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동화 속 낡은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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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으로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자이푸르(Jaipur, 인도 라자스탄 주의 수도) 근처의 성곽 도시 아메르(Amer)의 길거리에서 휘황찬란한 색상의 종교화 복사본을 여러 장 구매했다. 종교화를 판매하는 젊은 청년은 수북이 쌓인 프린트를 뒤적여 다양한 종류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가 권하는 그림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몇 장을 골랐다. 믿는 종교가 없는 내가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종교화를 구매하게 된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풍요의 여신인 락슈미(Lakshmi)와 그녀가 뿌리고 있는 금화를 보자 왠지 이 그림을 집에 걸어두면 행운을 불러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종교화들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신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그들의 모습을 표현한 스타일이나 구상은 끝이 없다. 현대미술을 공부해 온 나에게 이 그림들은 상당히 키치적 이다. 종교화를 보면서 성스러움을 느낀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신들의 모습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이 종교화들은 상당히 실용적이며 대중적이다. 원색 복사본의 저렴한 가격도 이러한 실용성에 한몫했다. 그러나 여러 힌두교 사원들과 신상들을 관찰하다 보니, 이러한 미적 감수성을 단순히 키치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힌두교의 변천사와 이 종교 특유의 유연성, 그리고 이러한 미적 감수성이 인도의 미술품과 사원들에 나타나는 양상 때문이다.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섬기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다르게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그리고 이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는 라마야나(Ramayana)나 마하바라타(Mahabharata) 신화를 통해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신들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편집과 수정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의 원조로 여겨지는 ‘하누만(Hanuman, 원숭이 신)’은 처음 라마야나가 씌여진 시기에서 1000년이나 지난 후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인도는 다양한 부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과정에서 각 부족이 섬기는 지역의 신들을 같이 포용하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가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와 같은 종교 서사시에 더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그 규모가 크다고 하는 악샤르담(Akshardam) 사원은 이렇듯 새로 추가된 신생 종교 신화를 경험 할 수 있는 장소 중에 하나이다. 이 사원은 힌두교의 새로운 종파에 의해 지어졌는데, 이 종파는 스와미나라얀(Swaminarayan)이라는 7살에 모든 힌두 종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11살에 인도 전역으로 성지순례를 떠난 요가수행자(yogi)를 섬긴다.

그는 1781년에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종교적 가르침을 얻고 요가를 수행하기 위해 순례를 떠났다. 그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한 이 종파는 많은 추종자들이 있으며, 인도 외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와 뉴저지 지역에도 비슷한 모양의 사원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방문했던 사원은 델리(Delhi)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 인도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이유로, 혹은 관광의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한다. 이 종파는 기존 힌두교의 전통과 인도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보다 인간적인 도덕에 대한 가르침을 전수하려고 한다. 기독교의 예수와 비슷하게 스와미나라얀 또한 소외된 계층과 여성,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멸시를 비판한다.

이 사원과 내가 구매한 원색의 종교화 프린트의 유사점은 이 두 가지의 대중성과 상품성에 있다. 악샤르담 사원은 거의 놀이공원의 규모로 입장하기 전에 모든 소지품을 입구에 맡겨야 한다 (심지어 핸드폰도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다). 또 이 사원 단지(complex) 내에는 전시관이 있는데, 고대 브라만교(Brahman敎) 경전인 리그베다(Rig-Veda)의 내용이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과 같이 배를 타고 따라가면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디오라마 로 이루어진 이 보트 투어는 이 곳이 사원이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전시관 옆에는 상영관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스와미나라얀의 일생을 영화화한 2시간짜리 영화의 일부분이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는 여느 볼리우드 영화에 못지않게 휘황찬란하다. 아쉽게도 저녁의 분수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이 공연은 리그베다의 중요 내용을 레이져와 영상 프로젝션, 음악을 통해 보여준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온 가족이 같이 나들이 나와도 좋을 것 같지 않은가. 사원 단지의 건축물들은 2005년에 지어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단지 옛 사원들에 비해서 붉은 사암으로 조각된 외부가 깨끗하다는 점이 이 사원의 나이를 추측하게 한다. 내부도 외부에 못지 않게 정교하고 화려하다.

특히 스와미나라얀 조각상을 모신 사원의 중앙은 온갖 보석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동화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장소는 외국인인 나에겐 총천연색 종교화 프린트를 봤을 때처럼 특별히 성스럽다기 보단 다소 어색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아름다운 동화세계에서 스와미나라얀이 신던 신발, 실제 손톱과 머리카락이 보관되어있는 진열장은 동화세계의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현실의 조각과 같이 충격적이었다. 이것들이 실제로 스와미나라얀 수도사 몸의 일부분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오래된 인간 신체의 일부분이 줄 수 있는 그로테스크함과 이를 에워싸고 이상세계의 결합은 내게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출구 쪽엔 스와미나라얀과 사원 건축에 관련된 책들, 전생과 카르마(karma, 업)에 관한 책들 그리고 이 종파에서 만들어내는 건강식품 및 미용제품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 사원에서 나오면서 나는 아주 특별한 놀이동산, 혹은 광고를 보고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많은 현대인들에게 사원은 신성한 장소라기 보다는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긴 비행 끝에 집에 돌아와 돌돌 말린 종교화 프린트들을 다시 펼쳐보니 인도의 느낌이 다시 확 밀려온다. 컬라풀함과 신비로움, 그러나 역시나 키치적인 이미지들,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인도 문화와 종교의 특이함을 그리고 왠지 행운을 불러올 것 같은 여신의 그림을 내 방 벽에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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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치(Kitsch): 예술작품과는 달리 실용적인 용도를 가지고 있는 대상으로, 그 대상과 대상을 관찰하는 자 사이에 비판적인 거리가 없는 경우
– 디오라마(Diorama): 3차원의 실물 또는 축소 모형

 

글, 사진 / 이영주

 

이영주는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산스크리티 레지던시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인도의 델리와 자이푸르에서 한달 반 간 체류했다. 인도 전통미술에서 묘사되는 종교적 상징과 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한 이 여정은 30미터 가량의 두루마리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영주는 신화와 꿈의 서사구조를 이용하여 개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애니메이션 영상 설치와 퍼포먼스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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