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토요일 오후, 연수구 동춘동에 자리한 연수문화원에서는 <연수 문화 너나들이 축제>가 열렸다. 다양한 생활문화 동호인들이 화합하는 장이었던 축제에서 밴드 동아리의 공연이 단연 백미로 꼽혔다. 공연이 끝난 뒤 ‘화려한 외출’의 멤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밴드 ‘화려한 외출’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린다.
서순희 : 다문화가정 밴드, 주부 밴드 등 여러 개의 밴드가 연합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 이 팀은 ‘화려한 외출 락밴드’로 가장 활발하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팀이다. 혼성 락 밴드로 지난 해 8월 결성되었고, 매주 금요일 밤에 연습을 하고,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서순희 :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은 오래 되었다. 일명 아줌마 밴드로, 2001년부터 2012년도까지 여성 밴드 활동을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해왔다. 같이 활동했던 언니들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밴드 활동이 힘들게 되었고, 어쿠스틱 밴드 활동만 하고 있던 중, 작년에 젊고 실력 좋은 친구들을 만나 다시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결성하게 되었다. 지금 이 멤버들은 전부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부터 굉장히 오래 음악을 곁에 두고 살아왔던 친구들이다.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을 통해 함께 모여 화려하게 나래를 펼쳐보자는 의미에서 밴드명을 짓게 되었다.
멤버 한 분씩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최진용 : 기타를 맡고 있다. 이전에 속해있던 밴드에서 지금 함께 보컬을 하고 있는 정균 씨와 활동했었는데, 정균 씨가 여기 밴드로 옮기게 되면서 합류하게 되었다. 와보니까 좋은 누님(서순희 님)이 계셔서 함께 의욕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김정균 : 보컬을 맡고 있다. 다른 분들하고 함께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활동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6개월 정도 활동하다가 팀이 와해되었다. 멤버를 구하던 중 누님을 소개받아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박제선 : 건반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누님이 운영하시는 악기사에 자주 방문해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번 놀러오라는 제안에 연습실을 방문했다가, 처음으로 건반을 맡게 되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이한균 : 밴드를 한 지가 꽤 오래 되기는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인 밴드라 엎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여러 밴드에 용병처럼 지원을 나가는 정도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밴드에 합류하게 되고 이제야 정착을 하게 됐다.
서순희 : 베이스를 맡고 있다. 밴드 활동을 오래 해왔지만, 그 동안은 기타를 연주했었다. 지난 해 정균 씨의 제안으로 베이스를 처음 맡았다. 마침 갱년기를 지나며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열정을 다시금 불태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 도전해보는 악기이지만 굉장히 매력이 있고, 생활의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많은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동인천에서 오랜 기간 ‘허리우드 악기사’를 운영해 오면서 밴드를 만들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 계기가 궁금하다.
서순희 : 악기사를 운영한 지가 30년이다. 내가 가진 재능을 활용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다섯 살 즈음에는 악기사 일을 마친 후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를 하는 등의 일도 했었다. 그동안 악기사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연락처와 음악적 취향들을 물어보고 기록해놓고 있었는데, 열다섯 명 정도에게 연락해서 밴드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15년이 지난 지금 모양새는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밴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직장을 따로 가지고 있으면서, 시간을 따로 내어 연습을 하고 밴드 활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밴드 활동을 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이한균 : 아내도 밴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큰 반대는 없었다. 대학교 때 밴드에서 만났기 때문에, 아내가 활동을 많이 응원해주고 지지해준다.
최진용 :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것을 힘들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무대에 서서 사람들 앞에서 실력을 보여주고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중간의 과정들은, 물론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그 목표를 떠올리면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김정균 : 음악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집에서 게임하는 게 힘들지는 않지 않나. 우리에게는 음악이 그런 존재이다.
서순희 :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음악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굉장히 긴장도 많이 되는 작업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멋있다고 박수도 많이 받는다. 그런 긴장감과 짜릿함을 살면서 얼마나 느껴보겠나. 연습하는 과정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다.
김정균 : 오늘도 2주 만에 쉬었는데, 휴일을 공연 일정에 맞췄다. 2003년부터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밴드 활동을 굉장히 반대했다. 어쩌다 한 번 쉬는데, 그날마저도 밴드 연습과 공연을 다니니까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밴드 활동을 반대하느라 아내가 일주일 간 집을 나간 적도 있었다. 딸아이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빠가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도 이제는 밴드 활동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준다. 오늘도 아내와 딸아이가 공연장을 찾아와서 응원해주었다.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 원장님까지 대동해서 공연장을 찾아준 걸 보면 이제는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다.
‘화려한 외출’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최진용 : 같은 밴드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뀐다. 서로가 호흡이 맞아야지만 일치된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 팀에 들어와서는 실력을 떠나서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굉장히 좋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인 밴드 치고는 실력도 굉장히 탄탄하고 음악적인 이해도 뛰어나다. 그래서 합이 잘 맞고, 연주하는 게 더 힘이 난다.
김정균 : 전에는 직장인 밴드를 자주 옮겨 다녔었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멤버들끼리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누구 한 명이 자꾸 늦게 되면 불만들이 쌓이곤 하는데, 자영업을 하다 보니 연습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 감정들이 쌓이다보면 1년, 2년 이상 팀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누나가(서순희 님) 온 이후에 응집력이 더 강해졌다. 좋은 멤버들도 영입할 수 있었고. 같이 끈끈하게 갈 수 있는 역할을 해주고 계셔서 불안하지 않게, 안정적으로 밴드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밴드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은 계속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박제선 : 밴드를 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게 가장 좋다.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니까.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만나 연습을 하는데 그 시간이 정말 좋다.
이한균 :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멤버들이 스케줄을 많이 양해해준다는 것이다. 하는 일이 기술 영업 쪽이라 지방을 많이 다니고, 한번 가면 며칠씩 있다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스케줄들을 다 양해해주셔서 참 감사하다. 이전에 활동하던 밴드들이 엎어졌던 게 거의 스케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양해해주시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함을 느낀다. 두 번째는 나이차가 있고, 혼성 밴드이며, 각자 하는 일에 전부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연습을 하는 데에 있어 대화가 굉장히 잘 통한다는 것이다. 다른 밴드에 있을 때는 자존심의 문제도 있고 해서 서로가 서로를 터치하지 않으려고 했다. 할 말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고 하다 보니 불만이 쌓이고는 했다. 하지만 이 팀에서는 대화가 굉장히 잘 이루어진다. 이 부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대화가 되니까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지 않아 좋다.
서순희 : 직장인 밴드들이 오래 못 가는 이유는 욕심들이 있어서다. 자기만 좋아하는 것을 조금 내려놓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서로 감싸주어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은 지적을 하고, 자기만 잘났다고 연주하는 것들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팀이 와해되는 경우가 많다. 멤버들 모두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음악동아리고,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모여 있기에 묻고 싶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바꾸어준 노래가 하나씩은 있지 않나.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만들어 주었다거나, 자신의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거나 하는 노래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있다면 어떤 노래인지, 이유도 궁금하다.
박제선 : 김건모의 노래 중에 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가 와 닿아서 좋아하는 노래이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에게 엄마가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된다, 공부나 해라” 말하는 노래인데, 그 노래 가사처럼 못생기고 키도 작고, 연주나 노래를 아주 잘하지는 않지만, 노래를 하는 것과 연주하는 것이 그저 즐거워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한균 : 신해철 1집 수록곡 중에 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 가사를 보면, “그 언젠가 먼 훗날에/반드시 넌 웃으며 말할 거야/지나간 일이라고”라는 구절이 있다. 99년도에 대학 밴드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연습했던 곡이 이 곡이었다.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선배들이 “너 드럼 해”라고 해서 드럼을 맡게 됐다.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었는데, 십여 년이 흐른 지금 가끔씩 힘들거나 지칠 때 이 노래를 들으면 ‘힘든 것도 다 지나갈 테니까 지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최진용 : 넥스트 1집에 <아버지와 나>라는 곡이 있다. 배경 음악 위에 신해철이 노래가 아닌 내레이션으로 읊조리듯 이야기하는 곡이다. 곡이 절반 쯤 지나면 기타가 등장해 뒷부분을 끌고 가는데, 내레이션도 감정이 폭발하듯 점점 고조된다. 기타는 사실 목소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곡에서는 폭발할 듯한 내레이션과 함께 기타에도 마치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 노래를 학창시절에 들으면서, 기타가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그 곡을 계기로 기타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고, 여전히 그 곡에서처럼 멋진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순희 : 80년대 학번 세대에는 대학가요제가 굉장히 성행했고, 밴드 음악이 굉장히 많았다. 고등학교 때 ‘나 어떡해’와 같은 곡을 카세트에 넣고 산에 올라가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불놀이야’라는 노래에서 기타 애드립이 굉장히 멋졌다. 저런 기타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기타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김정균 : ‘She’s gone’이라는 노래에 사연이 있다. 친구들보다 생일이 느려 영장이 늦게 나왔는데, IMF이다 보니 취업도 안 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군대라도 빨리 다녀오고 싶은데 영장이 나오지 않아 지원하면 바로 갈 수 있는 의경에 지원하게 되었다. 동네 파출소에 발령받을 것을 생각했는데, 기동대에 발령이 났다. 당시 그 곳의 분위기가 굉장히 엄해 가자마자 선임들에게 많이 맞았었다. 흔히 말하는 ‘고문관’ 소리도 듣기도 하고 힘든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가 왔는데, 부대 앞에 있는 노래방으로 잠시 외출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 곳에서 ‘She’s gone’을 불렀는데, 부대에 돌아와 보니 온 중대에서 나를 때리던 모든 선임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노래를 정말 잘 하는 친구’로 알려지면서 군 생활도 수월하게 풀렸다.
멤버들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이한균 : 고객들을 직접 마주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다. 밴드 활동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무기다. 음악을 매체로 한 활동들을 통해 좋은 기운들을 얻고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든다. 또 하나는 업무 시간 이외의 여가시간을 보통은 그냥 쉬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시간으로 보내는데, 밴드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는 느낌이 든다.
박제선 : 음악을 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기타면 기타, 피아노면 피아노, 다양한 악기들을 혼자 씨름하며 익혔다. 음악을 계속 해오면서 음악이 꼭 큐브 같다고 느꼈다. 한 면을 다 맞추면 다른 면이 흐트러지고, 다른 면을 맞추면 또 다른 면이 흐트러지지 않나. 여섯 개의 면을 모두 맞추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연습하면 큐브의 모든 면을 다 맞추게 되는 것처럼 밴드 활동도 열심히 연습해 모든 면을 다 맞추고 싶다.
김정균 : 밴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삶을 더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살게 되는 것 같고 가정에도 더 충실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일주일에 한 곡을 연습하는데, 금요일에 멤버들과 모이기 전까지 일주일 내내 한 곡을 반복해서 듣고 연습한다. 출퇴근하면서도 듣고, 차 안에서도 듣고 흥얼거리며 연습을 한다. 그러다 보면 딴생각을 할 틈이 없다. 업무 시간에도, 집에서도 더욱 성실하게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최진용 : 나에게 음악이란 판타지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판타지라고 한다면, 음악을 하는 것은 판타지 속에 빠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직장인 밴드 활동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들지 않나. 음악은 그런 현실의 고단함과 지난함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하는 동안에는 판타지에 빠져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가장 값어치 있는 삶의 일부이다.
서순희 : 음악은 열정 충전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많이 느낀다. 스스로 열정을 만들어내고 쏟을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간 일을 하며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주말 오후. ‘화려한 외출’의 멤버들은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밝은 표정으로 연습과 공연을 하며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그들을 찾은 기자에게도 멤버들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열정이 가지는 힘은 엄청난 전염성을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외출’의 열정이 널리 퍼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인터뷰 및 정리 /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