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이모들, 그림자극을 만나다.- 반딧불이도서관 ‘通通(통통) 그림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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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무거운 책을 들고 도서관을 오가면서 우리 집 바로 앞에 도서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핀잔에 도서관이 멀기 때문에 책을 읽기 어렵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정말로 동네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도서관들이 생기고 있다. 바로 작은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은 시립도서관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아파트 단지 내, 혹은 상가처럼 지역주민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마을공동체의 생활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인천 남구 용현동 신창아파트 단지 내에도 작은도서관이 하나 있다. 바로 반딧불이 도서관. 이 도서관은 2006년에 개관했으며, 10여명의 지역주민이 자원봉사를 통해 운영하고 있다. 반딧불이 도서관에는 여타 작은도서관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통통그림자극’의 회원들이다. 동네에서 ‘도서관 이모’로 불리는 그들은 도서관을 지키며 동네의 아이들을 만났고, 아이들이 책과 쉽게 만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반딧불이도서관의 관장이기도 한 송은이 씨는 ‘통통그림자극’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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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이 : 저희 회원들은 모두 도서관의 자원활동가들입니자. 도서관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책을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다른 도서관 같은 경우에는 독후활동을 많이 하거든요. 평범하고 지루한 독후활동 대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림자극을 알게 되었어요. 도서관에 있는 전래동화 같은 것을 골라서 각색하고, 아이들에게 공연해 주었던 게 시작이었어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 3~40명이 앉으면 가득 차는 그야말로 ‘작은’ 도서관에서 그림자극 공연을 열자 도서관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회원들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다 전문적으로 공연을 만들어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림자극의 ‘ㄱ’자도 모르던 그들은 남구 평생학습원의 학산콜 프로그램을 통해 그림자극을 배우기 시작했다. 연극 강사가 직접 도서관을 찾아 회원들을 도와주었다. 인천문화재단의 생활문화동아리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하면서 그림자극은 점점 더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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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애 : 도서관 안에서만 그림자극을 하다가, 학산문화원이 새단장 후 다시 문을 열 때 저희가 초청 공연을 하게 됐어요. 직접 만든 작은 무대에서만 공연을 하다가, 큰 무대에서 마이크를 차고 진짜 조명을 가지고 공연을 하고 나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도서관에 있는 탁자 두 개를 엎어놓고 현수막 천을 두르고 테이프를 감아 무대를 만들었어요. 핸드폰 불빛을 조명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집에 굴러다니던 캠핑 랜턴을 사용하기도 했죠. 종이 인형도 처음에는 얇은 종이에 그린 것을 코팅하고 나무젓가락을 붙여 만들었어요. 강사님을 통해 두꺼운 파일지와 스테인레스 철사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인형에 관절을 만들고, 움직임을 표현할 수도 있게 되었죠. 인천문화재단 지원금으로 무대와 조명을 마련하기도 했어요.

이훈희 : 공연을 계속 하다보니 욕심이 생겨요. 도서관이 작아 지금은 아이들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도 많거든요. 온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볼 수 있는 넓은 공연장도 있었으면 좋겠고, 장비가 많아지다 보니 창고도 필요해졌어요.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더 좋은 공연을 만들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엄마로, 주부로, 도서관 자원활동가로, ‘통통그림자극’ 회원으로, 몸이 열 개라도 바쁘지만, 그들은 그림자극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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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 공연이 없을 때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여 어떤 작품을 어떻게 각색할지 회의를 해요. 공연을 앞두고는 일주일에 서너 번, 주말에도 모이고 밤에도 모이고 계속 모여 준비를 하죠. 직접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오리고. 무대를 만드는 과정이 전부 수작업이기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아요. 공연을 준비하다 손을 다쳐서 한동안 병원에 다니기도 했어요. 힘들지만 완벽하게 공연을 준비하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생겨요. 가족들도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공연을 보는 아이들이 그림자극을 재미있어하고, 그림자극으로 인해 도서관을 친숙한 공간으로 느껴 자주 찾아오게 되는 점이 가장 뿌듯해요. 와서 만화책 한 권을 읽고 가더라도,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죠. 길가다 마주치는 아이들이 “어, 도서관 이모다.”, “그림자극 하는 이모다.”하고 알아봐 줄 때도 기분이 좋아요.

이훈희 : 사실은 우리 아이들이 책과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도서관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그림자극도 하게 되었어요. 저희 아이도 어리고 엄마가 이런 활동을 하니까 아이들이 도서관을 함께 자주 오게 되잖아요.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니 동네의 다른 아이들도 만나게 되고, 더 많은 아이들을 위해 활동을 계속 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더 자라서 더 이상 그림자극을 보지 않는 나이가 되어도 다른 아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이 활동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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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 아이가 책과 친해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은 엄마를 도서관으로 이끌었고, 내 아이에 한정되어있던 바람들은 동네의 다른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넓어졌다. 깜깜한 무대에 밝은 조명이 켜지고, 알록달록 종이 인형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큰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도서관은 삭막한 회색도시에 색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꿈은 더 넒은 공연장에서 더 많은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을 만나는 것. 작은 반딧불이도서관이 마을 전체를 밝게 빛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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