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난 인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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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가까운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 <인천역사시민대학>이 가을을 맞이하여 다시 돌아왔다.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와 계양도서관이 함께 준비한 ‘근현대 인천의 도시·건축’ 강의는 7주간 진행되며 지난 9월 2일 첫 시작을 알렸다. 계양도서관 지하 계수나무 홀에서 진행한 이번 강의에 100여 석이 넘는 자리를 인천 시민으로 가득 채웠다.

오늘은 인천도시연구소 김용하 강사의 ‘근대 인천의 도시계획’ 강의가 진행되었다. 삼국시대 비류 백제의 도읍지였던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사 개항장의 맥을 같이하기도 한다. 현재 인천은 종합도시 3위라는 명성에 맞게 바다와 하늘, 섬과 육지, 농촌과 도시, 항만과 공항, 갯벌의 자연적 요소와 개발의 인공적 요소가 어우러졌다.

1937년 일제 강점기에 근대적 의미에서 인천도시계획이 최초로 수립되었다. 당시에 인구 20만 명을 수용하기 위해 가로망과 도시시설, 구획정리사업지구, 용도지역을 처음 지정했다. 이후 한반도 병참기지화를 위한 일환으로 ‘경인시가지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인천시가지 계획구역에 부내면 전역(지금 부평일대)과 문학, 서곶면 일부를 편입하고 개항장과 인천부 지역을 의미하던 인천이 부평과 합쳐져 현재의 인천이라는 도시 구역이 결정되었다.

광복 이후, 1949년 8월에 경기도 인천시로 개칭되었고 약 29만 명이었던 인구는 1961년 약 40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추진, 공업화, 수출지향정책으로 부평·주안수출산업 단지가 조성되었다. 경인고속도로 개통으로 인천은 공업도시로 발전하였고
1966년에 서울, 부산, 대구에 이어 인구 50만 명의 도시로 성장한다. 인구 증가에 따라서 부안, 부평지구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활발히 시행되었고 1970년대 말 약 65만 명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1981년 7월에 인천직할시로 승격하면서 1980년대 말에 인구는 100만 명에 돌파하였다. 1991년 두 번째 도시기본계획 수립으로 옹진군 영종면·용유면과 김포군 계양면이 편입되었다. 그리고 대규모 해안매립으로 행정구역 확장과 함께 송도신도시, 영종 신 국제공항, 인천지하철 건설 계획을 반영하여 수립되었다.

1992년에는 인구 200만 명에 도달하였고, 1995년 1월에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때 인천 북구는 현재의 계양구와 부평구로 분구되고 남구는 미추홀구와 연수구로 분구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현재 거주 인구 300만인 인천은 동북아 경제 중심도시로서 자리매김하고자 송도국제도시, 인천경제자유구역, 아시안게임 유치 등으로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인천의 개괄적인 도시 계획에 따른 변천사를 파악하였다. 이로써 최근에 접하게 된 인천 서구지역의 분구 소식도 낯설지만은 않았다.
인천의 도시계획 변화와 흐름을 시작으로 다음 강의는 계양구와 강화에서 번갈아가며 인천 지역의 역사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 볼 예정이다. 내가 사는 이 지역을 되돌아 보고 함께 고민해 보는 이 시간을 통해 인천의 미래를 함께 그려보길 바란다.

글 · 사진 / 시민기자단(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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