크릴판 커팅 기계 등의 프로세스를 모방하여 창작하였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조각의 형태를 미리 설계한 후 자신을 기계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 설계 데이터를 입력한다. 이후 도면 없이 머릿속의 데이터만으로 조각 작품을 만든다. 문 작가의 작품은 기계가 만든 조각 작품보다 어설픈, 치수가 어긋나고 형태가 고르지 못한 것이 특징이다.
문 작가 또한 이승찬 작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을 전시장 환경에 맞춰 변형하였다. 기존의 3D 작품을 의자 표면 안으로 집어넣는 방식으로 설치하여, 위에서 보면 마치 의자 표면과 같이 평면의 형태로 보인다. 또한, 기존에 전시했던 작품과 이번 전시장에 맞춰 새롭게 만든 작품을 실로 연결해놓았는데, 이는 두 개의 작품이 ‘하나(하나의 형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심혜린 작가
심 작가는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 때 자신의 의식이 과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같은 시간에 움직이지 않는 신체와 대비된다. 작가는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힘든 자신의 의식을 내려놓는 대신 가만히 있던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도형들을 몸이 움직이는 대로 하나하나씩 캔버스에 표현하였다.
위 사진의 작품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이 많이 쓰였는데, 이는 작가가 복잡하고 정신없는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심 작가 또한 다른 두 작가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작품을 트라이보울 공간의 특성을 반영하여 변형시켰다. 기존에는 벽에 걸 수 있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취하였는데, 해당 공간에는 평평한 벽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캔버스의 모양에 변화를 주었다.
세 명의 작가는 이 전시에서 기술의 틀에 반죽한 작품과 공간(전시장)의 틀에 반죽한 작품을 선보였다. 나는 이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각자 자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함으로써 자신만의 틀에 작품을 반죽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작품의 내용이나 결과보다 제작 과정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No Matter, Paste> 역시 이러한 현대미술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전시이다.
6월 16일 오후 2시에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전시 기획자의 의도를 담은 조각 워크숍 <틀, 반죽, 틀, 반죽>을 진행한다. 이 워크숍은 문이삭 작가와 함께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를 만들어보는 체험 워크숍으로, 예술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현대미술의 제작 과정에 참여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글 · 사진 / 김다솔 (시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