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가능성 탐구2021 부평구문화재단 특별기획전시 《음악의 기술》
손세희(독립큐레이터)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음악의 기술》(2021.5.4.~ 6.13.)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흥미롭게 접근하고 직접 참여하며 감상할 수 있는 전시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우리의 상호작용 방식,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대안적 혹은 새로운 방식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음악의 기술》 전시 작품들도 센서를 이용해 관람자와 작품의 비접촉식 상호작용을 만들어내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2021 부평구문화재단 특별기획전시 《음악의 기술》,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 및 로비, 2021.5.4.~6.13.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
갤러리 입구, 조용히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붉은 리본이 관람자가 다가서자 회오리를 그린다. 최종운의 <A Storm in my mind>(2006~2021)은 눈에 보이지 않는, 깊숙이 내재해 있는 움직임, 요동침을 시각화한다. 여기서 내 마음속이란 작가의 혹은 관람자의 마음속일 수도 있고 리본의 것일 수도 있다. 폭풍이 인다면 우리 마음뿐 아니라 가만히 늘어져 있던 리본도 이렇게 펄럭일 것이다. 그 폭풍의 원인은 대자연의 혼란일 수도 있지만 한 인간의 소심한 접근일 수도 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미동만 하던 리본의 격렬함을 촉발시키는 역할은 관람자의 몫이다.
최종운, <This is Orchestra>, 2018 (사진: 손세희) |
최종운의 다른 작품 <This is Orchestra>(2018)에서 지휘자를 기다리는 악기들은 전통적인 악기들이 아니다. 작가는 선풍기, 양철 양동이, 의자, 그릇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독특하면서도 고전 악기 못지않게 아름다운 형태의 악기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이들의 조합을 멀리서 보면 소규모의 화려한 건축물 같다. 소리는 적외선 센서와 wifi 네트워크 시스템을 이용해 나온다. 관람자는 행동을 통해 작품의 특정 반응을 이끌어 냄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작품을 감상하도록 초대받는다. 누구나 지휘대에 서서 마치 잠자고 있는 악기들을 깨우는 마법사처럼 크게 팔을 움직여 금세 합주를 명령할 수 있다. 최종운은 일상적 사물들의 물성에 집중하며 고요해 보이는 표면 너머 존재하는 긴장감, 에너지, 소리를 해방시킨다.
한재석, <기라성 Kira-sung>, 2021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
한재석 역시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의 본성을 탐구한다. 그러나 한재석의 태도는 명상적이라기보다 기계적이며 사물의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물리적 규칙이나 시스템을 갖춘 기계를 만들어 창작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개입을 줄인다. 이는 생성 예술(generative art)의 작업 방식이기도 한데, 한재석은 작품을 구성하는 사물들에 능동성을 부여해 작가의 창작 과정에 기여하게 한다. 여기서 작가가 중요하게 사용하는 것은 피드백 원리로, 피드백은 입력과 출력이 맞물려 끊임없는 반복을 이어간다. <기라성 Kira-sung>(2021)은 중고 스피커들과 피드백의 원리가 결합해 극적인 밤풍경을 만들어 내는 설치 작품이다. 관람객들의 발걸음,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진동이 스피커의 둥근 진동판을 울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꽂힌 금속 막대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천장에 달려 있는 다른 막대와 스치며 조우한다. 막대들의 끝이 맞닿는 순간 작은 불꽃이 튀고 전류가 흐른다. 스피커는 이 전류로 작동한다. 짧은 순간의 조우가 끝나면 전류가 끊기고 스피커는 멈춘다. 작가는 완벽한 통제 대신 사물 간의 물리적 상호작용의 결과를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변수 하나가 예상 밖의 전개를 초래할 수도 있는 우연을 허락한다. <기라성 Kira-sung>에서 더 빛의 점멸을 보고 싶다면 작품의 주위를 더 자주 서성이면 된다. 아쉬운 점은 고요한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상상하기에는 이 작품이 다소 어수선한 복도 한구석에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이재형, 박정민, <기계 즉흥곡 Machine Impromptu>, 2017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
<음악의 기술> 전시장을 돌아다니면 뜻밖의 사물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기계 즉흥곡 Machine Impromptu>(2017)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물고기들이 들어 있는 커다란 수조이다. 미술 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은 분명 아니다. 그러다 갑자기 연주자도 없는 피아노의 건반이 움직이며 음악이 연주된다. <기계 즉흥곡 Machine Impromptu>은 물고기의 움직임에 반응해 피아노가 자동 연주되는 작품이다. 오선이 그려진 수조 안에 음표의 머리를 닮은 검은 물고기들이 유영한다. 오선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물고기들이 그려내는 악보는 카메라를 통해 스캔되어 수많은 곡을 학습한 인공지능 시스템에 보내지고 인공지능은 이를 기반으로 즉흥곡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은 연동된 피아노에 전달되어 자동으로 연주된다. 관람자가 듣는 음악은 자연과 기계의 합작품인 셈. 작가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무작위의 음들 위에 기계적으로 화음을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크리스티안 폴(Christian Paul)은 그의 저명한 책 『디지털 아트』에서, 다다(Dada), 플럭서스(Fluxus), 개념미술(Conceptual art)에서 디지털 아트의 미술사적 연관성을 찾는다. 무작위와 통제 간의 상호작용, 형식적 체계와 규칙, 변주를 이용하여 시의 미학을 성취하고자 한 다다주의자들의 시작법, ‘발견된(found)’ 요소와 미리 정해진 지시문을 기반으로 했던, 존 케이지를 비롯한 플럭서스 예술가, 음악가들의 작곡에서 인터랙티브 예술(interactive art)의 실험들을 미리 엿볼 수 있음도 언급한다(Christian Paul, Digital Art, London: Thames & Hudson, 2008, 12~1) 한재석의 <기라성 Kira-sung>과 이재형, 박정민의 <기계 즉흥곡 Machine Impromptu>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손세희(孫世姬, Shon Seihee)
독립큐레이터로 비디오아트, 무빙이미지, 사운드, 컴퓨터 기반 예술,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에 초점을 두고 전시, 교육 프로그램 기획, 저술과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기획한 전시로는 인천문화재단-하나금융TI 미디어아트 협력 전 《예술의 조건》(2021) 《평행 풍경》(2019), 한국 미디어아트 전 《기억하기 혹은 떠돌기》(2017, Atelier Nord ANX gallery, 오슬로)가 있다. 영국 뉴캐슬 대학에서 미술관 교육을, 요크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