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따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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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 뮤직 소사이어티 <마님이 된 하녀> 공연

“루체 공연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어요.”(인천문화통신3.0 24호, 이하 동일, 페이지 바로가기▶) 제법 자신만만하게 들리는 이 말은 지난 호에 실린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 관련 인터뷰에서 루체 뮤직 소사이어티의 안희석 대표가 했던 말이다. 필자는 이 말을 기억하며 지난 7월 15일에 검단복지회관을 찾았다. 루체의 <마님이 된 하녀> 공연을 관람 결과는? 한마디로 대박.

공연이 오전 시간이라서 필자는 조금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검단복지회관으로 갔다. 아파트와 공원에 둘러싸인 외관은 역시나 예술 관람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을 위해 잘 가꿔진 문화체육복합시설에 가까워보였다. 티켓을 끊고 공연장으로 들어가고 난 후, 필자는 즉각 안희석 대표의 말이 생각났다. 대규모의 클래식 공연을 하기에는 비교적 협소한 공연장이었지만 분명 이곳은 “관객이 연주자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에 반응하는 관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연장임에 틀림없었다. 공연장 내부는 근처 검단중학교에서 문화체험을 위해 온 학생손님들로 북적였다. 공연 이후에 간단한 체험교실이 이어진다고 전해 들었다. 잠시 후 관객들 모두가 자리에 앉고 공연이 시작됐다.

현악기가 울리는 가운데 무대 뒤쪽 스크린으로 빔에서 쏘아진 오프닝 타이틀이 올랐다. 이후에도 이 스크린에는 오페라의 이탈리아어 노래 가사가 한글자막으로 등장했다. 물론, 스크린에 라이브액션(실사 촬영분)이 영사된 것은 아니지만, 이는 마치 식민지 조선에서 공연되었던 연쇄활동사진극(kino drama, 연극공연 중 영화를 상영하는 극)을 떠올리게 했다. 오케스트라와 스크린, 그리고 연극의 만남! 이러한 탈장르, 장르 융합적인 면 말고도 <마님의 된 하녀>는 그 장르적 기원을 검토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작품인데,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시간을 조금 많이 뒤로 돌려야 한다.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 오페라)’의 시초격인 작품으로 18세기에 등장했다고 한다. 당시엔 신성한 신들의 이야기와 무거운 비극을 다루는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오페라의 인터미션 시간을 한바탕 웃음으로 채웠던 게 바로 <마님이 된 하녀>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오페라의 계보를 따라가 보면 우리는 16세기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팬터마임(pantomime)과 함께 슬랩스틱코미디(slapstick comedy)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희극적 계보를 여기서 다 풀어놓기에는 필자의 역량에 한계가 있으니 펼쳐 두었던 걸 수습하고, 일단은 이러한 희극적 양식들이 상부와 하부가 뒤바뀐 카니발적 민중문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두자. 간단히 말해, 갑이 을에게 하는 매 질에는 눈물이 쏟아지지만, 을이 갑에게 날리는 따귀엔 웃음이 터진다는 것이다.

루체의 <마님이 된 하녀>는 공연이 올라가는 시기마다 극 중 내용이 조금씩 바뀌는 작품이지만 기본적인 플롯은 변하지 않는다. 수 많은 여자들을 울린 죄로 외계인(?) 베스포네는 자신의 고향별 왕에게 벌을 받아 지구로 오게 된다(그래서 자칭 ‘별에서 온 그대’란다). 그 벌의 내용은 100쌍의 커플을 만들어야 고향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중년 신사 우베르토와 그의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 세르피나는 그 미션의 마지막 커플이다. 이러한 줄거리를 보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떠올리는 건 곤란하다. 이 우스꽝스러운 희극에서 갑과 을의 관계는 애초부터 뒤틀어져 있다. 우베르토는 잔뜩 짜증이 난 채로 무대에 등장한다. 세르피나에게 코코아를 가져오라고 시켰지만 그는 무려 4시간 동안이나 그 코코아를 기다리는 중이다. 세르피나는 안하무인으로 일관한다. 좌우간 중요한 건 우베르토가 왜 4시간이나 코코아를 기다리고 있는가이다. 여기엔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다. 그는 코코아가 어디 있는 줄 모른다. 세르피나는 우베르토의 뺨을 때리고, 그에게 윽박지르고, 자신이 원하는 걸(우베르토)를 취하는 반면, 우베르토는 코코아조차 못 마신다.

이런 이야기가 그저 ‘환상’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길. 코미디는 아주 현실적이다. 그건 코미디가 갑을 비웃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님이 된 하녀>에서도 알 수 있듯, 코미디는 을의 역량, 민중적 에너지를 재확인한다. 생산라인을 멈추고 막걸리를 마시러간 노동자들, 책걸상을 뒤집어 등으로 선생님을 맞이하는 만우절의 학생들, 중년 아저씨들을 자주 골탕 먹이던 카페 여급들, 한국을 헬조선이라 조롱하는 청년들에겐 긍정적인 의미의 야만적인 웃음이 함께한다. 단지, 그것들엔 우베르토를 유혹하는 세르피나와 같은 치밀함이 부족할 뿐이다. 지난 인터뷰에서 안희석 대표는 자신들이 시민들의 생활문화가 자립할 수 있도록 그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루체는 베스포네처럼 민중의 웃음과 함께한다. 이 착한 외계인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 

 

글/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사진/루체뮤직소사이어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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