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 ‘인천’의 시간과 공간 담는 ‘이야기꾼’: OBS경인TV 박철현 프로듀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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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 ‘인천’의 시간과 공간 담는 ‘이야기꾼’OBS경인TV 박철현 프로듀서(PD)

박현주(경인일보 기자)

‘해양 도시, 한반도 화약고, 실향민의 터전, 자동차 산업의 요람, 노동 운동 산실…’ 인천을 지칭하는 말은 무수히 많다. 이 도시의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OBS경인TV 박철현 프로듀서(PD)는 인천을 아울러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인천과는 그렇게 가깝지도, 그다지 멀지도 않은 충북 제천 출신인 박 PD는 2004년 OBS의 전신인 iTV에서 일하면서 인천에 정착했다.

인천과는 야구라는 접점이 있었다. 그가 응원했던 전북 연고 프로야구 쌍방울 레이더스는 지난 2000년 해체됐는데, SK와이번스가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인수한 뒤 팀 연고지를 인천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직장을 위해 온 인천에서 ‘내 팀’을 조우하니 이보다 반가울 수 없었다. 프로 야구 정규 시즌에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 야구장을 찾았다. 인천을 ‘야구 도시’로 접한 박 PD는 인천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도 빼놓지 않았다.

박 PD는 자신을 연출자, 편집자라고 하지 않는다. 인천이라는 도시 속에 축적된 시간과 공간을 샅샅이 톺고 살피는 ‘이야기꾼’이 더 어울린다고 한다.

인천 섬 곳곳에 사는 주민의 삶과 이야기박 PD는 2014년 겨울, 다큐멘터리 촬영차 울도를 방문하면서 인천의 섬 이야기를 다루기로 다짐했다. 당시 울도에는 2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도민 중 젊은 축에 드는 건 60대였고,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나가는 사람은 있어도, 정착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 섬이었다. 그물이 터질 정도로 새우와 조기가 잡혔던 이곳은 한때 서해 어업의 전진기지였다. 과거의 영광은 남겨진 폐가들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울도는 하루로 보면 해지기 직전이고, 사람의 인생으로 치면 말년이 다 된 섬이었어요. 인간이 태어나 청년이 되고 장년에 안정적인 삶을 살다가 노인이 돼 남은 삶을 정리하는 모습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순리가 아니더라고요. 섬 역시 인간의 생애와 같은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섬들을 찾아 어민의 고달팠던 삶 얘기를 듣고,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섬 곳곳을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박 PD는 지난 2018년 인천 지역 섬 중에 육지와 연결돼 있지 않아 오랜 시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을 위주로 로드다큐 <그리우니 섬이다>를 기획했다. 북한 장산곶 휴전선 바로 아래에 있는 백령도부터, 황금빛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굴업도, 섬소사나무 군락지인 백아도 등 10여 개 섬의 모습을 담았다.

로드 다큐 <그리우니 섬이다>, OBS경인TV, 13부작, 2018 (출처: OBS경인TV 홈페이지)

이 다큐멘터리 속에 화자로 등장하는 이들은 유명인이나 전문 리포터가 아닌 다섯 명의 사진작가다. 작가들은 수년간 여러 차례 탐사 작업을 통해 인천 지역 섬을 들여다본 섬 전문가다. 첫 회 ‘큰 물섬, 덕적도’ 편은 덕적도가 고향인 서은미 작가가 등장하고, ‘백령도 5년 만의 재회’에 나온 노기훈 작가는 『백령일지-백령도에서의 12일간의 기록』(호밀밭, 2018)이라는 여행기를 펴내기도 했다. ‘그리우니 섬이다’에는 작가들이 섬을 거닐며 촬영한 사진도 나온다. 움직이는 영상 속에 정지된 순간을 함께 담았다는 게 또 하나의 볼거리다.

1986년 5월 3일 시민회관에 모인 시민들… 5·3민주항쟁 다룬 ‘그 날’박PD는 인천 5·3 민주항쟁이 그 이듬해 있었던 6·10 민주항쟁을 이끈 기폭제였다는 것을 2017년 다큐멘터리 ‘6월 민주항쟁 30주년 특별기획 <그 날>’로 조명하기도 했다. 5·3 민주항쟁은 1986년 5월 3일 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인천·경기결성대회가 열릴 예정이던 인천 남구 주안동 시민회관에서 대학생·노동자 등이 펼친 반독재 투쟁이다. 그러나, 5·3민주항쟁은 민주화운동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이를 주제로 다룬 방송도 없었다고 한다.

6월 민주항쟁 30주년 특별기획 <그 날>, OBS경인TV, 2017 (출처: OBS경인TV 홈페이지)

“부마민주항쟁의 경우, 부산과 마산 지역 정신을 대표하는 항쟁으로서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5·3 민주항쟁은 인천에서조차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가는 게 안타까웠어요. 5·3민주항쟁은 지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노동·여성·빈민 운동 등이 응축된 민주화 투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더 늦기 전에 그날을 통해 지역의 시민 정신을 알리고,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정신적 유산으로 남기고자 했습니다.”

<그 날>의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박 PD는 당시 회사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지 못하자 직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제작 취지에 동의한 부평구와 남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인천민주화운동센터 등 기초자치단체·시민단체의 지원 덕분에 ‘그 날’을 제작할 수 있었다.

치열했던 인천의 현대사, 시민의 삶이 곧 도시의 역사인천이 품은 인물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인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죽산 조봉암(1890~1959) 선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강화 출신인 조봉암 선생은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을 하고, 광복 후 초대 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1958년 일명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돼 사형이 집행됐다. 이후 유족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인 대법원이 5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헌정사상 첫 사법 살인으로 기록됐다.

“조봉암 선생의 삶을 통해 지나간 역사를 통찰하고자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습니다. 과거를 통해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인천의 오래된 도심인 동구 화수동 무네미 마을 곳곳을 살펴보는 공간다큐 <만남>을 제작했다. 바닷물이 넘어 들어온다고 해서 무네미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공간다큐 만남은 무네미 마을 속에 위치한 작은 책방부터 인천도시산업선교회까지 여러 공간을 들여다보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특히, 노동·민주화 운동의 산실로 평가받는 도시산업선교회는 최근 주택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이처럼 앞으로도 인천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야기를 찾고 이 도시의 가치를 알리겠다는 게 박 PD의 목표다.

“인천을 무대로 한 시민들의 삶을 담고 싶습니다. 바다를 중심으로 한 부두 노동자, 실향민, 산업화 과정에 있었던 공장 노동자들까지요. 많은 이가 치열하게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이 도시의 역사로 축적됐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일궈낸 인천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인터뷰 진행/글 박현주(朴賢珠, Park Hyeonju)

경인일보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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