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성은 일제시대 약간의 조사 자료를 남긴 외에 별다른 보호 조치가 없었으며, 광복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땔감으로 산림이 황폐화되는 등 더욱 퇴락하였다. 다행히 1949년 인천시립박물관의 조사가 있었고, 1958년에는 동문지(東門址)를 복원하고, 인방석에 「문학산성동문」임을 각자(刻字)하는 한편 도천현에서 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에 ‘십제고도문학산성(十濟古都文鶴山城)’이라 새긴 표석을 세웠다. 그러나 1960년 미군부대 공사가 진행되면서 문학산 정상부를 삭토하고 산성의 서문지(西門址)와 성벽을 헐어버렸다. 1962년에 부대가 들어서면서 봉수대와 건물지 그리고 동·서문 자리 등까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965년 간행된 이종화(李宗和)의 도록 『문학산』만이 그 이전 산성과 주변 지형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인천시사』에 기록된 비류(沸流) 유적, 문학산성에 대한 발췌 내용이다. 글의 말미에 나오는 사진작가 이종화(?∼1974) 선생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인천의 주산인 문학산의 원래 모습을 후대 사람들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이설(異說)이 있는 비류왕릉의 위치에 대해 문학산 북록 돌출부에 있는 고총(古塚) 사진을 제시해 ‘문학산 비류왕릉설’을 뒷받침하기도 하였다.
이종화 선생은 본업이 의사였지만 사진작가, 향토사가로서 10년 가까이 자비(自費)를 들여 사계절 문학산의 변화 모습을 당시에는 몹시 귀한 컬러사진으로 기록했는가 하면, 인근의 사적과 전설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조사함으로써 귀중한 향토사 자료를 남긴 분이다. 선생은 1962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인천지부 결성 당시 초대 지부장을 지냈고, 동시에 인천사진협회를 태동시키면서 역시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38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해방 후 인천에서 개업을 하고 인천의 사진작가로서 활동한 이종화 선생에 대해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가 ‘인천 태생도 아닌 그가 인천의 주산인 문학산에 쏟은 애정은 참으로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한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우리 시사(市史) 인물란에는 그가 올라 있지도 않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