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다양성에서 창조적 다양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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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도시들 가운데 서울을 빼놓고 인천만큼 거대하고 현기증 나는 변화를 겪어온 도시는 없을 듯싶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그러니까 지금부터 110여 년 전, 인천의 인구는 고작 2만5천 명을 웃도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개항 이후에도 한 동안 자그만 항구도시에 불과했던 셈이다. 개항 전에는 그야말로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을 것이다. 그런 곳이 지금은 300만 인구에 육박하는 거대도시가 되었다.

100년 사이에 인구가 100배로 증가했다. 이 사실 속에는 인천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듯하다. 이 정도의 폭발적 증가는 다른 곳에서 대량의 인구가 끊임없이 유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주지하다시피 인천에는 전국 각지에서 이주해 터를 잡은 주민들이 또는 그들의 2세, 3세가 원주민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특정지역 출신이 많기는 하지만,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까지 포함하여 지역적 뿌리가 다른 사람들이 이웃이거나 동료인 곳이 바로 이 도시이다. 다른 어느 도시보다 원주민의 텃세(?)가 없는 것은 이런 까닭이 아닐까 한다. 뿐만 아니라 개항기에는 일본인들이 흘러넘쳤고 서양인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한다. 중국인들은 많이 떠나버렸지만 아직도 한편에서 후손들이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단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었다. 송도신도시에선 조깅을 즐기는 외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인천이란 곳은 다양한 출신과 국적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정착한 (물론 한동안 머물다 떠나기도 했지만) 다원적 도시이다.

도시의 팽창과 격변은 주민뿐 아니라 인천의 조감도에도 참으로 다채로운 색깔과 모습을 입혀 주었다. 바다야 원래 인천의 자랑이었지만, 지금은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섬과 대문짝만한 강화도까지(강화도와 함께 선사시대와 고려의 유산까지) 인천에 편입되었다. 인천은 대지와 바다와 섬을 두루 갖춘 행운의 도시이다. 오래된 역사뿐 아니라 최근의 역사도 이곳엔 차곡차곡 쌓여 있다. 육이오 전쟁 통에 대다수가 파괴되기는 했지만,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서구식 석조건물과 일본식 적산가옥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중국 붐을 타고 차이나타운에는 중국풍의 건물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공장들이 여전히 도시 곳곳에 군락을 이루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다는 최첨단 빌딩 동북아무역센터가 위용을 자랑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길다는 인천대교를 건너면 세계적 수준의 인천국제공항이 있다. 그러나 구도심 뒤편에는 좁은 골목 양옆으로 낡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뜻하는 것은 한 마디로 다양성이 아닌가 한다. 인천을 구성하는 주민도 다양하고 풍경도 참으로 다양하다. 이렇게 풍부한 다양성은 국내 어떤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서울특별시는 특별하니까 예외로 하자). 그런데 다양성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문화적 창조의 비옥한 토양이자 원동력이 되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갈등과 분규의 원인이 되거나 기껏해야 이질적 요소들이 지리멸렬하게 병존하는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인천의 다양성은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사실 이 도시의 혼란스런 모습은 시민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외부의 힘에 의해 타의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서울 중심의 논리에서 파생된 현상, 다시 말해 서울 집중화의 부대현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니까 역사와 지정학적 조건에 따른 다소간 우연적 산물인 셈이다.

이유가 어떠하든 인천은 다양한 출신과 문화가 공존하는 대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이 다양성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수용하면서 다양성의 긍정적 측면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질적 요소가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도시, 다양한 가치와 문화가 창조적으로 공존하는 역동적 도시가 결국 인천이 지향해야 할 미래상일 것이다. 수동적, 종속적 다양성을 창조적 다양성으로 변환하는 이 어려운 과업을 누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방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건강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없으면 이러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 지역의 지도층과 엘리트, 교육기관이 무엇보다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의제가 아닌가 한다.

최성을 인천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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