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짝만한 열쇠
200년도 더 된 집에서 살았다고? 아이고, 깜짝 놀란 나는 엘리자에게 되물었다.
“응, 잘 모르겠지만 1800년대 중반쯤…? 아빠의 아빠의 아빠가 샀을려나? ”
200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그녀는 무심하게 말한다. 200년… 우리 할머니가 여든다섯이니 할머니가 살아온 시간보다 두 배 이상 오래됐다. 30년마다 재건축 한다고 들썩거리는 한국 아파트를 얘기를 하면 그녀는 뭐라 할까?
엘리자와 나는 런던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다. 틈만 나면 그녀는 이탈리아의 집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곤 했다.
“우리집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곳이야. 나중에 승연을 꼭 데려가고 싶어.”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엘리자의 고향은 너무 예쁜데, 엘리자 표현에 따르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미들오브 노웨어(Middle of Nowhere)’다. 정말? 그럴 수가 있나?
엘리자의 집자랑을 2011년부터 장장 6년 넘게 듣다 얼마전 드디어 그녀의 집에 가게 됐다.
밀라노 공항에 내려 엘리자 집까지 가는 길은 차로 한 시간 거리다. 간질간질한 햇살을 맞으며 그녀 집으로 향한다. 차는 어느새 산길로 들어섰다. 길 밑으로 거대한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사실 엘리자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영락없이 바다인줄 알았다. 엄청나게 큰 호수다. 마조레 호수 (Lago Maggiore)다. 이탈리아 말로 ‘커다란 호수’란 뜻이다. 마조레 호수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스위스, 남쪽은 이탈리아다.
“우리 동네사람들은 아침이면 북쪽 스위스로 일하러 갔다가 오후가 되면 이탈리아 집으로 돌아와.”
엘리자 말로는, 스위스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을 싫어한다. 스위스에서 월급을 받아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니 배라도 아픈건가? 뭐, 두 나라간에 복잡한 신경전은 그들 사정이고, 나로선 매일 호수를 건너 스위스로 출근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해안도로 아닌 ‘호수도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니 아기자기한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집 앞에 널린 빨래를 보니 새삼 이탈리아에 왔다는 게 실감난다. 런던의 색이 회색이나 벽돌색이고, 프랑스 낭트의 색이 하얀색 같은 무채색이라면 이곳은 노란색이거나 주황색이다.
엘리자 집은 구릉 위에 자리잡았다.
마을로 들어선 후에도 한참을 더 올라갔다. 노란색 삼층집이다. 햇빛에 바랜 노란색이 정겹다. 대문에는 ‘마니니(magnini)’라 쓰인 문패가 걸렸다. 고풍스러운 중세를 떠올리게 하는 글자체다. 집 앞에 도착은 했는데 웬걸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
일단 문을 걸어 잠근 묵직한 철 막대기를 옆으로 밀어내야 했다. 다음에는 키덮개를 올리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게 아니라, 손바닥만한 열쇠를 큼직한 열쇠구멍에 넣는다. 이렇게 말하면 간단한 듯 보이지만 이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단 손으로 잘라 만든 듯한 열쇠는 투박하다. 한 마디로 열쇠구멍과 잘 안맞는다. 박물관에서나 보던 골동품이라 해도 이상할게 없다. 잘 돌아가지조차 않는 열쇠로 이리저리 낑낑거리며 문을 여는 엘리자를 보니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햇살이 너무 뜨겁다. 문은 계속 안열리고 땀은 계속 흐른다.
번호키를 누르고 바로 집안으로 들어가는게 익숙한 나로선 이 모든 상황이 어색하고 신기하다.
“아….이 열쇠가 아닌 것 같아.”
엘리자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엘리자를 바라보는 나는 엉뚱한 공상에 빠진다. 그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데 이 정도 노력은 해야겠지.
열쇠로 문을 열 수 없는 엘리자는 이내 문을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문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엘리자는 다시 열쇠를 구멍에 끼워넣는다. 끼기긱… 이리도 돌려보고 저리도 돌려본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삐거걱… 드디어 열쇠가 돌아갔다. 드디어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 시골집의 요란한 환영식이다.
다른 시간
세상에나, 밖은 한낮인데 집안은 캄캄하다. 쿵쾅쿵쾅, 엘리자가 계단을 올라가 창문을 여니 환한 햇살이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건 또 뭐람? 환한 햇살을 받은 집안은 따뜻한 고향집이 아니라 왠지 스산하다. 집을 너무 오래 비웠나? 어쩌면 우리 때문에 집이 방금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부엌, 방, 거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방문은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잠긴다. 그럼 딱 갇히기 십상 아닌가? 집에서 누굴 가둬야만 했던 일이라도 있었나? 엄마가 외출할때 아이를 방에 두고 나가야 했나? 문이 왜 이래? 엘리자에게 묻자 그녀는 시큰둥하다.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그녀도 왜 안팎에서 잠기는지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한다. 바닥은 돌바닥이다. 바닥 역시 오래되고 낡아 반질반질하다. 벽의 칠은 벗겨졌다. 도대체 이집에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를 놀래킨 건 방문과 돌바닥뿐만이 아니다.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방, 부엌과 거실 곳곳에는 인물 사진이 가득하다. 딱 미술관에 걸린 초상화 같은 포즈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게 아니라 노려보는 것 같다.
집에 무슨 초상화가 이렇게 많담? 집안 곳곳에서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 갑자기 몸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이 사람들이 다 누구야? 엘리자에게 물었다.
“아하하. 웃기지. 나도 몰라. 아마 여기 살았던 친척이겠지. 가끔 보면서 나도 놀래. ”
엘리자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웃는다. 수녀복을 입은 여자,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커플. 빛바랜 아기 얼굴…
이들은 웃고 있는데 나는 뭔가 스산한 기분이다. 온 집안이 모르는 사람들 사진으로 가득하다니… 누군지 기억도 못하는 사람들 사진, 그러니까 초상화 같은 사진을 걸어 놓은 것도 신기한데 이걸 지금까지 치우지 않고 내버려둔 건 더 신기하다. 부엌에 가니 더 놀랍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쯤이 쓰지 않았을까 싶은 숫가락, 나이프까지 모든게 다 그대로 있다. 엘리자는 부엌에서 ‘달걀 스탠드’를 보더니, 어이없다는 말한다.
“아이고, 이게 아직도 있네!”
난 가족들이 일부러 고히 물건을 간직해온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모든 물건이 옛날 그대로 다 남아있는 모습이 과거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이 돌아와 다시 살기 시작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것 같다. 난 마치 박물관에 온 마냥 사진을 이것저것 찍었다.
“승연, 여기로 내려와봐!”
갑자기 엘리자가 뒤뜰에서 나를 불렀다. 빛바랜 노란색 벽에 달린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콸 쏟아진다.
“마셔봐. 산에서 흘러온 물이야”
혹 배앓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머뭇거리는데 엘리자는 괜찮다며 자꾸 권한다. 서울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나는 산에서 흘러온 물을 먹는 게 낯설었다.
한 모금 샘물을 넘겨본다. 얼음물 같다. 수도꼭지 양쪽엔 백년도 더 되보이는 국자가 걸렸다. 사진 찍기엔 예쁘지만 좀 쓸쓸하다. 녹이 슨 채 같은 자리에 걸려있던 국자를 보니 좀 처량하다. 좀 전까진 오래된 물건이 여지껏 남아있는게 신기하고 부러웠는데 지금은 그냥 버려진듯 그 자리에 남아 있는게 아닌가 싶어 좀 씁쓸하다.
밤이 되니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더욱 가깝게 들린다. 몇년이 됬을지도 모르는 커다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내가 도대체 어디에 와있나 싶다. 엊그제까지는 베를린에 있었는데 어느새 비행기를 타고 밀라노에 왔다. 그리고 차를 타고 한시간,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 와 200여년 된 집,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진이 걸린 방에 덩그러니 누웠다. 낮에는 집안의 가구와 식기를 보며 시간이 멈춘 곳 같았는데, 이렇게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다행이다. 여기서도 시간이 흐르긴 흐르고 있다.
노 비지니스 월드
런던에서 엘리자가 수없이 말한 그대로다. 참 예쁜 동네다. 집앞 골목에 피어난 꽃, 오래된 집, 넓은 호수, 저 멀리 보이는 산에서부터 심지어 마당의 작은 벌레까지 너무 예쁘다. 집 바로 앞에 호수가 있고 이곳에선 언제든지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고 수영을 한다. 방에서 창문을 열면 하늘, 호수, 산이 넘실거린다. 집에는 방이 열 개쯤 있다. 방마다 고가구가 가득하다. 집이 너무 오래되어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 수리를 해야하는것만 빼면 참 고풍스럽다. 한국 같으면 어땠을까? 200여년간 집을 팔지 않고 계속 자식들이 물려받아 관리하는게 가능했을까? 집을 개조해 다르게 쓰거나, 팔거나, 아니면 게스트하우스 같은 식으로 사용하진 않았을까? 여기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집을 다른 방식으로 쓸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집을 처음 산 엘리자 아빠의 아빠의 아빠가 쓰던 물건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들 사진까지 그대로 걸려있다. 그렇게 2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낡은 벽을 살피던 엘리자가 말한다.
“벽이 많이 낡았지? 우리 삼촌이 내년에 다시 칠한다고 했어. 벽이 바뀌면 다시 한번 놀러와”
그런데 왜 이게 일년식이나 걸린담? 한국같으면 하루이틀이면 끝날텐데…
“어휴, 아니야 아니야! 벽을 다시 칠하는게 얼마나 복잡한데…벽의 문양 있잖아? 삼촌이 직접 만들었어. 모든 재료를 여기까지 가져 오고, 또 칠해야 하잖아. 어휴, 생각만해도 힘드네… 아마 내년 여름에 또 고치지 않을까 싶은데… 내년엔 뭐 다 끝나겠지?”
휴우, 그렇구나. 모든게 이런식이다. 이탈리아 시골에선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모든게 천천히 이루어진다. 불편하게 살고 느리게 산다. 와이파이가 없으면 핸드폰 인터넷을 쓰면 되고, 난방이 안되면 겨울엔 사용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한다. 냉장고가 없으면 차가운 샘물에 과일을 담가둔다. 먹을만큼 장을 봐서 그때그때 요리하면 된다고 말한다. 나는 답답하다. 동네엔 수퍼 한 개, 미용실 한 개, 그리고 동네 카페 한 개가 전부다. 다른 가게가 하나둘씩 더 생길법도 한데 사람들은 필요성을 못 느낀다. 나는 잘 모르겠다. 200년 된 집에서 인터넷, 냉장고 없이 샘물을 떠다 먹는 생활. 집안에는 오랜 친척들이 쓴 물건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들은 더이상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한편 여름마다 이곳에 와 집을 고치고 사는 삶이 낭만적이면서 여유로와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왜 엘리자가 밀라노에서 대학을 졸업 후 왜 그렇게 런던으로 오고 싶어했는지, 런던에서 살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녀에게 물었다. 엘리자, 근데 넌 여기서 살고 싶진 않아?
“아니. 여기서 살 순 없지. 내가 여기서 뭘 하겠어. 하하하. 정말 눈물 날 정도로 난 우리집이 좋아. 아름다운 곳이야. 그치만 여기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내가 할일이 아무것도 없어.”
미스테리다. 그렇게 좋은데 여기서 왜 일을 만들어 보지 않을까? 요즘 한국에서 유행이 되어버린 마을 살리기 같은 공동체 사업이 여기선 필요가 없나? 사람들은 동네슈퍼에서 장을 보고 집을 가꾸고 집앞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오래전부터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몇백년을 묵묵히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지… 변하지 않아도 즐거워 보인다.
의심도 든다. 정말인가? 내가 본게 전부일까? 궁금한게 아직 많다. 내년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
글, 사진 / 이승연
클릿슈즈를 신고 북악스카이를 달리는 꿈을 꾸는 여자. 나는 사라져도 내 이야기가 이야기로 남는다면? 나는 이런 상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서울 및 런던, 독일에서 활동 중이며 개인활동 외 영국 작가 알렉산더 어거스투스와 함께 ‘더 바이트백 무브먼트’ 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듀오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국제교류프로그램인 베를린 zk/u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웹사이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