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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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풍경사진을 보며 감동받은 이유를 그곳이 시골이든 도시든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거주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단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어떤 곳에 살고 싶다는 마음은 그 장소가 방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마치 이곳이 과거 내가 살았던 것 같은 아니면 확실히 이곳에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어떤 운명적인 만남처럼 행복한 곳이다. 프로이트는 어머니의 육체에 대해 “우리가 과거에 이미 그 안에 존재했음을 그토록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다른 장소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그곳에 잠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고 싶은 욕망은 ‘내 안에서 전혀 불안하게 하지 않는’ 어머니를 남몰래 되살아나게 하는 곳이다.

25년 전 중구청 앞 네거리에 운명처럼 첫눈에 반해 작업실을 만든 곳이 있었다. 2층 적산가옥으로 이름 모를 풀씨가 지붕에 꽃을 피울 만큼 낡은 곳이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아담한 정원에는 모란이 탐스럽게 피고 지던 곳이다. 고흐의 작업실처럼 나무 계단 위로 올라다니며 매일 창작의 꿈을 꾸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다 주인집 아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건물을 헐고 5층 빌딩을 짓는 바람에 나는 이곳을 떠나야만 했고, 주인 역시 과도한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일이 바빠서, 또 외국으로 삶을 이주한 후에도 몸은 이 곳을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늘 이 곳을 잊지 못했다. 결국 지금은 홍예문 근처, 창문을 열면 손바닥 만한 바다가 보이는 곳에 공간을 만들어 다시 돌아왔다. 
내가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항구에서 뱃고동소리가 들리고 가끔 바다 안개가 홍예문 정상으로 올라오는 곳. 사계절 자유공원의 숲길로 산책이 즐거운 곳이다. 그런데 자유공원은 최근 눈과 귀가 피곤할 정도로 과도한 조명과 음악 소음이 넘쳐나 편하지 않다. 중구 일대 구도심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과도한 장식들로 넘쳐난다. 화장기 들뜬 분칠된 얼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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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문화적 가치란 무엇인가? 그런 것이 따로 있기는 한 것인가? 개항장 최초의 역사들, 근대 건축물과 각종 기념비와 박물관, 차이나타운, 섬들의 가치, 해양 다문화적 성격 등을 인천의 특별한 문화적 가치로 보는 것은 인천 시민들이 욕망하는 기대치의 신화들이다. 지금 이러한 것들은 인천이라는 장소 특정성으로 규정하기에는 현실 공간에 존재하더라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풀린 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실례로 최초의 철도 시발점인 인천역에는 조악한 기관차 돌조각이 볼품없이 서 있고 관광안내소 건물 뒤편에 심은 철도 시발 기념 식수 은행나무는 방치되어 있다. 차이나타운은 중국음식거리로 변질된 지 오래고, 그 옆 송월동은 동화마을 판타지로 마을 전체가 상품이 되었다. 다른 지역 벽화마을은 주민들이 나서 철거할 정도로 실패한 지 오래인데, 그 전철을 이제야 밟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넘쳐나 단기간에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언제까지 흥할 수 있을까? 급조된 것들은 오래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얻을 수 없다.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지 못한다면 그곳을 다시 찾지 않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최근 인천의 섬을 창조적으로 활성화한다고 무의도에 카지노를 설치하고 백령도에 비행장을 만든다고 한다. 또 다른 섬들에는 골프장과 리조트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 중 무엇 하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문화적 가치란 타 지역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유사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런 곳은 세상에 많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장소, 그 장소가 가진 특성을 살려서 차이를 만들어낼 때 고유한 문화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적어도 인천의 문화가치라고 한다면 불필요하게 덧붙여진 장식들을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구청 일대 일본거리는 껍데기만 일본풍으로 덮은 짝퉁 거리가 된지 오래다. 더 이상 중,동구 일대 인천의 원도심이 특색 없는 도시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원도심의 오래된 가옥을 허무는 것도, 무분별한 주차장 만들기도 그만둬야 한다.

원도심에는 낡고 허름한 집 역사만큼이나 그곳을 오랜 세월 묵묵히 지켜온 주인들이 있다. 중고 서점, 카페, 음식점, 재래시장… 오래된 가게들이 유산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다. 역사와 추억이 깃든 것들은 시간이 만든 아우라다. 한 번 훼손되면 다시 복원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부실 공사로 중단된 월미은하모노레일 재공사, 대책 없는 국제선여객터미널 이전, 산업도로 신설로 배다리 마을공동체를 두 조각내는 것은 인천의 문화정체성과 가치를 죽이는 일이다. 이런 일들에 소요되는 비용의 1/10만이라도 좋다. 원도심의 낡은 가옥을 시가 매입하고 문화예술가에게 기획이나 창작을 할 수 있는 거주공간을 만들어 준다면 전국의 문화예술가들뿐 아니라 외국에서까지 좋은 작가들이 몰려들 것이다. 더불어 갤러리 유치에 인센티브를 주고, 문화 공연이 가능한 카페와 오래된 음식점이 활성화되도록 한다면 어떨까? 그들이 만들어내는 뛰어난 창작물은 반드시 인천을 소재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천에 거주하면서 생산한 작품들은 결국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높여줄 것이다. 인천은 아직도 광역시 중 유일하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곳이다. 언급조차 되지 않는 걸 보면 시에서는 아예 의지가 없는 모양이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쉬바빙 같은 마을에서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인천을 기록한 사진과 영화를 보고, 연주도 듣고 연극도 관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그들의 창작행위가 365일 이루어지는 작은 축제들이 있는 곳, 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게 만드는 곳이 되는 것만큼 좋은 문화적 가치는 없을 것이다.

이영욱(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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