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즐거움을 큐레이션합니다: 이종범 『스펙타클』 발행인 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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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인천의 즐거움을 큐레이션합니다이종범 『스펙타클』 발행인 겸 편집장

박현주(경인일보 사회팀 기자)

인천 청년들이 취재한 인천 이야기, 지역 잡지 『스펙타클』

“인천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알려주고 싶었던
공간과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달 창간호를 낸 잡지 『스펙타클(Spectacle)』 발행인 겸 편집장인 이종범(29) 씨는 이같이 말했다. 표지에 적힌 말 그대로 인천에 사는 ‘인처너(Incheoner)를 위한 잡지’다. 이 씨는 편집자 주에 “인천에 깊숙이, 혹은 느슨하게 한 발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지면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인천하면 흔히 떠오르는 일관된 상상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목차를 이룬다. ‘차이나타운 어느 집 자장면이 원조인지’, ‘월미도 테마파크에서 무슨 놀이기구를 타야 재밌을지’ 이런 진부한 소재를 다루는 책자가 아니다. 인천이 꽤 익숙한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졌다. 이 씨는 이번 호 주제인 ‘코로나 시대의 로컬’에 대해 “팬데믹 상황이 불러온 단절 속에서도 우리의 도시를 즐겁게 바라보는 방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스펙타클』에는 인천의 사람, 가게, 풍경,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권 없이 떠날 수 있는 인천의 세계 여행지를 소개한 내용도 그중 하나다. 중앙아시아부터 오세아니아·아메리카·유럽·동남아·동북아 등 각 대륙의 음식을 파는 곳이 상세하게 정리돼있다. 인천 곳곳에 있는 외국 음식점에서 이국적인 맛을 즐기고 여행하는 기분도 낼 수 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부평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미얀마 유학생 술라와의 인터뷰에서는 인천이란 도시가 가진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찾기 힘든 미얀마 음식점이 부평에 가면 여럿 있다는 그의 얘기처럼, 부평은 유학생, 노동자, 활동가 등 재한 미얀마인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활성화한 곳이다. 야채 곱창과 가수 ‘SS501’을 좋아하는 술라의 일상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2월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현지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끊기고, 주변 사람이 군부에 의해 끌려갔다는 짧은 인터뷰에서 미얀마가 처한 비극은 더 크게 와닿는다.

집에서 마시는 ‘홈술’이 지겨운 이들을 달랠 지역 ‘혼술 플레이스’도 빼놓을 수 없는 읽을거리다. 집에서 가볍게 마시는 캔 맥주 대신, 도수 높은 위스키가 끌릴 때 방문하기 좋은 곳들이 포함됐다. 인하대 인근의 가게 2층에는 서가에 가지런히 놓인 책 사이로,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가 놓여 있는 ‘심야 책 바(Bar)’가 있다. 입구에 “취기가 아닌 공간과 술을 즐겨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눈길을 끄는 곳. 홀로 술을 즐기는 이에게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평리단길 일대 양복점 외관을 한 가게는 와인과 막걸리, 소주 등 다양한 주종을 판매한다. 젓갈 파스타, 봉골레 떡볶이, 스위스식 감자전 등 ‘무(無)국적’ 안주가 주종을 가리지 않고 입안 가득 달곰한 맛을 돋운다.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술집은 직접 구운 쿠키와 맥주·위스키를 주로 내놓는데,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니 홀로 낮술 즐기기 딱이다. 잡지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내가 아는 인천에 이런 곳이 있나’하는 생각에 빠진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동료들과 인천을 탐방하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우리, 학교 문집 만들 듯 소소하게 할까요?
아니면 기왕 하는 거 좀 의미 있게 한번 해볼까요?”

이 씨가 잡지 『스펙타클』을 만들게 된 계기는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그가 지난 3월 결성한 지역 청년 모임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1기 팀원들이 “우리 활동을 바탕으로 책 한 권 내보자.”고 제안했던 게 시작이었다. 제작비는 책이 발행되길 바랐던 시민들의 후원으로 충당했다. 인천에서 일하는 청년 10여 명은 3~4명이서 팀을 이뤄 동네를 탐방하고, 인천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기획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분야의 창작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인천 스펙타클과 강화유니버스가 함께 진행하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썸머세션의 3일차
(출처: 인천스펙타클 인스타그램)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만나서 교류하는 활동이 많이 제한됐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를 만든 이유입니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의 팀원은 학생이고, 교육자이자 연구자다. 다 같이 콘텐츠를 발굴·기획하면서 어떤 주제든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폭넓은 범위에서 활동이 이뤄진다. 어떤 날에는 공방에서 나뭇조각을 깎아 숟가락을 만들고, 또 다른 날에는 40년 가까이 운영된 LP 재즈 바에서 공연을 듣는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의 새로운 취미인 등산을 체험하기 위해 계양산을 갔다가 초입길에 있는 맛난 커피집을 들르기도 했다. 이렇게 지난 6개월 활동을 마무리한 1기 팀원들의 발자취는 『스펙타클』 창간호에 담겼다. 지난달에는 40명의 팀원이 새로 꾸려진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2기에 합류했다. 이들의 활동은 내년에 발간될 『스펙타클』 2호에 반영된다. 이 씨는 지속해서 지역 모임을 운영할 계획이다.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게 뭔지 고민했습니다. 취향에 맞는 공간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겠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가 인천에서 좋은 동료를 만날 수 있는 모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종범 기획자는?

이 씨는 2017년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을 출간했다. 개항기 일본식 목조 건물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카페와 송도국제도시 마천루 사이에 자리 잡은 커피집까지 총 30곳을 방문하고 책으로 집필했다. 그는 동네 특색과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카페라고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가장 작은 단위의 문화 공간이 카페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 2017 『인천의 창작자들』, 2019
(출처: 인천스펙타클 인스타그램)

“서울로 대학교와 회사를 다니다 보니 길거리에서 허비하는 시간만 3~4시간이더라고요. 그런데 주말에도 서울에 가서 문화생활을 할 때가 많잖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천에서도 퇴근 후와 주말의 삶을 보낼 만한 근사한 곳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역 카페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어요.”

2019년에는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는 『인천의 창작자들』을 발행했다. 음악·미술·디자인·공예 등 인천에서 활동하는 청년의 삶과 활동을 담았다. 이 씨는 지난 5년간(2017~2021년) 지역 사회 문화 기획이나, 창작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예술반점 길림성, 인천 서구 크리스마스마켓, 인천크리에이티브 마켓 서멀장, 인천시 문화가 있는 인천애뜰 콘텐츠 등을 기획했다. 앞으로도 도시 인천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를 찾는 게 이 씨의 목표다.

“언제 타도 북적이는 용산행 지하철에 가까스로 몸을 구겨 넣으면, 맞은편에 텅 빈 동인천행 승강장이 눈에 들어와요. 인천이란 도시가 서울과 인근 지역을 향하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 아닌, 충분히 내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라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인터뷰 진행/글 박현주(朴賢珠, Park Hyeonju)

경인일보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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