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 학익동에 재개발 사업이 박차를 가하면서 빈 집들이 증가하고 있다. 쓸쓸한 인천 학익동에 늦가을 칼바람이 불면서 음산한 분위기를 더해가는 가운데, 한 젊은 예술가가 학익동의 붉은 벽돌집을 통해 사라져가는 추억의 마지막 빛을 밝히고 있다. 늘어진 고운천으로 지나가는 이를 맞이하는 그 집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임청하, “이제 가면 언제 올라나, 언제 올 줄을 모르겠소! 어널, 어널! 어허이, 어화널!”, fabric, and “the house”, 2018
이전에는 주로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저는 원래 회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게 회화는 상담자나 컨설턴트 같은 존재라서 가장 편하고 효과적인 표현방식이에요. 그리고 도시와 도시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학부 때 도시와 조경 관련해서 교양수업을 간간이 듣기도 했어요. 작년에는 해방촌 도시재생센터장을 맡고 계시는 교수님을 도와서 연구에 참여한 적도 있고요. 니트 산업으로 성했던 70~80년대의 해방촌 역사와 현재 입주한 아티스트의 현황을 조사해서 그 둘의 접점을 찾는 연구였죠. 그리고 작년 여름 방학 동안에는 해방촌 주민들이랑 관계를 쌓으면서 빈집에서 전시를 했었죠.
이번 <proper farewell>에서도 도시 재개발의 문제를 넌지시 드러내고 있어요. 이전에도 회화 작업을 통해 도시이슈를 다루셨나요?
도시가 제 관심사이긴 하지만 도시문제를 회화 작업을 통해 직접 드러내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도시 문제를 회화로 표현하다 보니 제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어려운 지점이 많거든요. 그래도 이번 전시가 제 회화작품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제 회화작품은 주로 개인적인 부분에서 시작하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죠. 집에 대한 그리움, 누군가에게 숨기고 싶은 마음,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과 같이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을 담아내죠. 이러한 본성을 구체적인 제 경험에 빗대어 그림으로 표현해요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큰 주제를 내포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방식이 제가 회화를 대하는 태도이고 이번 전시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임청하, Wishful Thinking(바램), Oil on Canvas, 2016
그 집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임청하 작가님의 <Wishful Thinking(바램)>을 볼 수 있다.
그녀가 그린 도시는 도시에 얽힌 사회문제를 표현하기보다 그녀의 경험과 이야기가 투영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교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현재는 문래동에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인천문화재단에 <바로그지원>을 어떻게 신청하게 되셨나요?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유학을 하러 외국에 갔었어요. 그러다 이 전시는 올해 4월부터 생각했어요.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이 집이 없어진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졸업하고 한국에 가기 전까지 이 집이 그대로 있으면 전시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때마침 스페이스빔에서 하는 인천 에코 뮤지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몇몇 작가님께서 <바로그지원>을 추천해주셨어요. 지금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문래동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이 작업을 계기로 인천에 자주 왕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기획 전시명이 <proper farewell>이에요. 이 집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듬뿍 느껴져요.
제가 이사도 잦고 유학을 하다 보니까 저한테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주민들이 집이 철거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서 공감이 가지 않았죠. 저한테는 빼앗길 집도 없었으니까요. 근데 이 집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의 허를 찌른 거예요. 저한테도 집이 있었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된 순간이었죠. 제가 태어날 때부터 있던 집이었고 어렸을 적에 자주 왔었거든요. 다행히 한국에 돌아오는 날까지 집이 남아 있었고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아버지 유품과 흔적을 전시하고자 한 계기가 있나요?
할아버지가 은퇴하시고 그림을 그리셨어요. (그림을 가리키면서) 이것도 할아버지 그림이고요. 그래서 졸업할 때 첫 번째로 이 집을 기록하며 기억하고 싶었고 제 그림과 할아버지 그림을 같이 전시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죠.
임청하, Shelves, Home(책장 혹은 집), Oil on Canvas, 2016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난 과거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면도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보다는 우리 가족에게 크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동안 할아버지의 유품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집이 철거된다고 하니까 삼촌이 할아버지 물건을 한꺼번에 버리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물건을 하나둘 씩 들춰서 추석에 가족들 앞에 내다보였죠. 잠시였지만 가족들이 그 물건을 통해 추억에 잠길 수 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할아버지 방에 금고 하나가 있었어요. 굳게 닫혀 있었던 금고를 열어보니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조그만 금덩어리 하나였고 나머지는 엄마와 삼촌의 출생증, 그리고 친구들한테 받은 편지였어요. 그걸 보던 삼촌이 잠시 우수에 젖으셨죠.
할아버지께서 1년 동안 지병을 앓고 돌아가셨을 때 가족들이 많이 지친 상태라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못했는데, 가족들에게 남겨진 것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전시를 소개하실 때 할아버지의 유품과 선생님께서 재해석한 작품이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부분을 선생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시각미술을 해서 시각적인 부분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죠. 그래서 어떤 것을 우선으로 눈에 들어오게 하고, 어떤 부분이 나중에 들어와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연출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연출되는 지점과 그대로 배치된 상태 사이를 어떻게 조율할지가 고민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아까도 할아버지의 과거를 착취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그래서 어떤 물건을 재배치했다면 어떤 것은 할아버지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기 위해 그대로 두려고 했죠.
예를 들면 어떤 물건을 재배치 하셨나요?
저쪽에 할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셨던 시집이 있는데, 가운데로 펼쳐 놓은 채로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어떤 시를 자주 읽고 좋아하셨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이 집을 주제로 전시를 하다보니까 눈에 들어오는 키워드가 있어서 그 부분을 펼쳐놓았죠. 제가 기획하고 설치하는 부분에서 재해석 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사적인 공간을 공개하는데 어렵지 않으셨나요?
저는 누군가와 함께 경험하면 더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 같거든요. 제가 혼자 여행을 다녀왔을 때 공유할 사람이 없으니까 마치 꿈처럼 허무했어요. 누군가와 여행을 다녀오면 서로 그 때를 기억하고 회상하며 서로 피드백을 주잖아요. 기억이 왜곡될지언정 견고해지죠. 제 어렸을 적 친구들이 다 여기 있어요. 이 집을 알았던 친구와 가족 누구든 다 같이 모여서 경험을 공유하면 이 집은 없어져도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집과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요?
워낙 많은데요. 할아버지께서 은퇴하시고 악기를 많이 다루셨어요. 제가 바이올린을 처음 켜니까 할아버지도 같이 연주했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바로 여기 3층에서요. 그리고 제가 중 2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5학년 때 유학가고 돌아왔던 2008년 여름에 할아버지께서 뇌종양 판정을 받으시고 점점 기억이 사라지셨어요. 그래서인지 할아버지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이 2008년에 멈춰 있더라고요. 스캐너를 열었을 때 올려진 문서도 2008년 3월이었죠. 제가 이번 전시에 놓은 방명록도 2008년이고요.
3층에서는 주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데, 다른 층에는 어떤 테마를 선보이실지 궁금해요.
1층은 좀 더 아카이브 전시 같아요. ‘연희집단 갱’과 ‘자표자기’라는 팀을 <바로그지원>에서 만났거든요. ‘자표자기’는 인천 부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입주하고나서 1년이 지나자 재개발 통보를 받아서 결국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어요. 그 일을 겪고나서 그곳에 남겨진 사람에 대해 아카이브전을 하고 싶다고 하셨죠. ‘연희집단 갱’은 현재 까마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까마귀의 시선으로 동네를 바라보면서 길놀이를 하고 있어요. 도시개발 문제에 직접적인 구호를 외치기보다 그 장소를 거닐면서 꽹과리치며 춤추고 놀다가도 잠시 멈춰 풍경을 바라보죠. 그런 태도가 이번 제 전시작품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졸업 전시 때 영상하던 러시아 친구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친구의 할머니도 평생 사셨던 집이 정부에 의해 밀리게 되었죠. 그래서 그 친구는 그 사건을 모티브로 할머니의 경험을 판타지적으로 풀어 보고자 해요.
그리고 3층 곳곳에서 다른 작가님의 작품도 눈여겨볼 수 있어요. 이 건물 자체와 재개발에 주제를 갖고 작업한 오수(오승욱)작가님, 할아버지의 시점과 이집에 축적된 기억에 대해 작업한 안치영 작가님, ‘그집’의 시점으로 사람들을 관찰하는 동그랭 팀의 작업이죠. 아, 마지막으로 우나연 작가님께서는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세요.
러시아 친구도 같이 참여하나요?
네, 전시에는 못 오지만 영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타의에 의해서 집이 없어지는데, 꼭 집만이 아니더라도 내가 의도지 않게 무엇과 작별을 한다는 것은 국경과 상관없이 보편적인 주제라고 생각해요. 인간이면 누구나 이별을 해야하는 시점이 있고, 그러다 보니 비슷한 주제를 가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던 것 같아요.
오수(오승욱), 창, 혼합매체, 2018 |
오수(오승욱), 문, 혼합매체, 2018
동그랭, ◯ ◯ . ◯ ◯ ,커스터마이즈 소프트웨어, 빛센서, 빔프로젝터, computer
dimension variable, open source, michael pinn, 2017
안치영, .ZIP, 혼합매체, 2018
“저의 전시 의도도 재개발이라는 주제로 하다보니 도시에서 겪는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이 의식하고 있긴해요. 하지만 이집은 저의 가족과 할아버지의 개인적인 부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사회적 현상이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겪는 개인의 이야기에 주제를 맞추고자 노력했어요. 친구랑도 얘기했었는데, 예술은 개인이 겪는 일을 기록하고 기념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매개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집 :proper farewel> 전시에서는 임청하 작가님 외에도
동그랭, 연희집단 갱, 오수(오승욱), 우나연, 임청하, 자표자기,
Alessandra Pozzuoli, Charlie Enrenfried, Sofiya Fayzieva 등 여러 작가가 참여한다.
서로가 그 집을 넘나들어 또 하나의 사라질 역사를 기록해보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2층에서는 어떤 작업을 선보이시나요?
2층은 할머니께서 최근에 생활하던 공간이라서 조금 더 현재를 기념하기 하기 위해 오프닝 잔치를 펼칠 예정이에요.
이번 전시에서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여기 전시를 구상할 때 주민들도 이곳에 오셔서 함께 즐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이미 이 동네를 다 떠나셨거든요. 개별적으로 초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오늘 재개발 조합장에 초대장을 드렸죠.
<Proper farewell>전시를 마치고, 도시와 관련해서 또 다른 작업을 펼칠 예정인가요?
저는 이 전시가 저한테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운도 좋았고요. 아직 집이 없어지지 않았고 집과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니까요. 게다가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이라서 제 마음대로 작업 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참여 작가들과 한 주제를 가지고 공유할 수 있었죠. 문득 다음에도 이런 주제로 전시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는데, 어느 시기에 주제가 적절하고 깊게 가담한다면 작업하겠지만 한동안은 문래동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진솔(정책연구팀)
사진 / 임청하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