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공원에서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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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왔습니다. 자유공원을 걷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저의 일터인 인천문화재단은 응봉산 자락 자유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동장군이 물러가고 봄이 찾아온 요즈음, 저는 점심 식사 후 운동 겸해서 종종 자유공원에 오를 때가 있습니다. 아직은 다소 쌀쌀한 바람도 불고, 미세먼지의 심술궂은 방해도 있지만 그래도 봄날 자유공원의 풍경은 한가롭고 편안합니다.

공원 여기저기 모여서 담소와 장기로 시간을 보내시는 어르신들, 점심시간 잠시 짬을 내어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갖는 주변 직장인들, 손 꼭 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다정한 연인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자유공원을 찾으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그런 일상의 모습에서 저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요새 찾은 자유공원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자유공원이 가진 역사적 배경과 관계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올해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3.1운동으로 우리 민족이 독립을 당장 성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3.1운동이라는 전민족적 항거를 통해 독립의 의지를 더욱 결집할 수 있었고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국내외 곳곳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었습니다.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대한국민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한 임시정부 중 한성정부가 있습니다. 한성정부가 중요한 것은 당시 한반도 내에 수립된 유일한 임시정부였다는 것입니다. 1919년 4월 23일 수립된 한성정부는 그해 9월 수립되는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구심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성정부는 인천 특히, 자유공원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성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 대회가 개최된 곳이 만국공원, 바로 지금의 자유공원이기 때문입니다. 13도 대표자들은 1919년 4월 2일 만국공원에 모여 임시정부의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후 4월 23일 서울 국민대회에서 한성정부의 수립이 선포되었죠.

우리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모체가 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성정부 계승을 통해 통합 임시정부가 되었고, 한성정부가 태동한 곳이 바로 만국공원 즉, 오늘날의 자유공원인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현장인 자유공원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올해에는 평소보다 더 의미 깊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자유공원은 100년 전 민족적 에너지의 결집이 이루어진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우국지사들은 민족의 앞날을 고민했고, 임시정부의 수립을 통해 3.1운동의 기운을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자유공원은 독립을 위한 민족의 통합을 상징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인천시민들에게도 자유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알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유공원이 과연 통합의 공간일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유공원은 통합의 공간보다는 갈등과 분열의 공간으로 더 기억되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갈린 우리 사회 갈등의 표본이었습니다.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에 얽힌 문제 때문입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하자는 쪽과 동상을 지키자는 쪽의 대립은 자유공원에서 실제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동상에 불을 지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각자 나름의 이유는 있겠죠. 우리 근현대사의 갈등과 아픔, 특히 6.25라는 커다란 비극이 얽힌 복잡한 문제입니다. 간단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100년 전 통합의 공간이었던 곳이 오늘날에는 분열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저의 마음 한편을 아프게 합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은 올해, 자유공원이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평화의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저는 점심시간 자유공원을 걷습니다. 여기저기 일상의 모습들은 여전합니다. 멀리 보이는 월미도의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앞을 지납니다. 동상은 말없이 서 있습니다. 제목은 ‘단상(斷想)’이라고 했는데 생각이 길고 복잡해졌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글 · 사진/ 안홍민(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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