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K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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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한국과 스웨덴이 수교 6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 한국은 지난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청받았습니다. 한강 · 김언수 · 진은영 · 김금희 · 김숨 · 김행숙 · 신용목 등의 시인과 소설가를 비롯해 김지은 · 이수지 · 이명애 등의 그림책 작가 등 17명의 저자가 도서전에 참석했습니다. 1985년에 시작한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입니다. 1만1000㎡(3,300평) 규모의 전시장에 38개국, 800여 개 기관과 회사가 참가했고, 나흘 동안 8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약 52평 규모로 마련된 한국관에는 한국 도서 77종과 그림책 54종이 전시됐습니다. 한국관 설계를 맡은 함성호 건축가는 다른 전시공간과 달리 바닥을 1도 기울여 ‘우리는 모두 운명의 경사에 놓인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는 존재들’이라는 주제를 공간에 표현하였습니다. 도서전에서는 4일간 300개가 넘는 세미나가 열렸고 한국 문인들의 대담에 시민과 출판 관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은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나라로 꼽힙니다. 국민 연평균 독서율이 90%에 육박해 세계 1위이며, 공공 도서관 이용률 역시 세계 1위입니다.

스웨덴의 유명 문예지 ‘10TAL’은 최근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했습니다.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을 포함해 김행숙 · 신용목 · 안상학 · 박준 · 김이듬 시인의 시와 한강 · 김영하 · 배수아 · 김금희 · 조남주의 소설을 수록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10TAL’ 주최 북토크에 참석했던 김행숙 시인은 “강연 시간보다 질문 시간이 더 긴 만큼 스웨덴 독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지에서 한강 작가의 인기는 뜨거웠습니다. 세미나 신청자 수가 넘쳐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고, 세미나 후에는 사인을 받으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이었습니다. 201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스웨덴어 번역본은 K-문학의 싹을 틔운 작품으로 오디오북, 전자책을 포함해 약 2만5천부가 팔렸습니다.『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외에 9월 중순에는 『흰』도 출간됐습니다.『흰』은 소설과 시, 에세이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닌 작품으로 작가는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인 아픔을 이야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언급한 한강의 세미나는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펼쳐졌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큰 이야기 같지만 내겐 그게 개인적인 책이다. 또한 『채식주의자』는 한 개인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이야기다.” 2014년에 펴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은 중학생과 주변 인물의 참혹한 운명을 다뤘습니다.『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제에 짓눌려 개인을 잃어가는 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2016년 맨부커상을 받았습니다.

 

375석을 가득 채운 소설가 한강 세미나(좌), 스웨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소설가 한강(우)
출처 : 중앙일보

김언수 작가의 범죄스릴러 『설계자들』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설계자들』의 스웨덴어판 편집자 한스올로브 외베리는 “하드보일드한 북유럽 문학과 다르게 한국 스릴러는 서정성과 짜임새를 고루 갖춘 ‘이상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릴러 강국’이라 불릴 정도로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탓에 도서전 주최 측에서는 김 작가를 꼭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김언수는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국력이 세진 결과”로 해석했습니다. “프랑스에 갔을 때 젊은이들이 BTS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내 책을 사 갔다. 책이란 한 나라의 문화를 파는 것인데, 문화 국력이 커지면서 세계인들이 한국문학도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예비사절단으로 스웨덴에 방문한 적 있는데 그때의 북토크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작은 서점에서 진행한 행사였는데 작년에 했던 모든 문학 행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숨 쉬는 소리도 안 들릴 정도의 집중도였다. 예테보리도서전을 운영해서 남은 돈으로 어마무시한 호텔을 지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20만 원짜리 티켓을 사서 북토크를 듣는, 책에 대한 관심이 어마무시한 나라다.”

소설가 김언수
출처 : 서울신문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의 소냐 호이슬러 한국어학과 교수는 “한국문학은 이미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기관에서도 자발적으로 한국 작가를 초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속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일본어가 가장 인기가 많고 그다음이 중국어였는데 요즘은 한국어가 중국어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며 “K팝과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호이슬러 교수는 독일 출신으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구소련 레닌그라드대학에서 신라 향가와 한시 등 한국 고전문학을, 북한에서 한국어와 역사, 문화를 배웠다”는 그는 한국문학이 “내면을 다루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아우른다”며 “한국 시는 한국문학의 주요한 자산으로 유럽에 비해 시인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로도 유명한 스웨덴은 독서 진흥을 문화정책 1순위로 둡니다. 아만드 린드 스웨덴 문화부 장관은 도서전 개막식에서 “책을 읽지 않으면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부는 책 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서관은 문학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두에게 열린 안식처”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한국문학번역원 통계를 보면 한국문학의 수출은 2015년 94건(번역원 통해 수출된 서적 기준)에서 2017년 130건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입니다. 지금까지 스웨덴에 번역된 한국 문학은 33종으로, 1977년 김지하 시인의 ‘오적’에서 시작해 김소월 · 이문열 · 황석영 · 문정희 · 김영하 · 한강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한 해에 책 한 권도 번역되지 못한 것인데 윤부한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본부장은 그 이유를 “번역가가 없는 것”으로 꼽습니다. 스웨덴에서 한국문학의 입지가 좁고, 문학작품을 번역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2014년에 한 학년에 25명이었던 스톡홀름대 한국어과 인원이 지금은 60명 정도 늘었다며 그는 “좋은 번역가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과거 역사적 특수성에 갇혀 있던 한국 작품이 점차 세계 수준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역동성과 깊은 철학을 갖춘 한국 문학이 북유럽에도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며 “한반도의 특수성에 갇히지 않고 삶과 세계를 감각해 내는 섬세함이 세계적 수준의 보편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열렬한 관심, 한국어 학습에 대한 열기 등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글 / 이재은(뉴스큐레이션)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주빈국 초청된 한국문학… K-문학, 북유럽을 물들이다
동아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한강 작품 다 읽었어요”… 스웨덴서 확인된 K문학 위상
국민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예테보리도서전 폐막…북유럽서 ‘K북’ 가능성 확인
연합뉴스, 2019.09.2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 소설가 한강에 큰 관심
중앙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소냐 호이슬러 “스웨덴 사람들, 한국의 아동문학 스스로 찾아 읽어요”
경향신문,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스릴러 강국’에 뜬 K스릴러… 김언수 “이야기 기근의 시대, ‘현찰적 관점’으로 장편 써야”
서울신문, 2019.09.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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