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큐레이션(2016.1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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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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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면 ‘동년배’ 정도의 의미일까. 컨템포러리(Contemporary)는 신세대, X세대, 실크세대 등 특정 기간으로 묶인 ‘동일 세대’를 뜻하는 용어다. 혹은 현대, 현대성, 현대인을 지칭한다. 지금의 예술은 현재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 의해 탄생된다.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의 틈을 만들어내는 것, 그 시대와 거리를 두고 시차를 만들어내는 것.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장면을 합치는 것. 시간들을 함께 놓기.” 이건 철학자들의 이야기. 다른 나라의 예술(인)과 우리나라를 연결할 것 없이, 여기 살아있는 예술가들을 ‘동시대성’으로 이어붙일 것 없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늙는 인간 개개인을 가여워하자. 연습도 많이 했고 연주도 뛰어나지만 ‘세대’에서 좌절한 어느 기타리스트에 관한 짧은 이야기.

나의 모든 사랑이며 영원한 전부인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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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고유명사가 아닌 숫자로 시작한다. 너는 호모 사피엔스 7341874089명 가운데 한 명이고, 집에서 직장까지 58분이 걸리며, 하루 평균 2074㎉를 섭취한다. 지난해 먹은 라면은 일흔여섯 개고 1년에 육류를 47.6㎏ 정도 먹는다. ‘너’를 설명하는 어떤 표현은 네 옆의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중독인 너, 자녀 1인당 양육비로 3억을 쓰는 너, 부부의 연소득 1년치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절대 빚은 갚을 수 없는 너, 자살률 1위에 빛나는, 인구 10만명당 28.5명이 자살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너.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 호모 사피엔스는 말한다. 이런 시대에도, 이런 나라에서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사는 게, 잡은 줄을 탁 놓아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귀한 것이라고. 천년만년 살아남으라고.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알겠니? 너, 그런 너를 위한 콩트. 나는 너다.

스마트폰이 진짜 우리의 두뇌
  

 ‘세대’는 사회변동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역사적 구분, 출생연도, 생애주기 단계에 따라 수많은 세대 용어가 만들어지고 또 사라진다. Z세대는 1995년 이후에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붙들어 맨다. 그 이전 세대는 성인이 된 뒤에 디지털 문화를 겪었지만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혹은 유년시절부터 경험했다. 호모 사피엔스(지능을 가진 현생인류)에서 호모 디지쿠스(디지털 시대의 신인류)로의 진화. 호모 디지쿠스들은 인터넷(모바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영상매체에 친숙하고 텍스트도 이미지처럼 덩어리 단위로 읽는다. 선생, 지식의 권위도 달라졌다. 교실 안에서든, 교실 밖에서든 어른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엄지세대는 아주 자연스럽게 두 눈 앞에 혹은 두 손 안에 자기 머리를 들고 다닌다. 그 머리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가득 찬 머리다.” 지식은 자신의 스마트폰 속에 있다. 차이는 다름을 만들어낸다. Z세대뿐이겠는가. Y세대, 밀레니얼 세대….

가난한 자, 시방 위험한 짐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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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비리나 부정부패를 저지르기 쉽고, 성격도 원만하지 않아 조직문화에 융화되기 힘들다. 설마 그럴까? 기자는 여기저기 의견을 묻는다. “가난을 극복한 게 자랑은 아니니까요.” “많은 개인적 경험 탓에 회사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에요.” 가난을 전염병으로 여기며 기피해온 사회. 가난을 숨기는 시대의 에티켓을 따르는 사람들. 대개 가난하지만 아무도 가난한 척 하지 않는 시대.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미당의 시를, 기자는 떳떳하게 인용하지 못한다. “가난이 ‘댁에게 이런 꼴을 보게 해 몹시도 송구한’ 바바리맨 같다”는 비유가 못내 서글프고, 한심하고, 쓸쓸하다.

이재은(뉴스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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