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 보물 1호 흥인지문(興仁之門)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이 알고 있는 문화재 지정 사항일 것이다. 국보 1호와 보물 1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국민적인 상식이다(아마 간첩들도 알 듯하다). 문화재에 부여되는 번호는 그 중요성이나 가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야말로 행정적으로 부여한 일련번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호’가 갖는 상징성 때문인지 일반 국민들에게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이 갖는 의미는 다른 문화재들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2월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해 상부 목조 문루가 무너져 내렸을 때 많은 국민들이 충격과 절망감, 슬픔을 느꼈다. ‘국보 1호’가 갖는 상징성이 그만큼 큰 것이었고, 국민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도 그에 비례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눈을 인천으로 돌려보자. 국가가 지정한 국보나 보물처럼, 인천에는 인천광역시가 지정한 문화재들이 있다. 비록 국가 지정문화재보다 가치가 다소 낮을 수는 있지만, 인천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인천시가 지정한 문화재(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문화재자료, 민속문화재 등)의 1호를 아는 인천시민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문학초등학교 내 인천도호부 청사
인천시의 유형문화재 1호는 ‘인천도호부청사’(仁川都護府廳舍)이다. 조선 시대 인천도호부의 관아 건물로, 오늘날로 치자면 인천시청쯤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문화재로 지정된 때는 1982년이다. 인천도호부청사는 미추홀구 문학동의 문학초등학교 교정 한 켠에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객사와 동헌뿐이다. 2016년에는 문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도호부 건물의 것으로 보이는 기초석이 발굴되기도 했다. ‘인천도호부청사’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인천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는 곳, 즉 원인천(原仁川)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인천도호부청사는 인천의 유형문화재 1호임에도(물론 이미 언급한 대로 문화재 지정 번호는 문화재의 중요성과는 상관없기는 하지만) 문학초등학교 교정 안에 위치하다 보니 일반인의 발길은 뜸하다. 게다가,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이겠지만, 철제 울타리를 둘렀는데 그 모습 때문에 더욱더 쓸쓸하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문화재로서 ‘인천도호부청사’가 엄존하고 있음에도 일반 시민들은 ‘인천도호부 청사’라면 아마도 문학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한 건물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문화재인 도호부청사에서 문학경기장 방향으로 약 500여m 떨어진 곳에 도호부청사를 2002년에 재현(복원이라기보다는 재현이 맞을 것 같다)해 놓은 것이다. 1871년에 만들어진 ‘화도진도’(花島鎭圖)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객사와 동헌 등을 재현하였다. 평소에 전통, 민속문화와 관련된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재현된 인천도호부청사의 객사
그런데 재현이 잘 이루어졌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아쉬운 점이 있다. 재현된 ‘도호부청사’가 시민의 문화공간이자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는 것도 좋지만 ‘재현’되었다는 것은 명칭에서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재현 건물의 안내판에는 부기 없이 ‘인천도호부청사’라는 이름만 붙어 있다. 물론 설명 내용을 읽으면 재현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아마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확한 정보 제공이 아쉬운 부분이다. 재현 공간에 대한 명확한 정보 제공과 아울러 현재 문학초등학교 내의 도호부청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인천도호부청사 재현 건물 입구
‘인천도호부청사’에서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바로 그 문화재 명칭 자체이다. ‘청사’(廳舍) 라면 일반적으로 관청(官廳)의 건물을 일컫는다. 용어의 의미로만 따지자면 도호부도 관청이었으니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사라는 표현은 근현대적 느낌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청사’라는 용어가 나오기는 하니 무조건 근대부터 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편찬된 고종과 순종실록을 제외하면 건물이라는 의미로 ‘청사’를 사용한 경우는 인터넷 조선왕조실록(바로가기)에서 고작 3건만이 검색된다. 전통시대의 일반적인 표현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청사’가 아니라 ‘관아’(官衙) 라는 용어로 바꾸면 어떨까? ‘관아’는 과거 실제 일반적으로 사용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전통’도 변화한다고는 하지만 관아로 바꾸면 그래도 우리의 전통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인천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중에는 ‘인천은 정체성이 약한 도시다’, ‘인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정책이 부실하다.’ 등등 걱정과 안타까움의 목소리들이 대부분이다. 이 글을 빌어 제안해 본다. 인천의 정체성 찾기는 전통시대 인천을 상징하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호 ‘인천도호부청사’를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안홍민(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