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없이 성장이 가능한 도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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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 시장의 심장 월스트리트, 예술의 중심지 브로드웨이를 동시에 품고 있으면서 세계 최첨단의 유행이 펼쳐지는 쇼핑가가 밀집한 맨하튼은 명실공히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불린다.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지금도 세계의 많은 여행자를 끌어들이고 있으며, 러브 스토리를 위시하여 많은 명작의 배경이었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인천의 송도국제도시 혹은 경제자유구역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이곳에 맨하튼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닐까 싶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인프라를 배후로 약 40조원의 민간 자본 조달로 지어지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도시 개발구역인 이 도시의 마스터플랜은 콘 페더슨 폭스(KPF)의 뉴욕 사무소에서 설계했다고 한다. 맨하튼이 태생부터 지역시민들의 역이탈을 막기 위해 문화적 공간에 대한 치밀한 설계를 병행했듯 송도 역시 다양한 문화적 아이템들이 생기고 있으며 일부는 성공리에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쯤에서 뉴욕에서 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있는 공간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필자와 같은 몇몇 영화광의 열정으로 시작된 시네마테크인 뉴욕의 시네마테크, <필름 포럼,Film Foru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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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독립영화를 상영할 공간을 찾아 카렌 쿠퍼를 대표로 50개의 간이 의자로 시작했던 뉴욕의 <필름 포럼>은 이제 미국을 대표하는 시네마테크가 되었다. <필름 포럼>의 발전과정은 DRFA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의 신뢰성에서부터 시작됐다. 보석같은 작품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 프로그래머들의 안목과 그 열정이 지금의 필름포럼을 만든 셈이다.

이 극장에서 <쉘 위 댄스>를 보기 위해 줄을 서던 젊은 날의 그때를 잊지 못한다. 물론 이 극장에서는 한국영화 <워낭소리>도 개봉한 바 있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단골 레퍼토리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의 고전>, <작가주의 특선>, <세계 영화는 지금>이라는 3개의 섹션이 3개의 관을 채우고 1년 365일 다채롭게 극장은 돌아간다. 뉴욕의 관객들은 밤이 되면 그리니치빌리지로 속속 모여든다. 그리고 전세계의 영화 동지들이 지금 어떤 화두로 영화를 만드는지 진지하게 토론하며 영화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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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포럼 40주년 프로그램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 관객들, DRFA 365 예술극장도 40주년엔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물론 프로그램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극장이 오늘날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사한 후 <필름포럼>은 55명의 정규 직원과 수십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끊임없이 극장을 꾸며나갔다. 영사기를 HD로 바꾸어 어떤 매체의 소스도 디지털로 상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의자 시트를 벨벳으로 바꾸었다가 가죽으로 바꾸었다가, 조명을 바꿔본다거나 하는 등 전직원이 극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 극장의 연간예산은 800만 달러로 대부분 시와 기업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2013년의 개인 기부금은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필름 포럼의 수석 프로그래머인 캐런 쿠퍼는 작품 선정의 기준을 묻는 기자에게 “관객들의 사고에 도전의식을 던지는 개성적인 작품이 최우선”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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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동검도에 35석의 예술극장을 지을 때만 해도 필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나간 이상주의자로 낙인찍혀야 했다. 30년이 넘은 필름 콜렉션의 긴 여정 끝에 내가 모은 이 필름들을 이제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기로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나눠야 할 공간의 지리적 요건의 1순위는 산과 바다가 보이는 자연친화적인 곳이어야 했다. 수도 없이 고민했고 많은 시간을 들여 찾아낸 곳이 바로 동검도였다. 동검도가 초지대교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는 것도 필자를 끌어당기는 중요 요소였다.

2014년 11월 15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여배우 <실바나 망가노 특집>을 시작으로 지난 3년간 수많은 희귀작들이 관객들과 만났다. 관객층은 김포에서 인천으로, 그리고 인천과 서울까지 저변을 넓혀나가 이제는 1달에 2,500여 명의 관객이 작가주의 영화를 보기 위해 동검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누군가 DRFA 365 예술극장의 작품 선정 기준을 묻는다면 필자 역시도 캐런과 비슷한 대답을 할 것 같다. 영화는 세상을 선도하는 선각자 같은 시선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모든 프로그래머들이 놓친 진짜 걸작들을 찾아내서 관객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3주년을 앞둔 DRFA의 숙제는 ‘2관 설립’이다. 그동안 수많은 분들로부터 2관 설립에 관한 제의를 받아왔지만 현재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송도다. 송도는 전국의 8대 경제자유구역 중 10년 동안 단연 외투 실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도시로 특히 8대 경제자유구역의 외자 유치금을 모두 합산했을 때 약 95%이상이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이 홀로 일궈낸 투자 성과로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송도에서 온 관객 분들이 그 먼 길을 거쳐 동검도의 DRFA에 들어서면서 한결같이 ‘송도에도 이런 예술극장이 하나 있었으면’하는 탄식을 하는 것을 봐 왔다. 이 분들의 절실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과연 문화 없이 뉴욕이 세계의 중심부가 될 수 있었을까? 혈관이 비어 있는 백짓장 같은 도시에 문화는 생명을 공급하는 행위다. 유독 한국에서만 R&D, 바이오, 패션, 첨단 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문화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등한시하는지 영원한 미스터리다. 앞으로 송도에도 필자와 같은 문화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거대한 콘크리트 도심 속에 문화를 정착해나가기를 바래본다. 

유상욱 / 동검도 DRFA 365예술극장 대표,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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