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젠트리피케이션은 무척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새롭게 떠오르는 가게나 거리가 SNS에 올라오면 그곳을 쫓아 유행을 즐기면서도, 사람과 가게가 사라지고 새롭게 생기는 일들이 거듭 반복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이 거리의 색깔이 남아있을지를 생각합니다. 서울의 오래된 주거지역들엔 짧은 기간 동안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트렌디한 상업화’의 파도가 덮치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홍대에 인접한 상수동과 연남동이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경리단길’로 유명한 이태원과 공장이 많던 성수동이 그 뒤를 이었고, 망원동, 후암동, 익선동 등의 주거지가 어김없이 먹거리와 작은 상점으로 변화하면서 유행의 최전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지방 도시들도 이러한 트렌드에 합류했습니다. 과거 ‘육군중앙경리단’이 인접하여 이름 붙여진 ‘경리단길’을 따라서 부산의 ‘해리단길(해운대+경리단길)’, 전주의 ‘객리단길(객사길+경리단길)’, 수원의 ‘행리단길(행궁로+경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황남동+경리단길)’ 등이 무수히 생겨났습니다. 인천 부평에 ‘평리단길’이라고 붙여진 골목에도 다양한 카페와 음식점 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최근 원도심 지역에서도 새로운 흐름과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습니다. 개항장 일대를 중심으로 카페나 음식점 등이 생겨나지만, 최근 사람들의 관심 끄는 이야기는 대체로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년 전 여름, 이태원의 한 거리에 다양한 음식점을 열며 성공한 한 외식 사업가가 개항장 내동에 두 개의 음식점을 열게 되면서 동인천이 언론에 잠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봄부터 민간 사업자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그룹이 창립되자 인접한 싸리재의 몇몇 폐건물에 식당과 갤러리 등이 생겨났습니다. 블로그나 SNS 등에서 해당 가게들은 이미 유명명소가 되었고, 싸리재에서는 해당 도시재생그룹 이외에도 창업한 상점들이 일부 포착되고 있습니다.
한때 인천 최고의 번화가였던 경동 거리가 쇠퇴하고 다시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염려와 우려의 시선들이 오가며 이에 대한 근거들도 분명합니다. 인천의 주요 일간지에서 연재 기사로 다룬 내용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8년 말까지 경동의 상업·업무용 건물의 매매 103건 중 42%인 44건이 2017년과 2018년 사이에 집중되었습니다. 또한 이 일간지가 최근 거래된 건물 중 소유주를 파악한 20개의 건물에서 4곳을 제외하고는 타 지역의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지역이 활성화되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을 때, 부동산을 매각하며 단기 이익을 낼 가능성에 대해서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가구점이었던 기존 건물에 뉴트로한 분위기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변화한 싸리재 골목 (좌) 2017년 11년 경동거리 (참고:네이버 지도), (우) 2019년 4월 경동거리 |
쇠락했던 싸리재 골목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우려는 가로 활성화의 영향으로 현재 상점의 임대인, 인근 주거지의 거주자들이 타의적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홍대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서 음식점, 카페, 술집이 상수동 주택가로 옮긴 경우와 마찬가지로 익선동의 낡은 도시형 한옥에 도시재생 스타트업 기업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그곳에 머문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상업화된 익선동에서 누군가는 그곳에 생동감을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집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싸리재의 미래도 그럴 수 있다는 염려도 이런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싸리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시재생그룹은 이러한 우려에서 비켜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싸리재는 주거지 한복판으로 상업시설이 밀려든 상수동이나 익선동보다 낙후하였지만, 기존 상권이 남아있어, 거주자 축출로 이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굴레가 비교적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익선동이나 연남동 등에서 ‘세탁소, 문구점 등 주민편의시설이 사라지는 대신 카페와 펍이 들어서면서’ 동네 주민들의 기본생활권이 붕괴되었지만, 싸리재는 가구점 위주의 상권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겸 전시공간 (좌)2017년 11월(참조 : 네이버 지도) (우) 2019년 11월 상가건물 |
표면적으로 지역 내 노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전시 등을 통해 노포와의 공존을 내세우는 싸리재의 도시재생그룹은 최근 레트로 유행을 따르면서 오래된 지역의 물리적 환경만을 취하여 지역의 성격을 바꾼 여타 지역의 도시재생 민간기업과는 차별되는 점입니다. 젠트리파이어가 기존의 상권과 공존하려는 시도는 서울의 많은 지역의 실패와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서울의 많은 지역에서 젠트리파이어들은 거리에 색깔을 바꾸고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그로 인해 기존의 상점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젠트리파이어들조차도 장기적으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높은 임대료를 지출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이나 병원 등으로 대체되었고, 결국 거리는 다시 몰개성화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싸리재의 도시재생그룹이 자신들의 새로운 가게를 늘려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의 노포들을 발굴하고 알리려는 것은 장기적으로 거리의 개성을 유지하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샤론 주킨의 표현을 빌리면 ‘정통성’을 가지려는 것이죠. 이들이 이 지역의 역사와 노포를 강조하고 도시재생그룹의 대표 스스로가 이 지역 출신임을 강조하는 것 또한,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연결을 생각하되 단기적인 이익에만 목표를 두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싸리재의 도시재생그룹이 ‘뜨는 동네’에서 단기적인 시세 차익을 노리는 외부 투자자들과 일견 다른 면모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싸리재가 또다른 익선동과 연남동이 될 수 있다는 지역 사회의 우려는 당연합니다. 이 그룹은 이미 해당 지역에 20여 개의 건물을 구입하여 지역재생에 활용하고자 합니다. 젠트리파이어들이 임대 상인으로 지역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과 협력하여 건물을 구매하는 것은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오랫동안 머물기 위한 긍정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지만. 이와는 달리 거리 활성화를 통해 차익을 더 크게 얻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지역사회도, 도시에 관심을 두는 외부인도, 어쩌면 싸리재의 도시재생그룹 또한 전자를 바랄 수 있지만, 미래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노포들과 공생하겠다는 목표는 어쩌면 이들의 손을 떠난 문제입니다. 가로가 활성화되어 땅값이 상승할 때, 노포들의 임대료를 올리는 것은 해당 건물의 토지주와 노포 상인 간의 문제이며 도시재생그룹이 이해당사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후한 거리에 자본이 빠르게 투입되었을 때, 지방자치단체의 선제 역할과 제도적 방편이 필요합니다. 건물이 매매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임대 상인들이 권리를 보호받는지, 새롭게 들어서는 상점이 거주민들의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낡은 건축물들을 철거하거나 개조를 할 때, 보존하여야 하는 건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인근 임대료가 함께 상승하면서 임대 상인들이 무분별하게 축출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관찰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입니다. 성수동의 사례에서 보듯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통해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거나 계약 기간을 보장하는 방편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화여대 앞의 경우처럼 지방자치단체의 주선으로 지역의 토지 및 건물주들이 무분별한 개발과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체를 조직하여 거리의 개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낙후된 지역에 젠트리파이어들이 진입하여 ‘뜨는 거리’가 되면, 그것은 분명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수 있으나, 급등하는 지가에 따라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입점하는 것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인천시가 오래된 가게를 발굴하여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개발하는 계획을 세우고 아울러 자문위원회와 싸리재 주변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TF팀을 구성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입니다. 차이나타운과 개항장 일대에서 인천의 근대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듯 인접해 있는 싸리재가 산업화 시대에 인천 원도심의 오래된 기억과 가치를 가장 트렌디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글/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사진/ 이진솔 (정책연구팀)
[참고문헌]
김다윤, 김경민, 김건 (2017). 주거지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이 빈곤밀집지역에 끼치는 영향. 서울도시연구, 18(2), 159-175.
김준우, 김용구, 전동진 (2018). 신포동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연구. 인천학연구, 29, 303-320.
윤혜수 (2016). 새로운 소상공인의 취향과 공간적 실천. 문화와 사회, 227-281
“[인천 싸리재 리포트·(1)자본 유입 우려 시선]외부자본의 힘, 쇠퇴한 경동거리 흔드나.” (경인일보 2019. 3. 27. 8면)
“[인천 싸리재 리포트·(2)변화를 이끄는 사람들]민간 주도 ‘개항로 프로젝트’ … 도시재생 실험 도전장” (경인일보 2019. 3. 28. 8면)
“[인천 싸리재 리포트·(3끝)우려의 시선들]지역가치 훼손 막을 ‘안전장치’ 서둘러야” (경인일보 2019. 4. 1. 7면)
“개항기 번화가 ‘싸리재’ 다시 주목받는다” (경인일보 2019. 4. 5. 1면)
“오래된 가게, 손때 묻어나는 ‘스토리텔링’” (경인일보 2019. 4. 11.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