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도시의 그림자, 부평 삼릉 줄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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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도시 공간에는 집단의 기억이 머물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떠올려 봅시다. 20년 정도 축구경기와 공연과 행사가 무수히 열렸고, 영화관과 마트와 예식장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 응원하는 팀의 홈구장이고 주말마다 가는 마트이며 사랑하는 부부의 시작점이고 처음 가 본 콘서트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겪은 집단의 기억은 2002년 독일과의 4강전 무대일 것입니다. 심지어 그때 태어나지 않은 학생에게도 집단의 기억이 전달되어 먼 훗날 상암경기장이 사라져도 일정 기간 이 기억은 유지될 것입니다. 2002년의 서울 광장이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서울광장에 새겨진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가 거리 응원인 것처럼 말이지요.

어떤 오래된 공간은 가끔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중구의 차이나타운과 개항장 문화지구가 꼭 그렇습니다. 작년 여름에 제가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 1편에서 말씀드렸던 상하이처럼 오랜 시간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취급돼 주목받지 못하던 조계지의 옛 석조건물들을 문화공간으로 재발견하고 집단의 기억에서 지워진 옛 일본식 주택들에서 개항과 근대화의 기억을 꺼낸 것이죠. 이제 이곳에는 다시금 깨어난 과거의 기억과 그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오늘의 삶이 뒤섞여 더 재미있고 역동적인 공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표적인 집단의 기억으로 다른 시간이나 현재마저 잊히기도 합니다. 최근 박물관 건립과 관련하여 의견이 다양하게 오고 가는 부평의 삼릉 줄사택을 보면 어떤 도시 공간에서는 현재가 잊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현재 부평공원 자리에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고 이 공장은 미쓰비시의 소유였습니다. 그들은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거주할 사택을 철길 건너편에 지었고, 이중에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삼릉(三菱, 미쓰비시) 줄사택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식 주택인 ‘나가야(長屋) 형태’로 지어졌는데 옆집 벽을 맞대어 줄줄이 늘어서 짓는 연립주택 형태입니다. 그래서 ‘줄’사택이지요. 현재 가장 크게 남은 곳은 ‘미쓰비시 줄사택 유적지’로 70여 채가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유적지 외에도 일부 인근에 나가야 형태로 잘게 나뉜 필지들이 몇 군데 더 있고, 오랜 시간 건물의 외면은 변했지만, 당시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부평동 삼릉 줄사택
(출처: 중부일보 바로가기)

현재 줄사택 일부를 보존하며 마을박물관을 짓거나 부족한 주민이용시설을 확충할 공공 마을도서관이나 장난감 대여점 등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너무 낡은 건물이기에 철거하고 새로운 시설을 짓는다는 의견은 기본적으로 일치합니다. 오래되며 낮고 좁은 도시를 높고 넓은 도시로 바꾸는 것.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줄사택은 80년 가까이 된 건축물이므로 보수해 생활하기에 한계가 있고 이미 상당수 집이 비어 있어 철거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도시 공간을 개선해 역사문화공간을 만들거나 재건축, 재개발 과정에서 현재 그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잊어지기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세계적인 도시들을 연구하며 독특한 특징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첨단산업이 모여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 역설적으로 가난한 이민자들과 비정규적이고 낮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도시의 대규모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는 높은 임금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많지만 그들이 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해 경비와 유지보수 및 청소 등 낮은 임금의 임시직 종사자들도 함께 필요로 하게 됩니다. 또 사센은 가정에 있던 많은 여성들이 전문직종에 진출하면서 이전에는 적었던 가사노동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또 다른 도시사회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이런 직종의 종사자들을 ‘불안정한(Precarious)’과 ’노동자(Proletatiat)’를 합쳐 ‘프리케리아트(Precariat)’라 불렀습니다. 마르크스가 단결하자고 했던 노동자 계급보다 프리케리아트는 더 불안정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근로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습니다. 그래서 주거지역을 선택하는 데 제약을 훨씬 많이 받습니다. 직장과 집이 더욱 가까워야 합니다. 많은 경우 임시직으로 고용되기 때문에 지금 일자리에서 해고돼도 언제든 다른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대도시에 거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도시 중심일수록 더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합니다. 이런 악조건 때문에 많은 저소득 노동자들은 더 넓고 저렴한 주거를 찾아 교외로 나가지 못하고 도시에서 낡고 오래되고 좁은 주거공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자가소유는 꿈도 꾸지 못하고 그런 공간을 임차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앞둔 오래된 주택과 상가건물의 옥탑, 반지하, 그리고 쪽방과 고시원 같은 곳 말입니다.

최근 화재사고가 발생한 종로구 국일 고시원
(출처 조선일보 바로가기)

하지만 우리 도시는 계속 이런 공간을 없애고 싶어 합니다. 인천뿐만 아니라 어디나 그렇습니다. 재건축과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낡은 공간을 없애 버리기도 하고 도시재생이나 역사문화공간 만들기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켜 겉모습을 유지한 채 공간 안의 사람들을 바꿔 버리기도 합니다. 한때 광풍과 같았던 뉴타운이 전자라면 연남동·후암동·익선동은 후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더욱 쾌적한 삶의 공간과 더 좋은 일자리와 더 많은 문화적 경험을 위해 도시 공간에서 계속 낡고 좁은 공간을 지워 버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방법은 아닙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워져야 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당연하고 도도한 흐름일 뿐입니다.

다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도시가 부분부분 새로워질 때마다 별다른 방법 없이 밀려나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뉴스에서 재개발에 항의하는 세입자들이나 젠트리피케이션에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고시원과 쪽방과 낡은 재개발 지역 주택의 세입자들이 도시에서 여기저기로 밀려다니는 것을 우리는 대체로 잘 알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얼마 전 또다시 날씨가 추워지자마자 종로 고시원 화재 같은 사고가 벌어지고 나서야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대책을 마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공간을 꿈꾸는 동안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도시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빛이 닿지 않은 도시의 그늘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글 김윤환(도시공간 연구자)

[참고문헌]

데이비드 하비(2014). 반란의 도시. 에이도스
사스키아 사센(2016). 세계경제와 도시. 푸른 길
“인천 부평구 미쓰비시 줄사택 박물관 조성 사업 표류”. 중부일보. 2018. 11. 11.
“’강제동원 흔적’ 미쓰비시 줄사택, 구청장 공약사업의 전쟁터 됐나”. 인천일보. 2018.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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