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의 봄, 나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인천을 떠나 서울의 기숙사로 가게 되었다. 주위의 어른들은 나의 ‘서울 입성’을 축하해 주시며, ‘서울은 인천과 수준이 다르니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철없던 나는 부모님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누릴 자유만을 생각했었기에, 그런 이야기들은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다. 잊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열흘 전 인천문화재단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직후였다.
“인천 가치 재창조에 관한 릴레이 기고를 받고 있습니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가 무엇인지, 인천의 문화발전에 대한 제안이나 의견 등 다양한 생각들을 써주세요.” 나는 겁 없이 ‘네’ 대답해버렸고, 이후 며칠 동안 원고에 대한 압박을 느끼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결국 인천의 지인들에게 “인천에 대해 떠오르는 키워드를 적어 보내달라” 는 문자를 돌렸다. 그 결과, 인천이라는 도시는 여전히 지리적으로는 “서울로 출퇴근을 하기 좋은 곳”이었으며, 역사적으로는 “근대적인 외교와 무역이 시작된 곳”이며, “근대문화의 발상지”, “차이나타운이 유명하다.”, “근대 건축물이 많다.” 와 같은 단편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내용들을 확인하고 나니, 오래 전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인천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인천이라는 도시가 살기 좋고, 떠나기 싫고, 행복한 곳이라고 인식되려면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사람의 마음에 각인된 이미지나 인식을 변화시키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크고 작은 감동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건물, 많은 아파트와 같은 물질적인 것이 마음으로 와 닿으려면, 그 곳의 풍경이 아름답거나, 동네 사람들과의 따뜻한 교류 같은 정서적인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인 것들을 우리는 ‘문화’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라는 것을 전통 민속예술이나 문화재, 순수 예술장르 관련 공연이나 교육,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과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또, 문화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하냐는 물음에는 대부분 중요하다고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신적인 안정’이나 ‘즐거운 여가’ 등의 통념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문화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은 문화발전을 위해서 공연장이나 박물관, 도서관 같은 시설을 새로 만들고, 공연이나 행사, 전시 등의 횟수가 많아지면 문화도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착각이라고 여겨진다. 수년에 걸쳐 인천에 다양한 시설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크고 작은 축제와 공연, 전시 등이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서울과 인천을 비교하면 문화 환경이나 수준의 차이가 크다고들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대한 이런 열등감은 인천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인천의 문화 정책은 인천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구도심의 차이나타운이나 일본인 거리, 아트플랫폼은 모두 독특하게 꾸며진 건물 외관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자장면 먹고, 아트플랫폼의 전시장 한 두 곳을 돌아보면 끝나는 관광코스로 이 곳을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제대로 된 역사적 배경이나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하고 돌아간다. 또, 인천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이들 장소가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긍정적으로 인식되거나 문화적 자부심을 주는 곳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가치와 의미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가 크게 부족하여 감동이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상업적으로 소비된다고 해서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 또한 아니다. 인천이 지닌 다양한 문화자원에 대한 시민들 스스로의 이해 수준을 높여야만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적으로 인천이 ‘가진 것’을 발굴, 교육하여 적극적으로 드러내야만 한다. 인천이 ‘가진 것’ 중 잘 모르는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근대 초등교육의 출발점이 된 ‘영화초등학교’와 순수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창영초등학교’는 존재만으로도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며, ‘자장면’뿐 아니라 ‘쫄면’도 인천에서 탄생했다. 인천이 가진 전통예술 중 국가지정문화재인 ‘은율탈춤’과 ‘서해안 배연신굿’은 보존 가치가 매우 높으며, ‘휘모리잡가’는 서울, 경기, 인천에만 인간문화재가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음악장르이다. 또, 인천 지역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서해안 풍어제’와 ‘인천 근해 갯가노래’, ‘강화 용두레질 소리’도 매우 매력적인 전통예술 장르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인천 시민들에게는 매우 낯설 뿐이다. 물론 이 외에도 인천이 ‘가진 것’ 중 시민들이 모르는 것은 정말 많을 것이다.
인천시는 인천이 ‘가진 것’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홍보하고, 문화예술가와 기획자, 창작자들이 좋은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창작물에 대한 교육과 체험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연계하는 것을 도와야 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인천의 매력을 체험하고, 그 속에서 감동과 공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들이 인천에 살고 있음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 강희진(거문고앙상블 ‘다비’ 대표, 음악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