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 <별 탈 없음>이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진행되었다. 이 작품은 2017년에 공연단체 ‘위로’의 창단공연으로 처음 등장한 이후, 2년 만에 새로워진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 나타났다.
공연단체 위로는 그동안 전통소재와 현대 서사를 융합하여 색다르면서도 특색있는 창작극을 선보였다. 매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무대를 보여준 덕분에 이번 공연 역시 설렘과 기대를 품은 사람들로 공연장이 가득 채워졌다. 나 역시 이번에도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다.
공연은 아빠와 딸의 대화로 시작되었다. 15살 소녀 남주는 탈을 깎는 일을 하는 아빠(도열)와 단둘이 살고 있다. 남주는 아빠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고, 아빠는 딸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남주는 아빠 손에 들린 탈을 보며, 남한테 탈이 나는 걸 뻔히 알면서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지 물었다. 아빠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탈은 돌고 돌아. 언젠가 너한테도 올 수 있지.” 도열은 여느 아침처럼 집에서 탈을 깎았고 남주는 등교를 했다. 그리고 이 대화가 아빠와 딸의 마지막 대화였다.
3년 후, 도열은 사랑하는 딸을 잃고 희망도 기쁨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의욕을 잃은 도열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차림새에 이상한 말투를 쓰는 사람이 나타났다. 게다가 이게 웬걸. 저 사람이 쓰고 있는 탈은 오래전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다. 아니 그것보다 대체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별탈없음> 도열
ⓒ 극단 위로
도열은 자신이 좀 전에 남주의 곁에 가려고 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자신을 황창이라고 소개하는 이 낯선 소녀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에 신고도 했다. 그런데 이 소녀, 가만 보니 이상하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하다. 탈을 쓰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왠지 딸 남주와 많이 닮았다. 나이도 남주가 세상을 떠나던 같은 15살이다.
오갈 데 없는 황창은 한참을 굶은 듯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탈이 벗겨지지 않아 내쫓을 수도 없어서 우선 밥을 먹였다. 배가 부르자 심심해졌는지 블라인드 커튼을 궁금해하기에 알려주었다. 물론 커튼을 일정 부분 이상으로 올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창문 위쪽에는 아무도 봐서는 안 될 것들이 붙어 있으니까.
<별탈없음> 경찰
ⓒ 극단 위로
얼마 후 경찰관이 도열의 집으로 왔다. 그는 황창과 잠깐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황창이 블라인드를 걷어냈다. 이 두 사람은 아무도 봐서는 안 되는 도열의 비밀을 봐버렸다. 창문에는 낯선 소녀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러자 경찰은 도열을 한순간에 미성년자 성추행범으로 몰았다. 졸지에 성추행범 용의자가 된 도열은 하는 수 없이, 경찰에게 딸 남주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딸 남주는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돕다가 사고를 당했다. 따돌림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부모님의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상처받으며 자랐다. 도열은 이 사건 모두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도열은 자신도 그 어른 중 한명이며,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딸의 모습이 그저 청소년기에 한 번쯤 겪는 반항으로만 여긴 자신을 탓한다. 황창은 그런 도열에게 다시는 나쁜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낸 뒤, 자신이 있었던 과거로 돌아간다.
황창은 신라에서 가무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활하는 고아이다. 어느 날, 백제의 왕이 황창의 가무를 보기 위해 그녀를 자신의 앞으로 불러냈다. 한편 전쟁을 일으키는 백제 왕 때문에 머물 곳이 없는 고아 친구들과 황창은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백제 왕을 만날 기회를 얻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복수를 했다. 백제의 왕 앞에서 왕을 홀릴 만큼 뛰어난 춤을 보인 후, 그에게 다가가 칼로 찔러 죽였다. 그러고는 바로 달아나서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거두어주었던 사람들이 위험해지자 결국 제힘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 왕을 죽인 대가로 목숨을 잃게 된다.
남주는 도열에게 탈이 생기려고 하자 그 탈을 막기 위해 황창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는 도열이 죄책감을 떨쳐내도록 황창의 모습으로 도열을 위로한다.
<별 탈 없음>은 도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탈이 생길 수 있지만, 그 탈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전통적인 소재를 활용하여 현실의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데,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현실에서 어른들의 무책임함을 꼬집는다. 마지막으로 별 탈 없기 힘든 세상에서 별 탈이 없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막을 내린다.
<별탈없음> 광대
ⓒ 극단 위로
<별탈없음>남주
ⓒ 극단 위로
글 / 시민기자단 김다솔
사진 / 극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