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천e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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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5월부터 인천에는 ‘인천e음카드’ 열풍이 불었습니다. 8월 초 가입자가 이미 7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인천 인구가 300만 명이니,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이미 인천e음에 가입한 꼴입니다.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전혀 새롭지 않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역화폐에 열광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의 지역화폐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질 것을 염려하는 반면, 인천e음은 호응이 너무나 커서 지자체는 캐시백 혜택을 줄인다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앞으로도 서구, 연수구, 미추홀구에 이어서 남동구와 부평구도 인천e음 카드를 도입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인천e음은 당분간 인천시민의 지갑 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인천 지역화폐 ‘인천e음’ 홈페이지. 첫 화면 안내의 대부분이 캐시백 비율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캐시백 정책은 단기간에 지역화폐 ‘인천e음’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년 전통시장 상권을 보호할 명목으로 만들어진 ‘온누리상품권’은 제도적으로 도입했던 우리나라 지역화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절에 특히 많이 발행되는 온누리상품권은 아마 많은 분이 사용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전통시장 어디에서나 쓸 수 있는 온누리 상품권과 달리 이후에 만들어진 ‘지역사랑상품권’은 발행된 지자체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지역화폐 성격에 좀 더 가깝습니다. 현재 92개의 기초 지자체가 종이나 전자 상품권의 형태로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각 지자체는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상품권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많은 지자체가 이렇게 브랜딩하여 지역사랑상품권을 사용합니다. 서울 노원구의 ‘NW(노원)’, 경기도 시흥시의 ‘시루’, 성남시의 ‘성남코인’과 같이 말입니다. 인천e음을 비롯하여 인천e음 플랫폼을 통해 자치구에서 지원하는 서로e음, 연수e음, 미추홀e음 또한 지역사랑상품권에 속합니다.

 지역화폐가 제도적으로 채택되기 전에는 사회운동의 일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전통적 화폐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혹은 점차 넓어지는 국제적인 분업화 등으로 지역사회의 경제 공동체가 무너졌을 때 보급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매개 삼아서 서로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동체 내부에서 얻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지역화폐는 일종의 물물교환 형태에 가까울뿐더러 공공에 의존하지 않아 제한되어 사용됩니다

 지역화폐가 지역 상권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의 소비가 촉진되도록 유도했습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지갑을 열면 좋겠지만, 최소한 우리 지역 안에서 벌어들인 돈은 우리 지역 내에서 쓰자는 입장입니다. 특히 지역 상권이 침체 되어 지역 주민들이 타시도에 나가 소비하는 경우에 이런 전략이 이용되는 편입니다. 인천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 적은 소비량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인천 시민이 인천 이외에 타시도에서 소비량을 보여주는 역외 소비율이 2018년 기준으로 무려 52.8%에 달합니다. 백화점 등 대규모 상권이 많은 서울과 아울렛이 도처에 형성된 경기도 서부권으로 사람들이 소비하는 데다가 인터넷 쇼핑과 해외 직구로 다른 곳의 물건들을 손쉽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한 사람당 100만 원을 벌면 불과 47만 원이 인천에서 지출되어 인천 상권은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2018년 역내 소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인처너카드’를 처음 도입하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인처너카드를 17만여 개의 점포에서 사용할 수 있더라도, 시민들의 이용률은 무척 저조했습니다. 공무원에게는 일정 금액의 사용을 강제하려는 논의도 있었으니 당시 시민들의 무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9년 인처너카드가 인천e음으로 명칭을 바꾸고 올해 5월부터 갑작스레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최대 결제액의 1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캐시백 형태로 이러한 단순한 혜택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몇몇 자치구는 인천e음에 합류할 예정이지만, 캐시백 혜택이 감소하면 그 사용량도 어느 정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내의 자본 순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인천e음을 사용하게 하려면, 캐시백 혜택이 점차 줄더라도 시민에게 다른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인천e음 애플리케이션 화면(좌)과 인천e몰(우). 지역화폐의 성패 여부는 이제 온라인 이용 편의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역화폐는 충전도 필요없고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신용거래의 이점을 이겨내야지만 지속적인 사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택배와 배달 시스템이 거미줄처럼 퍼진 대도시에서 소비의 많은 부분은 집 안에서 이루어지고, 애플리케이션으로 결제됩니다. 지역화폐는 기존의 신용카드와도 경쟁해야 하지만, 온라인 결제 시스템도 이겨내야 합니다. 인천e음이 독자적인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지역 상품 쇼핑몰을 운영하는 것, 별도의 송금 시스템을 구축한 것, 심지어 배달 음식점 전화 주문까지 연결하는 시도는 기존에 지역화폐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저는 인천이 장기적 목표를 향해서 천천히 지역화폐의 틀을 넓혀갔으면 합니다. 인천e음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애플리케이션에 마련된 ‘인천e몰’입니다. 더 빠르고 편리하게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데, 굳이 지역 공동체에서 소비하기 위해서 점포를 방문해야만 한다면 이는 지역화폐 사용의 또 다른 장벽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천e몰의 존재는 그런 장벽을 허물어 줍니다. 인천e음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편리한 데다 지역 안에서 더 저렴한 물품을 구매하도록 돕는 지역화폐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점을 더욱 발전시켜서, 인천e음을 사용하는 점포와 이용자를 늘리는 것 등 이상으로 다음 목표를 찾았으면 합니다.

인천e음에 가입한 사업체들이 시장과 먹자골목의 형태로 모여, 인천e음을 통해 결제하고 상품이 배송할 수 있는 플랫폼이면 어떨까요. 신선식품업체나 식당이 이런 플랫폼에 가입하고, 시민들은 전통시장이나 상점을 검색해서 식품과 음식을 주문하여 배달서비스를 통해 받아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차문제와 새벽배송으로 인해 대형마트보다 낮은 접근성을 보이는 전통시장과 소매상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인천e음을 통해서 인천의 스타트업 업체들에게 클라우드 펀딩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도 생각해 봅니다. 시민들에게 많은 클라우드 펀딩을 받은 업체들에게 인천시에서 창업지원금을 주거나, 기술지원을 위한 대학이나 연구소를 연결해 준다면 어떨까요? 인천e음을 통해서 더 많은 젊은 창업자들이 인천으로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인천이 더 젊고 역동적인 창업 도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지역화폐 정책이 지자체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됩니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서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면 기존 사업은 재평가를 받지요. 혹평을 받은 사업은 사업명과 내용이 변경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특히나 그래서는 안 되는 정책입니다. 시민들이 태생적으로 더 범용적인 전통화폐와 신용거래보다 불편한 지역화폐를 더 많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의 폭을 확대하고, 이용의 제약을 낮추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하여 덧붙여 나가야 합니다. 화폐는 모든 거래를 대체할 수 있기에 화폐입니다. 지역화폐 또한, 거래의 제약을 늘리는 방식보다는 더 많은 방법으로 거래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종이 상품권을 구매하고 지불하면 상인은 소비자로부터 받은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야 하던 기존 결제방식이 체크카드와 어플리케이션 결제로 대체되면서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을 만듦으로써 소비자의 접근성도 한결 개선되었고, 관광, 건강검진, 인터넷 교육 수강 등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캐시백 정책이 동반되면서 불과 석 달 사이에 인천e음은 대단히 주목받는 지역화폐가 되었지만, 이 훌륭한 시작이 더욱 발전하여 인천 시민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지역화폐 본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인천e음이 지역화폐 제도에서 머물지 않고 지역 상권 생태계를 확장하는 좋은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김민정. (2011). 지역화폐운동의 성과와 한계-한국사례를 중심으로. 기억과 전망, 26.
지주형, 조희정, 김순영. (2019). 지역화폐 형성과정과 분권화에 대한 연구: 이념·제도·이익을 중심으로. 비교민주주의 연구, 15(1).
인천e음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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