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의 시작, 그리고 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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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부터 30일까지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영상위원회의 주관 하에 아트플랫폼에서 개최된 제5회 디아스포라영화제에 다녀왔다. 이번 영화제는 “환대의 시작”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난민, 여성, 이주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총 50편의 장‧단편 영화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이밖에도 한국문단의 대표 작가들과 디아스포라 영화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 섹션 ‘디아스포라의 눈’, 이주민들이 자국의 최신영화와 배우, 감독을 만날 수 있는 ‘아시아 나우: 베트남 특별전’도 신설되어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았지만 영화제에 관한 기본 정보는 이쯤으로 해두자. 필자는 이번 영화제에서 개막식과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에 참가했다. 그리고 김정은 감독의 <야간근무>(2016), 닐 블롬캠프 감독의 <디스트릭트9>(2009), 김정 감독의 <고려 아리랑>(2016),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 왕 빙 감독의 <타앙-경계의 사람들>(2016) 등의 영화도 보았는데, 이러한 섹션들과 영화들에 대한 감상으로 이번 영화제에 대한 ‘현장비평’을 대신하고 싶다. 

시작의 환대, 그러나 조금은 불안한 시작. 
“환대의 시작”이란 슬로건에서 ‘시작’이란 말을 먼저 꺼내보자. 5회 차를 맞이하는 영화제에 ‘시작’이라는 말을 쓰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지난해보다 늘어난 예산은 분명 이번 영화제를 질적으로 비약시키고 있었다. 늘어난 초청작뿐만 아니라, 개막식을 관람하기 위해 들어선 아트플랫폼의 경관은 이번 영화제를 만든 관계자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단번에 알게 했다. 곧 이어, 개막식이 진행됐다. ‘비정상회담’, ‘문제적 남자’로 유명한 타일러 라쉬와 아나운서 장성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가수 치림(조정치와 하림)이 ‘연어의 노래’와 ‘푸른 낙타’ 등의 노래로 축하무대를 올렸으며,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의 개회사와 임순례 인천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의 개막선언으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개막작은 김정은 감독의 <야간근무>. 그것도 시원한 바람과 주변의 일상적인 소음이 기분 좋게 귓가를 스치는 야외상영이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여성노동자들의 우정을 그리고 있는 <야간근무>는 그 기분 좋은 저녁을 촉촉이 적셔주기에 충분했지만, 영화를 보며 필자는 약간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꼈다. 이 글을 그 불안에 대한 고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야간근무>는 엠비언트 사운드(ambient sound, 현장음)의 활용이 두드러진 영화다. 공장의 시끄러운 기계소리, 거리의 자동차소리, 주변인들의 말소리가 모두 노이즈처럼 내려앉아 있다(물론 여기엔 야외라는 상영환경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시끄럽고 큰 소음들 속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린(스렝 윈니)과 한국 대학생 연희(김예은)의 목소리가 얼마나 작게 들리는지 보여준다. 그 소음들 속에서도 그녀들은 우정을 키워나가며 주말에 바다여행을 가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공장장은 린에게 주말특근을 강요하고, 약속은 깨져버린다. 심지어 연희마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공장을 그만둔다. 이 지점에서 그녀들의 관계는 바퀴가 고장 난 자전거처럼 삐걱거린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갈등을 해결하려는 영화의 방식이다. 

영화는 린과 연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내레이션과 이미지를 묘한 방식으로 접합시킨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린은 캄보디아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부치는데, 이 편지의 답장이 린과 연희의 갈등이 고조되는 영화의 중반부에 도착한다. 이 편지가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캄보디아의 어머니에게서 온 이 편지는 내레이션으로 린의 안부를 묻는데, 영화는 이 내레이션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연희의 어머니의 이미지와 직접 이어 붙인다. 여기서 영화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한 가운데에서 접히고, 린과 연희는 몇 가지 카테고리에 의해 차이가 생략된 채 데칼코마니의 양면 그림이 되어버린다. 그 카테고리는 여성, 노동, 이주라는 디아스포라 담론의 화두이지만, 여기서 그것은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한국 여대생의 차이를 생략하며 그녀들을 등치시키는 텅 빈 기표가 되어 버린다. 이것이 필자가 영화제의 개막작이 다소 아쉽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우리는 아주 쉽게 자신을 디아스포라라고 고백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일 테지만 개막식 내내 무대에서 오고간 말들 역시 자신이 디아스포라임을 고백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수많은 차이들을 디아스포라로 단일하게 묶어내는 일이 아니라, 디아스포라를 통해 수많은 차이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 차이들의 연결을 통해 공격적인 연대의 지형도를 그리고, 이 차이들로부터 다른 삶을 상상한다. 물론 한 영화를 다른 영화와 비교하는 것은 몹시 되바라진 짓이지만, 임흥순 감독이 <위로공단>(2014)에서 구로공단을 훌쩍 날아올라 캄보디아로 착지하는 것은, 한국과 캄보디아의 몽타주를 통해 차이를 드러내고 초국적 자본에 대한 공격적인 연대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디아스포라는 소수자에 대한 동정을 초과한다. 

환대의 시작, 대화를 시작하기
차이를 손쉽게 같은 것으로 묶어내지 않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차이를 ‘본질화’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사유가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차이들의 본질화가 얼마나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모하는지 알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그것은 더욱 도드라진다. 예컨대 <황해>(2010)와 <신세계>(2012)에서 친밀한 타자인 조선족이 ‘괴물’로 형상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반두비>(2009)처럼 디아스포라를 ‘친구’로 만들 수도 있지만, ‘괴물’로 만들 수도 있다. 장강명 작가와 함께 <디스트릭트9>에 관해 이야기하는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말 걸고 있었다. 

<디스트릭트9>는 벌레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모여 사는 구역, 디스트릭트9의 재개발을 둘러싼 사건들을 묘사한다. 외계인들은 짓밟히고 쫓겨난다. 그렇다면, 나날이 ‘벌레’들의 왕국이 되어가는 한국사회와 이 영화는 얼마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장강명 작가는 한국사회에서의 중산층의 몰락과 벌레의 증식을 연관지어 설명했다. 절망만을 안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손쉽게 나오는 문제의 해결책은 ‘탓’할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쇼아(홀로코스트)는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 사례 중 하나다. 물론, 우리는 굳이 쇼아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일상에서 자주 마주친다. 노숙자를 게으름과 직접 연결시키거나 이주노동자를 위험한 범죄자로 몰아가는 게 그것이다. 왜 <황해>의 조선족은 돼지 뼈다귀로 사람 머리통을 깨부수는 원시인이 되는가? 미국 국적 화이트컬러 백인 남성으로부터 시작해 제3세계 블루컬러 유색인종 여성까지를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세상에선 가장 말단에 있는 것부터 벌레, 원시인이 되어가는 법이다. 

장강명 작가와 관객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다. 그리고는 ‘대화’라는 아주 흥미로운 답을 끌어냈다. 대화주의 사상가 미하일 바흐찐은 문화적 실천을 계급, 인종, 젠더라는 특정성 안에 묶으려는 시도를 경고하면서 ‘창조적 이해’를 요구한 적이 있다. 다소 어려운 개념이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상대를 본질화하지 않는 만큼 자신 역시도 본질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다. 이는 김정 감독의 <고려 아리랑 : 천산의디바>(2016)과 송 라브렌티 감독의 <고려사람>의 만남 같은 것이다. <고려 아리랑>은 식민과 탈식민이 세계 곳곳에 퍼트린 역사의 파편, 구체적으로는 고려인 이함덕과 방타마라의 흔적을 찾으러 떠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려 아리랑>은 매우 ‘우발적으로’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카자흐스탄인 꼬발렌꼬 마리야 니콜라예브나(<고려사람>)을 만나게 된다. 꼬발렌꼬의 흥얼거림은 대문자 역사를 의문에 부치며, 한국이란 상상의 공동체에 균열을 일으키고, 코스폴리타니즘(세계주의)을 향해 맹렬히 도약한다.

나가며
김정 감독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우려를 내비친 적이 있다(김정 감독은 트랜스-아시아 연구소의 김소영 연구소장이기도 하다).

“아포리아는 환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와 같은 디아스포라 영화가 찾기 어려운 관객층에도 존재한다. 세계화가 한편으로는 국민국가의 민족과 국가의 결속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을 때, 글로벌화의 상층회로를 달리는 자본가와 엘리트, 그리고 대국의 디아스포라가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네트워크를 이루어가고 있을 때(중국 화교의 경우), 경계에 선 소수자들을 다루는 디아스포라 영화의 관객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김소영, 「파국의 지도」, 현실문화, 2014, p.91)

올해 디아스포라 영화제에는 늘어난 건 예산과 초청작뿐만이 아니다. 지난해보다 두 배 가량 관객이 늘었다고 한다. 많은 수의 인천시민이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가지며 아트플랫폼을 방문하고 있다. 이제 막 환대를 시작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전망이 밝은 이유이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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