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들이 모이는 장소가 곧 무대다. 숭의동 경로당, 마을 정자, 화도진 공원 등 오래된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익숙한 풍경과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동구의 스타, ‘우리 동네 스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동네 스타’ 김청자 회원, 김행자 대표
시작은 영화처럼
여느 때와 같은, 별일 없는 날이었다. 늘 지나다니는 미림극장 골목을 걸어가고 있는데 그날따라 극장 앞 홍보 배너에 눈길이 갔다. 추억극장 미림과 문화예술단체 작당이 기획한 실버 영상프로젝트 ‘우리 동네 스타’에 참여할 50~70대 어르신을 모집한다는 소식이었다. 2016년, 그곳에서 만난 참여자 중 뜻이 맞는 멤버끼리 다시 뭉쳐 어르신을 위한 공연과 행사를 여는 동호회, ‘우리 동네 스타’를 만들었다고 한다. 단체의 첫걸음을 전하는 대표 김행자 씨의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 동네 어때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한 낙후된 도시. 인천 동구에 관한 이미지와 뉴스는 토박이들의 삶을 담아내기에 비좁다. 외부에서 구도심에 부정적 평가를 매길 때, ‘우리 동네 스타’는 송림동에 있는 평상, 경로당, 팔각정 골목, 화도진 공원 등에 모여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함께 노래하고 즉흥극을 선보이고 퀴즈를 맞히며 작은 축제를 이어왔다. “가면 어르신들이 예상보다 훨씬 좋아하세요. 작당 선생님들과 기획 논의를 하고, 장소를 고르는 과정에서 고민도 많고 어르신들이 좋아하실지 걱정도 크지만, 막상 찾아가서 공연하면 너무나 좋아들 하시니까요. 스피드 퀴즈 ‘몸으로 말해요’나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 프로그램’을 하면요, 다 일어나셔서 퀴즈 맞히고 춤추며 노래하고 그래요.” 도시 곳곳을 무대로 삼은 애정 담긴 기획과 공연에는 이곳이 속절없이 낡은 풍경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란 메시지로 묻어난다. ‘우리 동네 스타’는 단체의 단골 레퍼토리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해 동네를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은 적이 있다고 한다. 개사곡의 제목은 ‘우리 동네 어때서’였다.
꿈은 숨으로 이어지고
‘우리 동네 스타’의 의미를 물었을 때 김청자 씨의 눈가가 붉어졌다. “저는 암 환자예요. 두 번 걸렸지요. 두 번째 발병했을 때는 내 목숨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서 모진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여기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많이 건강해지고 활달해졌어요. 비슷한 또래 할머니끼리 모여 웃으며 활동하고, 공연에서 어르신들과 웃고, 즐거워요. 보람되고요.” 가입 초반에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참여를 거의 못 했지만, 이제는 공연 기획에도 열심히 활동 중이라는 김청자 씨의 눈은 이내 다음 공연을 향한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르신들이 모인 평상마다 찾아다니며 노래, 즉흥극, 퀴즈 프로그램을 선보였던 ‘송림동 평상 편’이 김청자 씨의 대표 기획 공연이다. 앞으로도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며 웃음을 나누고 보람을 느끼기를 바란다는 김청자 씨의 소박한 꿈은 한 사람을 기꺼이 살아가게 하는 숨이 되고 있다. ‘우리 동네 스타’ 동료들과 어르신 관객들은 그 숨으로 빚은 빛나는 특별한 하루를 선물 받을 것이다.
목표는 웃음을 주는 스타
동호회 ‘우리 동네 스타’는 2016년부터 <찾아가는 인터뷰>, <골목길 마실 콘서트>, <수다 반상회>, <송림동 평상 >편 등 지역 곳곳을 누비며 바쁘게 활동 해왔다. 여러 활동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더는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김행자 씨는 ‘동호회 멤버, 작당 선생님들과 함께 꾸준히 활동하여 더 많은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고 싶다’라며 ‘웃음을 주는 스타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덧붙였다. 김행자 씨의 긍정 에너지를 주 동력원으로 삼아 어르신에게 웃음을 주는 ‘우리 동네 스타’는 지금도 어김없이 주 1회 모여 연습에 매진 중이다.
멤버는 상시 모집
인터뷰 끝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주문을 하자 “‘우리 동네 스타’ 멤버는 상시 모집 중이니 언제든 작당으로 연락 달라”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하신다. “두 명만 더 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내년에는 두 명 더 충원해서 공연했으면 합니다. 아무나 오셔도 상관없어요. 활동은 우리가 다 리드해드리니까요. 인천지역 어르신들, 관심 많이 가져주세요. 회비 없어요!”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 노사연 <바램> 가사 중에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두 분은 ‘우리 동네 스타’ 활동 중 기억에 남는 한순간으로 봄·가을 소풍을 꼽았다. 한강 유람선을 타고, 화담숲의 단풍을 구경하고…엄마로 살 때는 여비며 집안일 걱정에 갈 엄두를 못 냈던 곳에 발걸음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동호회 활동의 즐거움이라고 전하셨다.
지역 어르신들을 찾아가 공연과 행사를 통해 일상의 기쁨을 길어 올리는 어르신 동호회 ‘우리 동네 스타.’ 오래 기억하고 지켜볼 가치가 있는 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길거리에는 가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 사람을 이토록 빛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분들을 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중에서
글 · 인터뷰 / 생활문화동아리 일일 시민기자 김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