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 있는 사진은 정말 사진일까? – 작가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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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는 사진은 정말 사진일까? – 작가 이민우

이민우는 캐나다 국적의 작가로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국외-시각예술 분야 입주작가로 6월에서 8월 동안 인천에 머물며 창작 활동을 했고, 입주를 마무리하는 8월에는 개인전 <끈적한 자유낙하>를 진행했다. 이민우 작가는 사진작가로 불리지만 막상 그의 작품들을 대면하면 ‘이게 사진이야?’라고 묻게 된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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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부터 8월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입주기간이 끝난 것에 대한 소감이 있다면? 자체 평가를 내려 주어도 좋겠다.
짧지만 뜻깊은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타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한테 많이 배우며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단기(3개월)라는 시간적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타지에서 타자로 생활하는데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다. 6월에서 8월까지가 입주기간이기는 했지만 7기가 시작된 3월부터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플랫폼 살롱’이나 ‘지역연구 리서치’나 입주작가 개인전 오프닝 같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하는 행사들에 가능한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입주 후에는 정해진 기간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중요한 행사 외에는 오히려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기간 내에 작업을 완수해야 하고 전시 일정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이 몰두와 집중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같다. 물론 입주기간이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많고, 작업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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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월 10일부터 21일까지 개인전 <끈적한 자유낙하>를 진행했다. 어떤 전시였나?
아트플랫폼에 입주할 당시 이미 생각해 둔 작업들도 있었고, 전시 내용도 나름대로 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겪는 것처럼 준비 과정에서 차질이 발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욕구나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두 달간 전시를 준비하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고, 이번 전시는 이러한 수많은 과정과 탐구 이후에 진행하게 된 것이다.
<끈적한 자유낙하>는 짧게 말하자면 ‘사진에 대한 사진전’ 이다. 개인적으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면서 사진의 이미지(image)와 그 이미지가 구현되는 바탕면(support)의 물질적 특성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작업들은 전부 사진 기법을 이용 또는 응용한 작업이지만 특정한 대상들을 촬영한 것은 아니다. 대상 없는 사진이란 무엇인지의 대해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내 작업에서, 사진이라는 물질적 표면에 나타나는 형상(image)은 사진을 만드는 현상적 과정에 의해, 다시 말해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현상액의 화학적 반응에 따라 인화지 위에 즉 사진의 표면에는 액체성이 부각된 이미지들이 생겨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진 표면 위의 액체적 이미지들도 전시장 바닥으로 흐르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시 제목을 이해해 주면 좋을 것 같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전시를 목적으로 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작업하지는 않는다. 작업을 할 때 특정한 아이디어가 작품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집중한다고나 할까.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니만큼 내 작업 중에 진정한 완성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시도, 다양한 과정, 끊임없는 탐구를 거치면서 궁금증과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고자 또 다른 시도와 탐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 또한 ‘과정전’이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전시된 작품들을 완결된 하나하나의 개체로 바라보기보다 전체적으로, 그리고 변화하고 진행 중인 전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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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끈적한 자유낙하>라는 전시 제목이 재미있다.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글 ‘자유낙하 속에서 :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In Free Fall: A Thought Experiment on Vertical Perspective)’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들었다. ‘자유낙하’는 히토 슈타이얼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고정된 시점, 하나의 지평선(수평선),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발 딛고 서 있는 안정적인 기반(땅, ground),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전제로 하는 기존의 ‘선 원근법(linear perspective)’에 대항하는 개념이자 그 극한의 형태로 제안한 것이다. 슈타이얼의 글에 한 일화가 언급되고 있는데, 19세기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는 선원근법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달리는 기차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풍경을 관찰하고 그것을 회화로 옮기거나, 움직이는 배의 돛대에 몸을 묶어 다(多)시점과 흔들리는 수평선을 실험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슈타이얼은 “당신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닿을 수 있는 땅은 없다고 상상해보라” 라고 제안한다. 끝없이 떨어지는만큼 수평선은 무한히 붕괴될 것이고(혹은 무한히 많은 수평선을 연속적으로 보게 되거나), 그 때 우리가 인지하게 되는 세상의 풍경과 장면을 상상해보면 선원근법의 한계와 터너의 어뚱한 듯한 실험들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당신은 슈타이얼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 같지는 않다. ‘끈적한viscous’이라는 형용사는 자유낙하를 방해하는 물질의 점성, 중력에 대항하는 내재적 힘같은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도였는지 확인해 달라.
히토 슈타이얼의 바로 그 글은 몇 년 전 처음 접했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말씀대로 슈타이얼이 ‘선원근법’의 대안으로 제시한 ‘자유낙하’나 ‘수직 원근법(vertical perspective)’을 답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술사를 새로운 시점으로 바라본 글이라 평가하며, 이 글을 좀 더 확장된 시점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슈타이얼이 말한 ‘선원근법’은 말하신 것처럼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전제하고 있고, 사진이라는 매체 역시 근본적으로 주체와 객체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찍는 주체와 찍히는 대상을 생각해 보라). 사진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은 쉽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이를테면, 어떠한 사진 작품이든 대상과 그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 간의 거리를 구분할 수 있다. 아무리 초점을 흐리고, 표면의 질감 처리를 특수하게 하고, 렌즈를 미세하게 왜곡했든지 말이다. 이러한 거리는 한 개의 시점(렌즈)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사진의 법칙에 따라 발생하며 그 거리를 늘리느냐 줄이느냐의 문제이지 거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즉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법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 있다면, 대상을 아무리 없앤다 하더라도 사진이라는 표면 위에 나타나는 ‘회화적 풍경(Pictorial Space)’과 그 안에 자리잡은 형상, 이미지는 그것이 구현되고 있는, 말하자면 접하고 있는 물질적인 바탕면(support)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공간과 사물이라는 물질성을 왔다 갔다 하면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에 저항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가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영화에 흠뻑 빠져들어 동화될 때쯤 에어컨 바람에 의해 영상을 반사하고 있는 천이 흔들릴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러면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공간이 다시금 인지되고 내가 앉아있는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경험처럼 말이다. 사진에서는 사진이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와 사진이라는 매체의 물질적 결합이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이미지와 바탕면의 관계를 역전시켜 보는 것, 이미지가 다른 어떤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바탕면의 물질성 외에는 드러내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형상과 매체의 관계가 흔들리고, 객체와 주체의 혼란이 발생하는 것, 그것이 슈타이얼이 제시한 ‘자유낙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고, 그 용어를 가지고 왔다.

질문과 답에서 언급된 슈타이얼의 글은 링크 참조
http://www.e-flux.com/journal/in-free-fall-a-thought-experiment-on-vertical-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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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 스스로도 이야기 했듯이 사진하면 흔히 피사체를 상정하게 마련이고, 사진의 표면에는 피사체를 스쳐간 빛의 흔적과 시간이 이미지로 재현되게 마련인데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으려고 하는 것 같다. 피사체 없이, 즉 재현하려는 대상 없이 작업을 하거나, 있더라도 지우려고 하는 작업들이 인상적이다.
대상 없이 사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맞다. 사진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현실을 어떻게 잘라내어 피사체로 추상화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사진이라는 매체의 근본적인 요구라는 것이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회화가 무언가를 더해가면서(additive) 만들어지는 반면, 사진은 가득 차있는 현실에서 무언가를 추출하고 덜어내는(subtractive) 과정이다. 즉 둘 다 이미지를 다루기는 하지만 회화와 사진은 요구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사진의 어원은 ‘빛으로 쓰다(writing with light)’로, 빛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근본적인 과정과 기법을 따져보면 지워낸다는 것이 사진에 가장 걸맞은 속성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대상을 배제하고 사진이란 매체의 표면을 지워내는 과정을 중시함으로서 정말 사진다운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봤다. 이렇게 사진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많았다. 표면을 지속적으로 씻어낸다는 행위가 정적으로 느껴졌으며, 사진을 이렇게 지우다 보면 그 종국에는 무(無)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유(有)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암실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모든 작업의 결과를 비시각적 촉감에 맡겨야 한다. 작업 결과는 매우 우연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만큼 작가는 작업의 소유자라기보다 그 작업에 연루된 혹은 관계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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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천아트플랫폼에 오기 전에 한 작업들을 보면 마주보는 거울 간의 무한 반사, 백남준의 ‘TV 부다’를 연상시키는 폐쇄회로 장치, 실재와 재현 간의 혼돈스런 상황들에 대한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을 구분하기 힘들게 하는 상황들을 일부러 만들고 그것들을 지각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지적 유희 혹은 슈타이얼의 표현대로라면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작업화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거의 모든 작업들이 사고실험에서 유발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궁금증에서 유발된 탐구 과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매체의 불확실성에 대한 탐구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매체’라는 단어는 어느 수단적 목적성을 지니고 있어 나의 예술적 태도에 부합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술은 자율적(autonomous)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작가의 이야기를 담는 수단이 아니라 작가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결실이어야 한다. 작가가 혼자 작업실에 있을 때 대화의 상대가 매체라면, 그 대화의 흔적과 결과가 예술 작품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의 작업들은 언제나 진행형이고, 마주보고 있는 거울 간의 무한 반사처럼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 폐쇄회로 장치와 같이 관람자들을 타자화시키기도 하며,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출구 없이 답답해 보일 때도 있으며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어느 정도 현대미술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적이 뚜렷하며 수단으로 사용되는 매체에 대한 예술적 태도 또는 시선에 대한 반항이나 반감이라고 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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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앞으로의 계획이나 향후 작업의 지향점이 궁금하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내 삶 또한 내 작업처럼 계속 목적지 없이 흘러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으며, 그만큼 정리할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기약없이 산에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달할 때가 온다. 하지만 정상에 도달한 순간 다시 내려와야 한다. 아마 이번 레지던시도 그러한 과정에 속해 있지 않나 싶다. 아마 정리의 시간을 보낸 후 다음 산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사실 입주기간 동안 전과 다르게 영상 작업을 해보려 했었고, 인천이란 지역에서 영감을 받아 특정적 아이디어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구현해보려 했지만 결국 다시 이전처럼 폐쇄적인 과정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다음 작업 또한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오히려 이번 계기로 인해 내 작업이란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질문해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들을 더 심도있게 고민해볼 생각이다. 

글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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