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문화회관 상주단체 인천시티발레단 박태희 대표 인터뷰
늘 설레는 마음으로 무대를 만들어요.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공연콘텐츠 강화,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교류 활성화, 지역 우수 공연프로그램 향유 기회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중구문화회관과 인천시티발레단은 본 사업에 각기 공연장과 상주단체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중구문화회관을 방문해 <신데렐라> 공연보고, 인천시티발레단 박태희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이번 공연의 리뷰를 인터뷰와 함께 지면에 실어야 하겠지만 인터뷰를 진행한 후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박태희 대표가 전해준 이야기들은 각기 한 꼭지씩 다뤄도 모자랄 만큼 두터운 두께를 가진 것들이었다. 본 기사는 그의 말을 성실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다만, 인터뷰에 앞서 한 가지 이야기하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지리적 특정성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중구문화회관은 인천항 주변에 형성된 공단 사이에 위치해있다. 그 산업화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신데렐라>를 보며, 필자는 즉각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를 떠올렸다. 영국 북부, 파업이 한참 진행 중인 탄광촌에서 소년 빌리(제이미 벨)는 아버지(게리 루이스) 몰래 발레리노를 꿈꾼다. 그러나 그 사실이 곧 발각되고, 아버지가 빌리를 막아선다. 이러한 억압에 짓눌린 빌리는 분노를 춤으로 승화시키며 거리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그렇게 한참을 춤추지만 빌리는 이내 ‘벽’에 부딪힌다. 이 ‘벽’은 탄광촌의 환경으로서 빌리를 막아서는 동시에, 자신을 넘어설 것은 빌리에게 주문한다. 빌리는 이 벽을 ‘미메시스(모방)’하면서 넘어선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파업진압경찰을 조롱하는 노동자의 동작을 따라하는 것이다. 빌리의 그랑제떼(Grandjete, 양 발을 반대 방향으로 하고 점프하는 발레 동작)가 지닌 야수적인 힘은 여기에 근원한다. 탄광촌과 빌리의 관계처럼, ‘신데렐라(Cinderella)’는 “재를 뒤집어쓰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이 도약에 합류한다. 실제로 공단 한가운데에서 중구문화회관과 인천시티발레단의 발레공연은 그랑제때로 폴짝 날아올라 아시아에 가닿고 있다. 박태희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 상주단체로 선정되어 활동하고 계신다. 인천시티발레단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인천시티발레단은 2003년에 ‘박태희 발레비전’이란 이름으로 처음 창단되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활동해오다가 3년 전 상주단체로 선정되었고, 뉴욕시티발레단이나 도쿄시티발레단처럼 우리도 발레와 더불어 인천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인천시티발레단’으로 단체명을 변경했어요. 창단 당시 무용수들이 15명이었는데, 다들 인천출신이었죠.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분들, 프로페셔널 무대에서 활동하다 인천으로 오신 분들 중 저희와 뜻이 같은 분들과 함께 만든 단체에요. 저희 발레단은 기존에 순수예술을 하는 발레단과는 틀을 달리하자라고 생각해서, 연극, 뮤지컬, 발레의 3색의 조화를 통해 관객 분들께 좀 더 친숙하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 올해 상주공연장을 서구문화회관에서 중구문화회관으로 옮기셨다. 2013년에도 중구문회화관에서 신데렐라 공연을 올리긴 했지만, 공연장과 상주단체로 만나는 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최근 <신데렐라>로 첫 공연을 올렸는데 소감이 어떨지 궁금하다.
시험 보러간 느낌처럼 굉장히 떨렸습니다. 저희가 이전에 한국예술문화회관연합회 사업으로 중구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관객 분들도 많이 오시고 공연도 참 좋았던 게 기억나요. 지금은 저희가 상주단체로 오니까 느낌이 사뭇 다른 것 같아요. 또 그때보다도 무대장비라든지 저희 무용수들의 역량이 상당히 좋아져서, 좀 더 잘해보자, 그런 욕심이 조금 났던 것 같아요. 상주단체로는 첫 공연이라 긴장도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공연 첫째 날 보다는 둘째 날 훨씬 여유 있게 공연을 잘 마쳤어요. 객석도 관객 분들로 가득 찼습니다. 기자님께서도 둘째 날에 오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네요(웃음).
3.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중구문화회관 만의 특색이나 장점을 소개해 달라.
일단,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공연장 컨디션이 인천의 공연 장 중 최상 그룹에 속해요. 아무래도 서구문화회관은 설립 된지 오래라 장비들이 조금 노후화되어있었는데, 중구문화회관은 무대 규모라든지, 조명이라든지, 음향이라든지 하드웨어들이 인천에 있는 공연장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이에요. 실제로 무대를 준비하면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공연장과 협력해 이 하드웨어들을 잘 이용해야하는데, 아직 서로 익숙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공연장하고 상주단체가 서로 요구하는 게 다르다 보니까요. 그렇지만, 공연장들도 각각 공연장만의 룰이 있고, 저희도 저희만의 룰이 있으니, 서로 대화를 통해 맞춰 나가야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보다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4. 공연 이야기를 해보자. 시티발레단의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는 걸로 아는데, 이 중 <신데렐라>는 어떤 작품인가?
각각의 특징이 있는데, <신밧드가 부릅니다. 열려라 발레>는 해설이 있는 발레에요. 작품 해설을 통해서 관객 분들과 발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죠. <빨간모자>나 <호두까기인형>는 전형적인 클래식 작품들이고요. 그리고 이들 중 <신데렐라>는 저희 발레단의 레퍼토리 중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계속 발전시키고 있는 작품이라, 완성도도 가장 뛰어나죠. 이전에 한 번 언급을 했었는데, <신데렐라>는 중국으로 수출이 예정되어 있던 작품이에요. 비록 지금은 사드 문제로 잠시 연기되었지만요. 중국 관계자 분이 <신데렐라> 공연을 보고는 이 작품을 중국에서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해서, 상하이에서 100회 정도 공연을 하기로 했었죠. 100회 공연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죠. 대신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대 막을 새로 만들어 달라는 거였어요. 공연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궁궐에 저희가 동양의 궁궐의 느낌을 새겨 넣었어요. 금장과 붉은 색 색감을 이용했죠. 중국 쪽 관계자도 그런 걸 바란 거구요.
5. 흔히 서구의 예술로 알고 있는 발레가 동양으로 들어와 문화적으로 번역을 거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제가 러시아의 발레 마스터클래스에 있을 때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셨어요. 작품을 만들 때 러시아작품을 그대로 따라하려고 하지마라. 그건 모방이다. 한국의 사람, 문화, 사유를 겸비해라. 그래서 <신데렐라>의 궁궐을 만들 때도 동양적인 궁궐을 만들자,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분장도 마찬가집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분장을 동양 사람들에게 그대로 쓰면 절대 안 어울려요. 우리에게 어울리는 걸 찾자면 자연히 색감도 달라지는 거죠. 각각의 지역엔 그 지역만의 특색이 있어요. 예를 들어, 같은 아시아 국가라도 기후에 따라 사람들의 피부나 색이 미묘하게 달라지죠. 몽골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세요? ‘무지개 나라’라고 생각한데요. 색감이 너무 뛰어나고 사람들이 굉장히 세련되어있다는 거예요. 몽골의 경우 발레단이 만들어진 게 80년이 됐는데, 그러다보니 작품성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요. 또 러시아에 가깝다보니 거기에 영향을 받아 작품들이 조금 어둡죠. 그래서 몽골 분들이 SNS를 통해 한국 발레를 보니까, 색이 화려하고 너무 재미있다는 거예요. 저희와 작업을 같이하고 싶다는 연락이 자주 와요.
6. 이야기를 듣다보니 발레가 인터-아시아적인 문화예술이라고까지 생각이 든다. 대표님께서는 아시아 쪽으로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 부탁드린다.
최근 한국, 몽골, 일본의 발레단들과 함께 아시아국제발레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공동대표를 맡았는데, 발레페스티벌을 운영할 계획이에요. 안무자들이나 대표들이나 굉장히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이번에 몽골 공연을 갔었는데, <스타르타쿠스>나 <호두까기 인형> 등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안무를 도맡아서 한 유리 그리가로비치(Yury Nikolayevich Grigorovich)라는 분의 작품을 같이하자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남녀주역들하고 공연하러 몽골에 갑니다. 발레페스티벌의 첫 회 공연은 몽골에서, 그 다음은 차례대로 한국, 일본에서 할 계획이에요. 제가 이전에 여기 왔을 때, 인천을 발레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게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굉장히 기분 좋게 작업하고 있어요.
7. <신데렐라> 공연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두 자매의 연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슬랩스틱적이기도 하고, 어릿광대들보다도 더 자유롭게 무대를 활보하는 게 참 보기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계모의 경우엔 남자 무용수가 역을 맡아 굉장히 묘한 느낌이 든다.
이전에 볼쇼이 발레단에서 안무자가 와서 <신데렐라> 공연을 했던 적이 있는데, 단조음악이 많이 흐르고 무대도 어둡고 칙칙해서 보는 사람이 좀 힘든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신데렐라>는 사실 왕자와 공주가 나오는 환상적인 스토리잖아요. 그래서 너무 어렵고 무게감 있게 가면 안 되겠다고 그때부터 생각했어요. 제가 연출과 안무를 다시 한다면 이 부분을 좀 바꾸고 싶었죠. 두 자매와 계모 역도 재밌게 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신데렐라>에서 중심적으로 극을 이끄는 역은 두 자매와 계모에요. 그래서 캐릭터를 잘 잡아야 했어요. 우선 두 자매 역을 맡은 단원들에게 이 부분을 주문했어요. 둘이 만나면 어떻게 싸울지와 어떻게 서로를 골려줄지만 생각하라고(웃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어요. 한 달을 작업했어요. 연습하지 않고는 못하는 부분이에요. 계모의 경우엔 조금 억센 느낌과 강한 이미지를 어필하는 게 필요했어요. 그래서 멀리서 봐도 움직이는 스케일이 큰 남자 단원에게 역을 맡겼죠.
8. 무대에 어린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던데, 발레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는 학생들인가?
시계 춤을 췄던 학생들이죠. 저희 아카데미 학생들이에요.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된 친구들인데 발레를 전공으로 하고자하고 있어요. 이렇게 어릴 때부터 무대를 선다는 게 어린 학생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유니버셜 발레단의 이동탁과 정연화도 저희 아카데미 출신들이에요. 관객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전율감, 그 앞에 선다는 용기, 백스테이지의 경험까지. 무용수는 무대 경험을 통해 성장해가는 법이에요.
9. 대표님께선 발레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저희 어머니가 이북분인데, 어릴 때 거기서 신무용을 하셨어요. 그러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대동강을 건넜데요. 어머니께서 남한으로 오셨는데, 당시 무용을 하기에는 이곳이 너무 척박했던 거예요. 그렇다 보니 자식들이 무용을 했으면 하셨나 봐요. 오래 전에 대구에 국립발레단이 공연을 왔던 적이 있는데, 그걸 같이 보러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사춘기 때 본 그 공연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게 직업이 될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발레 시작하게 됐습니다.
10. 대표님께서도 선생님 역으로 무대에 오르셨다. 아직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표님께 무대에 선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슴 떨리는 일이죠. 심지어는 <신데렐라> 공연 때만 무대에 올라요. 그런데,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역시 무대에 오르기 직전 분장을 하는 때에요. 이번에도 앉아서 분장을 하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무대를 떠나고 나면 그게 그리워져요. 그래서 가끔 무대를 서보는 것 같아요. 사실, 무대라는 게 연습을 하지 않고서는 설 수 없는데, 저는 매일 학생들 클래스라던가 리허설에도 같이 참여하고 있어요. 무용수들과 같이 땀을 흘려야 무용수들의 개성을 빨리 파악하고 그들에게 맞는 역도 만들어낼 수 있죠. 저는 제가 무대를 설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서고 싶어요. 엑스트라도 괜찮아요. 그냥 소품 들어주는 사람도 괜찮아요. 그렇게 해서라도 계속 무대에 서고 싶어요. 무대에 선다는 건 항상 가슴 떨리고 설레는 일이에요. 그 설레임이 우리 발레단을 계속 이끌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11.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함께, 시티발레단의 공연을 찾을 시민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이번에 중구문회화관으로 상주 공연장을 옮기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 듭니다. 서구문화회관에서는 팬층이 그래도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었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거죠. 그리고 또 중구문화회관 공연장의 접근성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어요. 뭐든 다 가지고 있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시아국제발레협회 활동을 통해 아시아 여러 국가들과 교류를 해나가는 것도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퍼블릭 프로그램을 통해 인천 시민들께 직접 찾아가는 무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 2회를 마쳤는데, 앞으로 3회가 더 남아있어요. 다음은 중구 내에서 할 계획이에요. 그리고 차후에 송도 센트럴파크나 트라이보울 근처에서도 공연하게 될 것 같아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인터뷰, 글/ 박치영 문화통신3.0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