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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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산, 이슬람 여인들

아이고, 리아드(Riad)에서 나온 지 열 걸음도 못가서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매일 아침 머무는 모로코 전통가옥인 리야드의 문을 열자마자 마주치는 풍경이다. 

“차이나? 자포네? 코레?” (‘한국사람입니다’)
“어디로 가세요?” ( ‘가는 길 알아요. 물어보지 마시라고요’)
“광장은 저쪽이에요. 저쪽” (‘난 광장에 안 간다니깐요’)

신발은 먼지와 흙으로 뒤범벅이 됐다. 말과 당나귀, 오토바이와 자전거, 마차와 자동차, 그리고 사람이 함께 뒤섞인다. 수천 개의 좁디좁은 골목이 뒤엉켜 있는 마라케시(Marrakech) 메디나 구시가지에서 구글맵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민트가 꾹꾹 눌러 담긴 알라딘에 나올법한 주전자에서 차를 따른다. 내 몸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디좁은 골목도 이리저리 걷는다. 거리엔 온갖 쓰레기로 넘쳐났고 지릿내가 진동하지만 낯선 이국적인 풍경속을 걷는 게 그저 신난다. 게다가 모로코 전통복장인 젤라바(Jellaba)를 입고 전통신발을 신은 채 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거리를 걸어 다닌다. 마치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하다. 특히 내 눈길을 사로 잡는 건 모로코의 이슬람 여인들이다. 길을 걷는 여성의 대부분이 머리를 감추고 있다. 젊은 여자 대부분은 히잡으로 머리만 가리고, 아이가 있는 엄마나 할머니들은 망토 같은 차도르나 눈만 빼고 얼굴을 다 가린 부르카나 니캅을 쓰고 다닌다. 종종 아이 손을 잡고 가는 니캅을 쓴 여인들을 보는데,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리면 다들 똑같아 보여 어떻게 찾을까 싶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젤라바에서 부르카까지 온몸을 감싸고 다니는 모습이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이렇게 다니니 왠지 나도 이들처럼 히잡을 멋스럽게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로코 거리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메디나 골목   길에서 마주친 이슬람 여인들

 

이들의 모습은 꼭 움직이는 산처럼 느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단색으로 뒤덮은 천이 스멀스멀 움직인다. 머리와 몸을 모두 분홍색으로 휘감은 화사한 산과 온몸을 검은색으로 휘감은 어둠의 산도 보인다. 뒷모습만 보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영락없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산이다. 이슬람 여인은 얼굴을 숨기니 수줍음이 많을 것 같다고 상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들은 니캅으로 눈만 내놓고 얼굴을 가린 채 아이를 업으면서 장사를 한다. 길가에서 외국인의 손목을 잡아끌며 헤나를 강제로 해주고 돈을 요구한다. 제마 엘프나(Jemaa El Fnaa) 광장에 있는 모자 가게 여인은 우악스럽게 내 머리에 모자를 씌웠다. 반면 우아하게 30분에 120디르함(만 이천 원)인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들도 있으며 단 돈 5디르함(오백 원) 하는 먹다 만 빵을 달라며 테이블 앞에 찾아온 작은 여자아이도 만난다.

문득 처음 아프리카 대륙에 왔다는 설레임과 함께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 긴 시간을 처음 보낸다는 두려움에 이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얼굴만 가렸을 뿐이지 사실 내게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나? 그들이 부르카에 자신을 감추듯, 우리 역시 자기 안에 갇혀 있지 않은가? 미래의 이슬람 여인들을 상상한다. 내가 상상한 이슬람 여인들은 온갖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한 부르카를 입는다. 꽃이 만발한 동산 같다. 이슬람 여인의 모습을 통해 누에 꼬치 안에 갇힌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그려본다.

움직이는 산, 이슬람의 여인들

순진한 바람

이국적인 모로코 모습에 설레던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에서 지겹도록 말을 건네는 모로코인들에 의해 지쳐 마음껏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싶어졌다. 제발 힘들게 흥정하지 않고 물건을 사며 깨끗한 곳에서 조용하게 식사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처음엔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가난하지만 집마다 모두 다른 창문과 문을 보며 화려하고 풍요롭다고 생각했다. 돌로 장식된 왕궁의 모습에 감동하며 길에서 우연히 사 먹은 양꼬치에 행복해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골목에는 햇빛을 받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엔 고급스러운 리야드를 지내러 오는 관광객들이 있었다. 모로코 전통 방식으로 가죽을 다듬는 테너리(tannery)에선 구경 갈 때마다 여행객들에게 강제로 나눠주는 민트를 받아야 했다. 테너리에선 지독한 냄새가 나니 민트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테너리엔 맨발로 비둘기 똥을 밟아가며 가죽을 만드는 모로코인들과 이를 강제로 보여주고 설명하며 돈을 받는 또 다른 모로코인, 다른 한 쪽엔 민트를 코에 대고 얼굴을 찌푸린 채 이들을 바라보는 관광객이 있다. 고작 대여섯 살 밖에 안되는 어린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크리넥스 몇 개, 쿠키 몇 개를 들고 종일 앉아 있는 모습은 흔하디흔한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가난해야만 하고 왜 그렇게 처절한지. 왜 그렇게 절박해야 하며 또 왜 그렇게 질리도록 호객행위를 해야만 하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사하라 하실라비드 마을에선 비가 내릴 때마다 진흙으로 짓는 전통 방식의 집이 쉽게 무너졌다. 과연 이렇게 적은 비에도 무너져버리는 집에 사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도 하루에 다섯 번 이슬람 아잔이 울릴 때마다 기도하는 모로코인을 보며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건 과연 내 순진한 바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로코 왕궁의 화려한 돌장식

전통방식으로 가죽을 만드는 모로코 테너리

사하라 하실라비드 마을의 아이들

한달 여간 지낸 모로코는 가난하지만 화려했고, 화려하지만 또 단조로웠다. 10년 후, 더 나아가서 100년 후에 모로코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움직이는 산처럼 보이던 이슬람 여인들은 여전히 같은 모습일까? 몇 백년 전 질라바와 전통 신발을 아직도 신고 다니는 모로코인들처럼 100년후에도 이 모습은 계속 지켜질까?

모던 이슬람 국가라고요?

작년 겨울 모로코에 이어 이번 겨울엔 말레이시아에 두 달여간 머물렀다. 우연히도 두 나라 모두 이슬람 국가였기에 어떻게 다를지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인도인과 중국인, 말레이인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가 아닌가. 심지어 모던 이슬람 국가로 불린다고 하니 어떤 나라일지 무척 궁금했다.
말레이시아는 한 거리에 힌두사원과 모스코, 그리고 절이 공존한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개방적인 국가다. 말레이시아에서 난 신들이 만찬을 한다면 이곳에 올 거라고 상상할 만큼 다양한 음식에 흠뻑 빠져들었다. 중국, 말레이, 인도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모두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적어도 영국처럼 다민족 국가에서 보이는 문화의 다양성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말레이시아의 중국 사원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음식들

말레이시아에서 인도사람이 운영하는 빵집

이들은 서로 섞이지 않으며 사는 지역도 다르다. 심지어 학교마저도 중국인과 말레이인, 인도인으로 구분해서 다닌다. 한 국가에 세 가지 교육 시스템이 있다는 게 나로선 미스테리하다. 중국인은 돼지고기를 좋아하지만, 이슬람인 말레이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힌두계인 인도인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돼지고기는 먹는다. 한편 이런 다양성을 이용해 여러 음식이 발달했을 법하지만, 서로 배려할 뿐 융화하지는 않는다. 내가 바라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J는 자기 나라임에도 소수민족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꼭 말레이시아 땅을 조심히 빌려 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레이시아의 인구에서 60%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겉으로는 주류로써 말레이시아의 주인처럼 보인다. 심지어 나라 이름조차 말레이(말레이 족)와 시아(그리스 어로 땅)가 합쳐진 말레이의 땅 아닌가. 정부는 편파적으로 말레이인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편다. 이들은 나라의 지원을 받아 집을 쉽게 살 수 있고 모든 대학시험은 이슬람어로 치러진다. 그런데도 말레이인은 경제권을 중국인에게 빼앗겨 무기력해 보인다. 정부에서 ‘깨어나라  말레이인이여’ 외친다지만 과연 이들이 쉽게 변화할까?

문명과 문명화

두 달여의 시간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냈지만, 여전히 뭔가 허전하다. 조호바루에선 신시가지를 만들어서 그곳에 아파트를 짓고 외국인에게 팔아 경제를 살리려고 한다지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도시가 과연 아파트와 쇼핑몰, 국제학교만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조호바로의 신시가지에는 여전히 횡단보도와 인도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에 관한 배려는 당연히 없다. 로컬 카페 혹은 작은 서점, 갤러리 혹은 작은 상점 등 흥미로운 어떠한 장소도 찾기 힘들다. 모든 건 거대한 체인점 혹은 호커센터 뿐이다. 물론 호커센터에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건 즐겁다. 그런데 과연 이게 전부인가? 음식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지 않고 먹을 수는 없을까? 음악을 밤늦게까지 크게 틀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왜 항상 냅킨을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테이블은 더러워야만 하는 걸까? 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인상을 찌푸려야만 할까? 식당 한가운데 거대한 음식 쓰레기통이 있는 건 비위생적이라서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또 그 옆에 앉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가? 과연 이런 의문들이 문화 차이일 뿐인 건가 아니면 문명,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단어인 ‘문명화’의 차이인 걸까?

수많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조호바루 거리

조호바루 길거리 음식점

말레이시아에선 사람들이 계속 싱가포르에 다녀오라고 했다. 왜? 말레이시아엔 없는 게 싱가포르에 있기 때문에? 아니면 단순히 옆나라라서? 내가 만난 말레이시아인들은 다들 싱가포르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싱가포르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이들에게 싱가포르는 물가가 비싼 나라, 깨끗한 나라, 수많은 룰이 있는 답답한 나라로 느껴지는 듯하다. 싱가포르에서 본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풍요로움이 이곳 사람들에겐 필요 없을 수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명’, 유럽인들이 타국을 여행하며 가끔 이곳은 아직 ‘문명화(civilization)’ 되지 않아 순수하다, 또는 이곳은 꽤 문명화가 되었다고 말하는,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이 농담으로나마 이런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난 버럭 화를 냈었다. 그런데 내가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며 문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무척 당혹스러웠다. 내가 그토록 경계한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문명’을 결국 나도 똑같이 바라보고 있는 걸까? 작년 모로코와 사하라 여행을 통해 느낀 이슬람 문화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번 겨울 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바라본 또 다른 모던 이슬람 문화, 아울러 이런 고민 속에서도 내 안에서 슬며시 쌓아가기 시작한 또 다른 편견들, 과연 타문화를 이해하는 건 가능한 걸까?

경계에 서서

난 아이러니하게도 모던 이슬람 국가라고 알려진 말레이시아에서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를 느꼈다. 오히려 니캅을 쓴 채 아이를 업고 쿠키를 파는 모로코 이슬람 여인들의 삶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적어도 가난하지만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로코인들이 좋았다. 그들을 따라 재래시장에서 젤라바를 사 입었고 얼굴을 가린 아주머니들 틈에서 젤라바를 꺼내며 어떤 크기가 맞는 거냐고 물었다. 사하라 사막을 걸으며 이곳에선 젤라바가 역시 최고의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젤라바 패션에도 관심이 생겼고 머리에 두르는 다양한 방식의 히잡도 멋스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페즈(Fez)에서 머물던 숙소 옥상에서 아잔 소리를 듣는 순간엔 마치 내가 이슬람 신자가 된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분지 지형인 페스에선 저 멀리서 시작된 아잔 소리가 이어지고 이어져 웅장하게 메아리쳤기 때문이다. 천상의 콘서트를 보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페즈 전체가 엄청난 울림을 가진 하나의 콘서트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웅장한 아잔 소리를 들었던 페즈에서

매일 젤라바를 입고 다녔던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오히려 동남아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말레이시아에선 많은 부분이 불편했다. 전통이라곤 찾기 힘든 거리풍경, 조호바로에서 수없이 본 높게 솟은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 말라카(Melaka)에서 관광 상품화가 되어버린 식민시대의 유적들, 동시에 개성 있다고 느낀 건물 모두가 식민시대의 흔적이란 게 씁쓸했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로 알려졌지만 적어도 나에겐 다민족 국가에서 보이는 문화의 다양성은 찾기 힘들었다. 겉으론 개방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굉장히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로 느껴진다. 말레이시아에선 인종끼리 섞이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이슬람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이슬람인은 이슬람인과 혼인해야 한다. 타 종교인이 이슬람인과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이슬람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영국 식민지시절에 생긴 바바뇨냐 문화를 홍보하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아이러니하다. 현재 이슬람인들이 이슬람이기를 포기한 뇨냐여성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다고 내가 모로코를 더 개방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내가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아틀란스 산맥에서 북유럽 여인 두 명이 급진 모로코 이슬람인들에게 살해당했다. 끔찍한 일이다.

말라카의 포르투갈 유적지

결국 문명, 문명화(Civilization)란 과연 뭘까? 난생처음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 그리고 또다시 모던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두 달여의 시간을 보내며 이런 의문은 점점 더 깊어진다. 결국 문명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의 순진한 바램과 달리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작가로서 내가 보고 느낀 환상을 작품에 담을 뿐이다. 

이승연, ‘세가지 경계’, 150x150cm, 타피스트리 가변설치, 2018, SeMa 창고
모로코 자립형 레지던시(?)여행을 마치고 만든 타피스트리 작품

글 이승연
사진 이승연, 저기요 스투디오

이승연(Seung youn LEE)
고대사와 신화, 또는 상상의 극한을 보여 주는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대’라는 재료를 갖고 미래를 얘기한다. 최근에는 물리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드로잉을 기반으로 철과 나무, 패브릭,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한다. 2012년에서 2017년까지 영국인 알렉산더와 ‘더 바이트 백 무브먼트’ 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했다. 당시의 신화적·종교적·사회적 관심은 개인작업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영국 서머싯 하우스, 국립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문화역서울 284, 영은 미술관, 켄 파운데이션, 베를린 ZK/U, 등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처럼 영원히 남을 작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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