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봉(都琴峰, 1930~2009) 역시 인천이 낳은 또 한 명의 유명 여배우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여성영화인사전』에 나와 있는 연보와 활동 기록 정도다. 본명이 정옥순(鄭玉順)이란 것과 만주 용정의 광명여중을 졸업한 것 외에 인천에서의 자취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그녀는 연보의 기록대로 1957년 조긍하(趙肯夏) 감독의 영화 <황진이>에 일약 주인공 ‘황진이’로 데뷔한다. 그 이전에는 ‘악극단에서 지일화(池一花)라는 예명으로 자못 날리던 시절’을 구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도금봉의 <황진이>는 아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도금봉’이란 이름은 이때 얻게 된 것인데 황진이가 살았던 송도의 ‘도’와 가야금을 잘 탔다는 황진이의 일화에서 ‘금’을 가져왔고 영화계에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되라는 뜻에서 ‘봉’을 넣었다고 한다. 그 뒤에 또 한 번 히트를 친 영화가 1959년에 개봉된 <유관순>이었다. 이어 1961년에는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 김지미(金芝美)와 ‘양귀비’ 역할 대결을 펼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도금봉은 “타고난 미모와 늘씬한 자태”에 이른바 “세기의 요우(妖優)”라는 수식어가 증명하듯이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스크린”을 누빈 최고의 인천 출신 스타였다. 그녀는 1960년대 화려한 전성기를 지내고, 간간히 활동하다가 1997년 <삼인조>라는 영화에 전당포 노파 역으로 출연한 것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출연 영화 500여 편에 1963년 제2회 대종상여우주연상, 같은 해 4월 동경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 1972년 제10회 대종상여우조연상, 1974년 제12회 대종상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인천 출생 그 하나만 겨우 밝혀진 배우 도금봉. “등대불 번쩍이고 갈매기 하늘을 헤엄치는 항도 인천의 로맨티시즘을 타고났을 도금봉”이라고 한 당시 《경인일보》의 표현만이 쓸쓸하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