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식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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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2005년 12월 5일 저녁 무렵의 일이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소략한 발표회가 열렸다. 한중간의 도시교류, 곧 인천과 티엔진 그리고 부산과 상하이 간에 주고받은 도시 교류의 정황을 돌아보는 토론회 자리였다. 약정 질의자로 참석한 내가 거기서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것은 한국의 짜장면 1일 소비량이 700만식에 달한다는 거였다. 계산을 대보니 얼추 1인당 1주일에 한번 꼴이다. 가합하다고 여긴 것은 내 스스로 거기 해당된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짜장면 먹은 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끼니때 길거리를 지나다가 중국집이 눈에 들어오면 자연스레 짜장면이 떠오르면서 입가에 군침이 도는 것이니, 인이 배겼다는 말이 그 말인 것이다.

그 이튿날 아침 나는 타이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타이베이 공항에 내리자 눈을 찔러오는 문구가 있었다. 타이베이에 와서 꼭 해야 할 열 가지 가운데는 르위에탄(日月潭)에 가보라거나 구꿍(故宮) 박물원에 가보라거나 103층 짜리 빌딩에 올라가 타이베이 야경을 감상해보라거나 하는 등은 그렇다 쳐도, 니우러우미엔(牛肉麵)을 꼭 먹어보라는 거다. 이 문구가 내 눈길을 잡아당긴 것은 필시, 그 전날 인천에서 짜장면의 1일 소비량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였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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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칭화대학에서 개최된 학술 발표회를 마치고 타이베이 시내에 자리 잡은 니우러우미엔 거리에 들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다른 니우러우미엔 맛을 시식하고 나오는데 서점이 눈에 뜨인다. ‘직업병’을 버리지 못하고 서점에 들어가보니 <니우러우미엔지에>(牛肉麵節)이라는 책자가 다시 내 눈길을 고정시킨다. 서문을 쓴 이가 당시 타이베이 시장 마잉지우(馬英九)니 전후 사정이 감이 잡힌다. 니우러우미엔을 도시 브랜드의 물목에 올려놓은 거다. 타이베이와 우육면, 인천과 짜장면이 서로 연결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던 거였으니.

그 뒤 짜장면에 필이 꽂혀 중국의 옌타이(烟台)는 물론 산동성에서 북경까지 싸돌아다니기를 몇 차례 하던 중, 인천문화재단에서 여비를 대줄 테니 경인일보에 짜장면 이야기를 썰을 풀어보라는 거다. 당시 재단의 대표로 일하던 최원식 교수께서 평소 동아시아 타령을 하는 후배에게 ‘배당’한 용역이었겠다. 그렇게 짜장면과 인연을 맺어 연재를 마친 다음, 학교 수업에도 몇 학기 우려먹었겠다. 그런데 짜장면 뒤에 감추어진 역사와 내력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였으니…. 과장을 보태자면, 엄청나고 무지막지한 비밀이 숨어 있는 거다.

그 비밀 가운데 소소한 몇 가지를 공개하기로 하자. 첫째 춘장의 정체. 우리가 짜장을 볶는데 들어가는 이른바 춘장의 본명은 티엔장(甛醬) 혹은 티엔미엔장(甛麵醬)이다. 티엔(甛)은 영화 <첨밀밀>의 그 첨이다. 콩으로 만든 우리네 된장의 구수한 맛과는 다른 달달한 맛이 니는 건 밀가루를 주원료로 썼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으로 건너와 춘장으로 불리게 사연이다.

짜장면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산동은 밀의 주산지. 따라서 주식이 밀이고 거기서 자연스레 만두라는 메뉴가 탄생된다. 노수 강의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상 위에 만두를 빚어 올린 제갈량이 바로 산동 출신이다. 그 만두에 양고기나 돼지고기 등의 소를 넣은 것은 예전에는 일반 노백성들이 언감생심 명절에나 차례가 돌아가는 그런 것인지라, 소를 넣지 않은 만두가 주식이었다. 그렇게 밀가루로만 빚어 찐 만두를 그냥 먹으면 그게 좀 그렇다. 그래서 곁들인 게 바로 날 대파인데 대파만 먹기에는 그야말로 싱거우니 그걸 춘장에 찍어먹은 것. 그런데 그 대파를 뭐라고 부르냐. 총(蔥) 혹은 따총(大蔥)이라 부른다. 춘장은 그러니까 총장의 와전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대충 아는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허명만 화백의 <식객>에도 대강 소개가 되어 있으므로.

그런데 그 대파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점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산동의 장치우(章丘)에서 생산되는 대파는 길이가 2m에 한 뿌리 무게가 1kg 나가는 그야말로 대파인 것. 파는 본시 양물이라 겨울에도 날씨가 웬만하면 밭에서 자란다. 그래서 중국을 휩쓴 인기 드라마 <촹관동>(闖關東)에tj ‘장치우 대파 한 뿌리면 겨울을 난다’고 하는 대사도 바로 이로부터 비롯된 것. 만두를 한 입 베어 먹으면서 다음, 길고 굵은 대파를 총장(춘장)에 찍어 먹는 게 바로 산동의 노백성들이 일용하는 주식이었다고 보면 어김없다. 우리로 치면 여름에 찬물에 보리밥 말아 풋고추를 된장 혹은 고추장에 찍어먹는 것과 영락없다.

대파를 찍어먹던 그 춘장을 우리는 지금 양파를 찍어먹는다. 그 양파는 중국말로 양총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들어온 파(蔥)니까.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 먹는 짜장면 치고 양파가 안 들어가는 짜장면은 찾기 힘들다. 대파가 양파로 은근슬쩍 둔갑한 소치다. 그리고 그 양파는 아무래도 대파보다는 갈무리가 쉽다. 무엇보다 저장기간이 대파보다는 훨씬 길다는 데 착안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그치지 않는다. 그 양파는 누가 공급했는가. 예를 들어 인천 차이나타운에 최초로 문을 연 것으로 되어 있는 공화춘에 식재료로 양파를 공급하자면 누군가가 양파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 양파 농사를 지어 식재료로 제공했던 공급선이 바로 산동에서 넘어와 소사 부평 일대에서 농사를 짓던 화농(화교 농민)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짜장면이라는 메뉴에 형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타이베이에 가서 니우러우미엔을 먹어야 한다면, 베이징에 가서도 꼭 먹어야 하는 메뉴가 있으니 바로 페킹 덕, 곧 베이징 카오(北京烤鴨), 다시 말해 오리구이다. 필자가 ‘연구년’으로 중국에 머무르던 2001년에 집 근처 음식점 궈린에서는 한 마리에 25원,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치면 4000원 남짓이었으니 결코 비싼 메뉴가 아니건만 그 베이징 오리를 구어차이(國菜 나라를 대표하는 요리)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내공이 들어간 메뉴이다. 그 오리구이를 먹던 어느 날 갑자기 황연대오한 것이, 바로 그 메뉴가 바로 짜장면과 같은 형제간이라는 점이었다. 재료를 살피자. 하엽(荷葉 연잎)이라 부르는 밀쌈에, 일단 쫄깃한 껍질 부위가 대부분인 오리고기를 얹고 나서, 그 다음에 상큼한 오이 조각을 얹고 이어서 채친 날 대파를 얹은 다음 거기에 우리가 양파를 찍어먹는 춘장을 발라 써서 먹는다. 춘장과 대파와 밀가루가 같으며, 거기에 우리나라 짜장면에 얹어주는 채친 오이를 떠올려보면 다른 것은 오리와 돼지의 차이인 것. 식재료가 대체로 엇비슷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국채 말고 최고로 계급이 낮은 지엔삥(煎餠)도 형제에 끼워줘야 옳다. 둥그런 쇠판에 밀가루 풀을 둥글고 얇게 발라 부친 다음, 거기에 달걀을 하나 깨어 얹은 다음, 다시 대파 대신 잘게 썬 쪽파를 흩뿌린 다음, 거기에 파삭거리는 밀가루 튀김을 얹어 싸먹는 이 전병은 그 시절 인민폐 단돈 1원이었다. 점심 먹고 나서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시내를 싸돌아다니다가 서너 시쯤 길가에서 자전거에 한 다리를 걸친 채 비닐에 싸서 건네주는 그 1원짜리 따끈한 지엔삥을 먹는 맛은 꿀맛이 따로 없었다. 물론 재료로 치면 얼추 비슷해서 파와 밀가루 그리고 춘장이 주재료다. 다르다면, 단백질이 돼지에서 닭(계란)으로 바뀌었을 뿐.

그런데 이 짜장면과 그 형제들을 구성하는 식재료들이 아무렇게나 합쳐져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이른바 궁합, 혹은 오미의 조화에 기초하여 디자인된 것을 알고 먹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다. 오이는 쓰고 파는 매우며, 밀가루와 춘장은 달고 짜다. 따라서 신맛이 빠져 있다. 최근 인천 화교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손덕준 씨는 자기네 음식점 중화루에서 만든 짜장면에 식초를 뿌려먹는다. 그래야 오미를 갖춘단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 다꾸앙과 양파에 식초를 뿌리므로. 대신 나는 고춧가루를 뿌린다. 양파의 매운 맛이 조리 도중 불에 약해졌으니 그걸 보충하는 것이다.

이들 다섯 가지 맛의 어우러짐을 조화라 부른다. 서로 상반상생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상반상생의 조화는 음악으로 가도 그대로 적용되어 오음의 조화가 된다. 이걸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면 전쟁의 반대말, 곧 평화가 된다. 짜장면은 평화의 기호가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우리나라의 통일을 일컬어 “김치식 통일”이어야 하리라고 설파한 한 시인의 말을 떠올리면서 ‘짜장면식 평화’로 해도 말이 되지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게다. 아마도 사드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 그런 모양이다. 인천에서 발하는 평화의 메시지가 짜장면을 먹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면…

유중하 /연세대학교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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