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loo Castle Site at Fukuoka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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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앞 흐드러지게 핀 벚꽃

전시를 보러오는 사람보다는 벚꽃축제를 즐기러 왔다가 들러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전시를 개장하자마자 꽤 많은 관람객이 몰렸는데 좁은 통로 일방통행만 가능한 전시 구조 때문인지 빠른 걸음으로 작업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몹시 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을 향해 삐쳤던 내가 우스운데, 당시에는 막 완성하고 설치를 한 작업이라 감정의 거리가 좁았던 것 같다. 관객들은 다음 관객들을 위해 멈추지 않고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전시 막바지에는 심적 여유가 생겨서 전시장 근처에 머물면서 관객들 반응도 살피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가끔 관객들에게 직접 작업에 관해 설명도 하고 그들에게 감상을 듣거나 질문에 대답하기도 했다. 공공장소고 후쿠오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봄을 여는 행사인 만큼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틈틈이 다른 작가들의 전시도 방문하면서 공공장소에서 많은 인파가 몰리는 행사에서의 예술가와 예술 작품 역할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기회가 되었다.

하나미 중 셀피. 노부오 하라다 작가, 이와모토 후미오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 기간 내내 계속된 아름다운 벚꽃과 향기,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 구경은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었다. 지난 연재에서 소개했던 부토 아티스트 노부오 하라다 선생님이 방문해주셔서 벚꽃 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사케 한 병과 간소하게 준비한 주전부리를 펼쳐놓고 하나미를 해봤다. 협업 결과물을 설명해 드린 것보다 작업 속에서 확대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는데, 다행히 작업을 좋아해 주셨고 다음 작업물에 대한 의견도 내주셨다. 언젠가는 협업 물의 정의를 지킬 수 있는 작업을 꼭 해내겠다고 말씀드렸다.

 

얄루 성터 전시 전경 일부

지난 연재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전시장 사진 몇 개를 공유한다. 성문, 샹들리에, 내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자전적 캐릭터 홍삼 돌과 고장 난 텔레비전 타워 시리즈 등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 속 유물이 비디오 조형 형태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마지막 방에는 방금 지나온 유물들이 VR 진공 공간 속에서 부유하고 있다.

 

얄루 성터 전시 전경 일부

마지막 방에 설치된 가상현실(VR) 작업은 인기가 좋았다. 의외로 VR을 체험을 처음 해보는 관객들이 많았다. 상업 박람회에나 핸드폰 회사의 임시매장에서 행사용으로 준비하는 뻔한 기업 광고용 체험이 아닌 작가의 시선과 상상력이 담긴 VR 작업이 많은 이들에게 첫 경험일 수 있어서 뜻깊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스마트폰 등 디지털 미디어는 일상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많은 콘텐츠가 큰 자본으로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다. 자본 제로의 개인 창작자로서 같은 매체를 실험하고 표현하기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 창작자로서 그 매체 안에서 비판적인 시각과 유연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작된 생산물을 관객과 나누는 것은 그 매체의 자주성과 다양성을 확장하며 민주성을 지킨다. 이 자리를 통해 프로젝트를 지지해주신 인천재단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얄루성터VR 관람객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후쿠오카의 지역 사회 예술인과 교류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후쿠오카 아시안 미술관에서 도보 십 분 거리에 위치한 대안공간 테트라(Space Tetra)에서 아시안 아츠 에어 후쿠오카(Asian Arts Air FUKUOKA)강의 시리즈에서 발표를 초청받았다. 지난 연재에서 조금 언급했던 것처럼 후쿠오카는 근현대 아시아 역사에서 큰 역할을 차지했고 이 유산이 이어져 아시안 아트 에어같은 풀뿌리 단체가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로컬 작가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전시나 레지던시를 마치고 오면 결과 발표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후쿠오카에 체류 중인 외국 작가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열어 아시아 예술 커뮤니티의 친목을 도모한다. 자카르타 출신 연구자이자 큐레이터인 레너드 발토로메스(Leonhard Bartholomeus), 중국 총칭 레지던시를 마친 케이치로 테라에(Keichiro Terae) 작가, 타이완 타이난 레지던시에서 돌아온 마키조노 켄지 (Makizono Kenji) 작가들과 함께 발표했다. 일본 작가들의 발표가 그동안 내가 해왔던 방식과 아주 달라서 신기했다. 일본 작가들은 먹어본 음식, 숙소, 재밌었던 일화 등 현지 사정과 작가들의 레지던시 생활을 주로 설명하고 작업의 과정이나 결과물에 대한 말과 사진은 아꼈다. 작업과정과 전시 결과물만 소개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삼가는 프레젠테이션을 해왔던 나에겐 생소한 발표 문화였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작업보다는 현지 생활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체 성격과 커뮤니티 내에서의 접근 방식의 차이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아티스트 토크 사진

레오나드 발토로메스 큐레이터는 자카르타 출신으로 한국에도 자주 소개된 롱그루파(Wrong Groupa)라는 자카르타 대표 풀뿌리 아티스트 콜렉티브의 막내 맴버다. 아시안 아트 에어 강의에서는 롱그루파의 활동을 소개했는데, 사실 그는 개인 연구를 위해 아시안 아트 뮤지엄의 연구자 자격으로 체류 중이었다.

미술관에서 스튜디오 이웃사촌이었던 발토 큐레이터와 얄루 작가

주류 탈식민주의자들의 근현대 인도네시아 풍경화에 대한 시선을 비판하는 논문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의 요지는 주류 탈식민주의자에게 인도네시아의 근현대 풍경화 식민주의의 폐해이자 잔재를 무조건 비판하지만 발토 큐레이터는 당시 인도네시아 풍경화가에게 서양에서 건너온 새로운 표현기법은 수동적이고 억압의 산물이 아니라 새로운 영감이자 현지 문화와 유산에 공명하는 자주적인 운동이기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나이가 비슷한 학자와 벽을 나누며 세계화,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 사상, 아시아 근현대(미술)사를 잠깐이었지만 일상 속 수다에 녹여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노미짱이 해준 아침밥.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져 눈물이 찔끔 났다.

노미 키쿠코(Nomi Kikuko) 작가는 이와모토 큐레이터와 십년지기 친구이다. 예산을 아껴 쓰려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노미짱은 선뜻 자기 집 방 하나를 내주었다. 때때로 식사나 차를 함께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쿠오카 현지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미짱은 근처 바에서 파트타임을 하고 있었는데, 그전에는 전화 상담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한다. 후쿠오카의 많은 예술가가 시간 조절이 자유롭고 시급이 좋은 편이라 전화 상담 아르바이트를 많이 한다고 했다.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운 일본 사람들조차 전화기 뒤에선 상상 이상으로 심술궂고 험악하다며 웃으며 얘기해줬다. 어디를 가든 작가들은 음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 임지연

얄루(Yaloo)
얄루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다. 미국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학부를 마치고 동대학원에서 비디오 아트를 공부했다.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비디오 아트 계에서 권위 있는 프로그램인 비디오 데이타 뱅크에서 린블루멘탈 장학금을 수상하였으며2016년 뉴욕한인예술재단이 주최하는 비쥬얼 아트 어워드에서 금상을 받았다. 벨기에 리지 비엔날레, 퀘벡 비엔날레 등 전세계 크고 작은 도시에서 다수의 전시 경험이 있다.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해드랜드 아트센터, 퀘백 라반데 비디오 등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면서 역량을 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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