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문화재청
강화에는 보물 제10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탑이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견뎌낸 석탑이라니, 게다가 보물이라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강화 하점면 장정리로 차를 몰았다. 화장실만 덩그러니 있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을 보러 다가갔다. 그런데 저 멀리 그 보물이라는 석탑의 자태는 자못 실망스러웠다. 형태는 온전하지 못하고 3층 이상의 탑신, 5층 옥개석, 상륜부도 모두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그나마 남아 있는 옥개석도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아, 온전하지 못한 형태라도 보물로 지정이 되는구나. 고려시대 탑이 뭐가 있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일단 고려시대에 현존하는 탑은 거의 손에 꼽을 만큼 적고, 현존하는 것이라면 모조리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니 온전하지 못하면 어떠리. 고려시대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 그 가치는 충분하다. 신라의 완전한 균형미를 담은 3층 석탑을 이어받아 고려시대에는 신라시대 양식이 가미되었지만, 좀 더 다양하게 다각 다층탑으로, 개성미를 뽐내는 것들이 많다.
원래 이 탑은 무너진 상태로 발견되어 석재가 주변에 굴러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1960년대 수리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수리라고 하기보다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석재를 없으면 없는 대로 남겨둔 채 남아 있는 것만 쌓아 놓았다. 그러니 지금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자리도 원래 석탑의 자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석탑이란 원래 절에 있는 건축물이다. 이 석탑이 정말 봉은사에 있던 석탑이라면 주변에 절이 들어설 수 있을만한 절터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절터가 들어설 만한 장소가 없다. 이 근처 어딘가 절이 있었을 것이고 거기 있었던 석탑일 텐데, 아직 절터를 찾지는 못했다. 온전하지 못한 이 석탑은 지금 석탑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자태를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 아마도 강화 천도시기에는 이 근처에 절이 있었을 것이며, 왕이나 주요 관리가 와서 나라의 안위든 개인적인 안위든 부처님께 빌곤 했던 곳이리라.
이 석탑은 봉천산 자락에 있는데, 근처에는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이것 또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615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음봉씨 시조설화와 관련성은 1775년(영조 51)에 세워진 <하음백봉우유적비(河陰伯奉佑遺蹟碑)>에 그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석조여래입상을 보호하고 있는 석상각(石像閣)도 유적비와 같은 연도인 1775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그 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내용을 비석에 새기고 각을 세워 기린 것이다. 이 석조여래입상 또한 불교와 사찰을 암시하는 유물이다. 사찰의 구성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불상은 지역적 특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불상이다.
고려시대 강화천도 시기 강화도에는 왕과 관리들이 머물 궁궐만 지은 것이 아니다. 고려 세조의 창릉, 태조의 현릉을 강화로 이장하였고, 국교가 불교인 국가답게 개성 주위에 있던 주요 사찰도 이름 그대로 옮겨왔다. 강화천도 시기 고려 궁궐에 대한 조사와 위치 재비정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많았지만, 당시 사찰에 대한 조사는 눈에 띄게 이루어진 것이 없다.
이 일대에 대한 발굴과 추가 조사가 이루어져 절터의 흔적이라도 발견된다면 큰 수확이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강화의 고려시대 보물들은 모두 차로 그 앞까지 갈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강화에 있는 고려시대 보물을 찾으러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강화 장정리 석조여래입상 ⓒ문화재청
글/ 홍인희 연구원(인천역사문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