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못 올 그날들을 추억함 :
다문화가족 친구들과 함께 한 <2018 삼별초 역사탐방>

0

고려 무인집정자 최우(崔瑀, ?∼1249)가 집권하던 때 만든 삼별초(三別抄)는 “날쌔고 용감한 자를 특별히 가려 뽑은 3개 부대(좌별초, 우별초, 신의군)”라는 뜻으로, 13세기 대몽항전의 가장 강력한 전투집단이었다. 1231년(고종 18)부터 시작된 몽골과의 전쟁에서 39년 만에 고려의 항복과 동시에 강도(江都,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를 결정하자 삼별초는 곧바로 이를 거부하고 강도에서 봉기하였다.

다문화 시대 삼별초 역사 이해
1270년(원종 11) 6월 강화도에서 거병하여 진도를 거쳐 1273년 2월 제주도에서 종말을 고한 삼별초 항쟁은 대몽항쟁에 이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국사에서 삼별초 항쟁은 ‘삼별초의 난’, ‘호국의 항쟁’ 등 시대에 따라 극단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다문화 시대인 오늘날에는 축적된 연구 성과를 토대로 삼별초 역사를 ‘반란집단’이나 ‘호국의 화신’으로만 규정하는 편협한 일국사(一國史)의 관점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사 관점에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나라의 고려 지배가 나비효과처럼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이어진 것같이 ‘원 간섭기’ 역사가 이후 한국사 전개에 큰 영향을 주었고, 삼별초 항쟁도 해당 지역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제주도가 말(馬)의 고장이 된 것도 삼별초 항쟁 이후부터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으로 대표되는 제주도의 말 문화는, 우리 선조들이 700여 년 전 토착인들과 이주한 몽골인들이 어울려 만들어 낸 다문화사회의 결과물이었다.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는 2018년 11월 22일(목)부터 25일(일)까지 3박 4일간 인천 관내 다문화가족 중고생들과 함께 강화도-진도-제주도 삼별초 항쟁유적을 답사하는 <2018 삼별초 역사탐방>을 진행했다.

2018년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여 준비한 <2018 삼별초 역사탐방>은 고려 강화도성이 있던 인천광역시의 역사도시 위상을 높이고, 다문화 미래세대에게 향토 역사유산 이해를 통한 자긍심 함양과 고려 삼별초 항쟁 지역 간 역사문화 교류를 통한 역사 이해 증진을 목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다문화가족 친구와 비()다문화가족 친구가 함께하다
<2018 삼별초 역사탐방>은 기획부터 미래세대에 초점을 맞추되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과 함께하는 방향이었다. 참가대상은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족 중고생으로 정해졌고, 탐방 목표도 “다문화 시대 미래세대의 한국역사 이해 확대와 향토 역사유산 애호 및 자긍심 확대에 기여”로 설정하였다.

인천광역시교육청과 (인천시 거점센터인) 부평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협의를 통해 다문화가족 중고생이 비(非)다문화가족 친구들과 동행하는 형식으로 탐방단을 구성했다. 계양구·남동구·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추천한 31명이 참가했는데, 중학생이 27명(1학년 13명, 2학년 9명, 3학년 5명), 고등학생이 4명(모두 1학년)이고, 남학생이 23명, 여학생이 8명이었다.

삼별초, 살기 위해 봉기하다
탐방 첫째 날, 강화도에서는 안양대 김형우 교수님의 안내로 강화 읍내 고려궁지와 외포리 삼별초항쟁비를 답사하면서 강화천도와 삼별초 봉기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고려궁지 승평문 앞에서 김형우 교수님의 설명을 듣는 모습

교수님은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면 그들에게 칼을 겨누었던 자신들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봉기하게 되었다”고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 주었다. 북방 유목민족 전사집단에 그러한 관행이 있다는 것을 삼별초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별초가 진도를 향해 출발했다는 외포리 포구 근처에 세워진 삼별초항쟁비에서

항쟁비 인근 망양돈대에 올라서는 인솔자 선생님의 지도로 ‘나는 대장이다’ 게임을 하면서 서로 얼굴을 익혔다.

망양돈대 안에서 황은숙 선생님이 가르쳐 준 ‘나는 대장이다’ 놀이

점심을 먹고 748년 전에는 배를 타고 갔지만 우리는 전세버스를 타고 진도로 향했다.

세월호 항적과 같았던 삼별초 항로
탐방 둘째 날도 날씨는 맑고 춥지 않았다. 진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삼별초 전문가 공주대 윤용혁 명예교수께서 안내하셨다. 신비의 바닷길 기념탑을 잠깐 구경하고 나서 삼별초가 왕으로 세웠던 승화후 왕온(王溫) 무덤으로 향하였다. 윤 교수님은 무덤 앞에서 “따뜻한 이름을 가진 온왕께서 여러분들을 반기시는 모양”이라고 말문을 열며 시종 넘치는 유머 감각으로 삼별초 항쟁 의미에 대해 설명하셨다.

삼별초가 왕으로 추대했던 승화후 왕온 무덤에서

윤 교수님과 동행한 사모님도 30여 년 경력의 교육자로서, “자신이 경험한 소중한 추억을 일기로 남겨 자신만의 자랑거리로 삼으라”는 ‘적자생존’의 경험담을 재미있게 얘기해 주셨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분위기를 돋우셨고 삼행시 짓기도 했다. 친구들이 즉석에서 지은 용장성 삼행시 중에는 “감한/ 군 배중손은/ 중의 최고인 용장성을 쌓았네” 처럼, 번득이는 재치가 만만치 않았다.

삼별초 궁궐이 있었던 진도 용장성에서 기념촬영

윤 교수님은 빔프로젝터를 직접 가지고 오는 열정을 보이셨다. 개경이 있는 북쪽을 향해 자리 잡은 용장성(龍藏城) 유적지에서 PPT로 세월호 항로와 같았던 삼별초 항로와 그 운명에 대해 강의할 때는 분위기가 자못 숙연해지기도 했다. 친구들은 온왕 무덤과 용장성에서 보고 들은 삼별초 이야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신안선 유물을 보는 학생들

 

점심을 먹고 목포로 이동하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을 견학하였다. 700여 년 전 중국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다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국제무역선이었던 ‘신안선’에 친구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직은 실물을 직접 봐야 내용을 더 잘 이해하는 듯했다. 첫째 날 낯설었던 친구들이 하룻밤을 자더니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전시관 견학 후 광주공항에서 제주도로 날아갔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거나 제주도를 처음 가는 친구가 적지 않았다. 설레고 약간은 흥분한 표정들이었다.

삼별초가 쌓은 환해장성, 제주 역사문화의 상징
셋째 날, 제주도에서 첫 일정은 고구려 담덕(광개토대왕) 이야기를 주제로 한 마상공연 관람이었다. 아이들은 역시 공부보단 노는 걸 더 좋아했다. 금릉 해안에서 비양도가 바라보이는 비췻빛 맑은 바다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모두 즐거웠다.

비양도가 바라보이는 금릉해변에서

제주도에서 삼별초 항쟁 역사는 제주학 전문가 김일우 박사께서 설명해 주었다. 항몽의 거점 항파두성(缸坡頭城) 유적지에서 “제주도는 삼별초 항쟁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3년여 항쟁 끝에 제주도에서는 고려 사람들과 몽골 사람들이 어울려 독특한 말(목장)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하면서 “전쟁을 통해 만난 것이 안타깝지만 이민족과의 접촉을 나쁘게만 볼 게 아니다”라고 의미를 말씀해 주셨다.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들이 진지하게 경청했다. 전시관을 나와 바다가 바라보이는 토성을 직접 걸어보기도 했다.

삼별초의 제주 근거지 항파두성 유적지에서 기념촬영

제주도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탐방은 국립제주박물관에서도 이어졌다. 제주도의 다른 이름이 ‘탐라(耽羅)’인데, 탐라는 ‘한라산 아랫 마을’이란 뜻으로 고려 때 바뀐 ‘제주’보다 훨씬 오랫동안 사용된 이름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김 박사님의 안내로 제주의 자연환경이 빚어낸 역사와 문화를 둘러본 후 마지막 일정인 화북 환해장성(環海張城)을 답사했다.

연대에서 환해장성의 의미를 설명하는 모습

“바닷가에 담장처럼 쌓은 환해장성은 제주 역사문화의 상징이다.” 박사님은 봉화를 피우던 연대(煙臺)에 올라 장성을 바라보며 설명해 주셨다. 환해장성은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쌓았다가 삼별초가 다시 빼앗아 쌓은 이래  1830년대까지 왜구와 이양선의 습격으로부터 제주를 지키기 위해 제주 사람들이 계속 쌓았다고 한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라 땅은 척박하였지만 ,전복 등 해산물의 보고였지요. 중앙정부는 특산물을 계속 징발해야 했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이 뭍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환해장성은 외부의 침입자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 통제용 성격도 있었다고 설명하셨다.

제주도의 전설적인 자선 사업가 김만덕(1739∼1812)은 눈동자가 두 개라는 이야기, 김만덕의 눈동자는 두 개가 아니라는 논문을 쓴 다산 정약용 이야기 등 김일우 박사님이 들려주는 제주 사람들 이야기에 친구들은 귀를 기울였다. 강화도에서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이어진 삼별초 역사탐방은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환해장성을 답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친구들의 우정과 배려심을 확인하다
첫째 날 저녁 진도에 도착했을 때 목이 매우 아프고 열이나 힘들다고 얘기한 중학교 1학년 친구 3명이 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온 친구들은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학생 부모님들과 상의한 후 인솔자 고현정 선생님이 진도 병원 응급실로 바로 데리고 갔다. 이튿날 아침에 2명은 나았지만 1명은 열이 내리지 않아 다시 병원엘 갔다. 밤사이 친구가 힘들어해서 덜 아픈 두 친구가 번갈아 간호했다고 한다. 

아픈 친구는 출발 전날에도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다문화 친구들과 함께 탐방하고 싶어 부모님께 졸랐다고 했다. 잘 먹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귤도 까주고 땀도 닦아주고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는 모습을 버스에서 보았다. 마지막 날 밤 다행히 컨디션을 회복했는지 간식 시간에 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이 먹기 좋게 치킨과 피자를 테이블마다 옮겨다 놓고, 다 먹은 후에는 정리까지 말끔하게 해 놓고 올라갔다. 그 친구들이 대견했다.

신분증을 두고 와 공항에서 팩스로 받거나, 늦잠을 자서 호텔 아침밥을 먹지 못하거나, 치아 교정기를 잃어버리거나, 휴대폰을 놓고 다니거나, 지갑을 분실했다가 되찾는 등 크고 작은 일이 있었지만 3박4일을 큰 탈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이 서로를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역사탐방 몇 달 전에 다문화 친구를 괴롭히다 친구를 숨지게까지 한 안타까운 일이 인천에서 있었던 까닭에, 첫째 날 인천역에서 14∼17살 친구들을 처음 만난 순간 이번 탐방의 목표를 “안전과 즐겁게”로 생각을 고쳐먹었던 기억이 난다.

김포공항에서 해산 후 귀가하는 길에 참가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받고는 기분이 참 좋았었다. 지금도 <2018 삼별초 역사탐방>을 회상하면 돌발 상황에 식은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던 게 떠오르지만, 탐방을 함께 한 친구들에겐 무엇보다 한때의 즐거운 추억이었기를 하는 바람이다.

글 · 사진 /
정학수(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image_print
Share.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