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역에서 500여 미터, 10분 정도 걸었을까? 인천기독병원 앞에 있는 ‘플레이캠퍼스’에 도착했다. 플레이캠퍼스는 이전에는 ‘돌체소극장’이었던 곳으로 1978년에 개관한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장이다. 약 5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오페라 공연이라니, 나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대기실
©김지연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각색한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춘희>라는 제목으로 익숙한 <라 트라비아타>는 프랑스 소설가 알렉산드뒤마 (Alexandre Dumas)가 1848년에 쓴 소설 <동백꽃 부인>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원제를 ‘춘희’로 번역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사실 뒤마 자신과 그가 흠모했던 여인 마리 뒤플레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였는데, 당시 이 소설은 굉장한 인기를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 1852년에는 희곡으로 각색되어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극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당시 연극을 관람한 베르디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4주 만에 <라 트라비아타>를 작곡했다고 한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자주인공 비올레타의 슬픈 사랑이야기로 1막은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만남과 사랑, 2막은 비올레타와 아버지 제르몽의 갈등 및 알프레도의 오해, 3막은 죽음을 맞이하는 비올레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제르몽과 알프레도의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은 ‘라 트라비아타’의 3막중 2막의 중간쯤인 비올레타의 집에서 아버지 제르몽과 비올레타가 만나는 장면으로 1막이 시작된다.
<라 트라비아타>가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면, <아버지 제르몽>은 기성세대이자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대표하는 제르몽과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젊은 여성 비올레타 사이에 나타난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제르몽 입장에서는 파리에서 정부로 살아왔던 비올레타가 아들 알프레도를 기둥서방 삼아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찰 리 없었고, 더군다나 딸이 좋지 않은 소문으로 인해 파혼당할 위기에 놓여있어 핑계로라도 아들 곁을 떠나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비올레타는 사랑만을 믿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황에서 쉽게 알프레도를 떠날 수 없었지만, 사랑하는 이의 동생이 본인으로 인해 손해를 입을까 봐 엄청난 고뇌에 빠지는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고민을 반복하다 결국 사랑하는 이를 위해 다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비올레타의 모습을 보며, 그때 당시 여성에게 요구되는 희생과 사회적인 편견들이 느껴진다. 물론 비올레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렇게만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던 것은 여성에게 강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에 내몰려진 결정이 아니었을까?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
길오페라 제공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들로 제르몽과 비올레타의 갈등을 더욱 와닿게 하는 동시에, 비극적인 결말을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바리톤의 제르몽이 무게감을 잘 잡아주고, 소프라노인 비올레타가 화려한 기교로 소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피아노 반주만으로도 소극장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1막 2장에서 비올레타가 편지를 쓰면서 불렀던 곡 ‘Sempre Libera(언제나 자유로워)’ 였다. 곡을 들으면서 비올레타의 성격을 잘 표현하는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사랑하는 이를 두고 돌아서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무대
© 김지연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은 피아노와 막의 장소를 짐작할 수 있는 가구 하나만이 무대에 배치되었다. 소극장의 무대가 이보다 크고 화려했다면 시선이 분산되었을 것이다. 극에 필요한 장치만을 설치하므로 배우의 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실력이 더해져 공연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몰입도 높은 무대를 선사하였다.
보통 사람들이 오페라 장르에 대해 어렵고 지루하게 여긴다. 하지만 한 편의 음악극인 오페라를 관람하기 전에 줄거리와 제작 배경을 파악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연극과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선호가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오페라는 여전히 낯선 장르이다. 이번 기회에 내 주변에서 가까이 하는 오페라 공연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사진/ 김지연 시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