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중의 하나가 이옥경(李玉慶 1902~미상)이다. 순수 문화 예술인이라기보다는 방송인 혹은 언론인의 범주에 두는 것이 옳겠지만 ‘문화’의 개념을 좀 더 넓게 확장해서, 인천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인 이옥경을 소개한다.
“약 40년 전, 조선 여성으로 고등여학교를 다닌 이옥경 여사는 인천해관 관리이자 제령학교 영어 강사였던 이학인 씨의 무남독녀로 인천 최초의 일본 여학교 출신이다. 그녀는 경성방송국의 초대 여자 아나운서였다. 부군 노창성 씨는 금년에 작고했다.”
이 글은 1955년에 출판된 고일(高逸) 선생의 저서『인천석금(仁川昔今)』「외국인 학교」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천 최초의 일본 여학교는 오늘날의 인천여자고등학교를 말하는 것이다.
이옥경은 여학교 졸업 후 동경의 일본여자음악학교를 중퇴했다고 한다. 그녀는 워낙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였는데 거기에 일본어 실력까지 유창해 1927년 한국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 같은 공개채용이 아니라 남편 노창성(盧昌成, 1896~1955)의 추천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노창성은 조선총독부 체신국 직원으로 방송국 설립의 기술 일을 맡아하고 있었는데, 개국이 가까워 시험 방송을 하던 중 아나운서가 모두 남자여서 청취하는 시민들이 딱딱하게 느낄 것 같아 미모에다 고운 목소리를 겸비한, 거기에 일본어까지 능통한 부인 이옥경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당시 모 잡지는 “그의 빛나는 두 눈동자, 배꽃같이 하얀 살결 동그스름한 그에 얼굴, 호리호리한 몸맵시, 명랑한 목소리는 그때의 방송국 안 여러 사람들의 눈을 황홀케 한 때가 많았다.”고 쓰고 있다. 이옥경의 아나운서 생활은 그리 길지는 않았고, 그 후 5남매의 어머니로서 평범한 삶을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로 알려진 노라 노는 그녀의 딸 노명자였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