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하품학교

0
image_pdfimage_print

1
   
7월의 마지막 수요일, 아침부터 학산생활문화센터 ‘마당’의 4층 소극장을 찾는 이들이 있다. 더운 날씨에도 이들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고, 직원들은 익숙하게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날은 한 달에 한 번, ‘하품학교 영화감상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이다. 이 달의 영화는 ‘매드맥스’. 중장년층 이상의 어르신들도 있고,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어머니까지 관객층이 다양하다. 사실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여기 말고도 많은데, 특별히 이 이른 시간에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하품학교의 민후남 교장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
2004년부터 2016년까지
하품학교는 학산문화원이 생기고 첫 번째로 만들어진 동아리다. 하품을 하면서 우리의 뇌와 신체가 새로운 활력을 갖게 되듯, 지루한 일상에 영화로 활력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품학교’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하품 나오는 지루한 영화만 보는 게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을텐데, 참 재미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품학교를 시작으로 학산문화원에 뚜벅뚜벅 남구, 미술관 체험프로그램, 문학기행 등의 다양한 동아리가 만들어졌는데, 그때부터 13년 동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아리가 바로 하품학교라고 한다. 처음에 하품학교는 매우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는데, 민후남 교장이 4번째 회원이었다고 한다. 회원이 된 동기는 간단했다. ‘하품학교’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고, ‘하품’이라는 단어가 궁금했다는 것. ‘왜 하품학교인가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회원들도 비슷한 호기심을 안고, 혹은 무료로 영화를 보는 것이 좋아서 하품학교를 찾아오곤 한다. 지금은 200~300여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하품학교와 함께 하고 있으니 14년 동안의 성장이 눈부시다.

3

오전 10시, 새로운 시도
기자가 찾은 날, 오전 10시 영화감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의 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여름, 현재 하품학교는 더 많은 주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다. 학산문화생활센터 ‘마당’으로 이전하면서 저녁 7시에서 오전 10시로 시간을 바꿨기 때문이다. 노년층이나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 등 저녁 시간 참여가 어려운 분들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오전으로 영화감상 프로그램 시간대를 바꿔서 운영한 지 3개월째, 노년층 관객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날 만난 관람객은 “영화를 보는 것이 즐거워서 장소를 옮겼음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건넸다.

 

 


4
하품학교가 영화를 즐기는 방법
하품학교는 언제나 누구나 쉽게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시도한 프로그램이 바로 ‘하품학교 영화감상 프로그램’이다. 오전에만 시간이 나는 주민들을 위해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가 끝나면 평론가가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가지는 것이다. 하품학교에서 오래 활동한 회원들은 보다 깊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데, 그런 공간이 또 있다. 바로 평화시장에 위치한 하품학교 분교이다. 1년 정도 된 이곳에서 하품학교 회원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영화를 즐긴다고 한다. 이렇게 두 개의 센터를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천 곳곳에서 더 많은 주민이 가볍게 혹은 깊이 있게 원하는 대로 영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20대부터 80대까지 영화로 소통하다
하품학교의 회원 연령층은 매우 다양한데,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영화’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20대 대학생부터 영화가 유일한 취미였던 80대 노년층까지 영화를 보고 각자의 시각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관람했을 때, 나이에 따라 반응이 특히 도드라졌다고 한다. 같은 영화를 관람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이 과정에서 젊은 회원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고, 중장년층 이상의 회원들은 젊은이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한 토론으로 시작했지만 개인의 삶을 토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품학교의 한 해 마무리, 하품영화제
하품영화제는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하품학교의 축제로 2004년부터 시작, 올해 13회를 앞두고 있다. 초기에는 주제와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기존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더 많은 주민과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욕심과 열의가 커졌고, 회원들이 뜻을 모아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회원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든 작품은 개막식에서 상영되며, 하품영화제의 시작을 열고 있다.

5
관객에서 감독으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비전문가인 하품학교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매년 작품을 만들고, 영화제에 올리고 있다. 봄부터 주제와 키워드를 선정하고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을 한다. 진행 스탭, 연기하는 배우, 편집 작업까지 모두 회원들이 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3분 이내의 짧은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가 되어 하품영화제의 개막식을 빛내고 있다. 회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도 있다. 민후남 교장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두 편이 있다. 첫 번째는 몸이 아픈 아버지, 철부지 동생과 함께 마지막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자기 자신이 큰딸로 연기하면서 마음은 아팠지만, 더욱 실감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두 번째는 딸이 시집 가기 전 둘이 떠난 여행을 영상으로 남겼던 다큐멘터리다. 나래이션 녹음을 하면서 눈물을 쏟던 그녀를 바라보던 회원들까지 감정에 이입해 함께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고… 이처럼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한편, 자신들의 작은 영화제를 알차게 만들어가고 있다.

편안하고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곳, 하품학교
민후남 교장은 하품학교에 바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저 자신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언제나 편안하게 오래오래 영화를 볼 수 있는 또 주민들에게 더 많은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게 다라고 한다. 그녀에게 하품학교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듯,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작은 바램이다.

하품학교는 처음에는 그냥 순수하게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 모인 작은 동아리였다. 지금은 300여 명이 넘는 회원들과 함께 영화를 즐기고 제작까지 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이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하품학교 영화감상 프로그램, 좀 더 진지하게 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평화시장 분교, 1년의 결실을 공유하는 하품영화제까지 하품학교는 인천의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중심에 놓고 고민과 도전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즐겁게 영화를 보는 여유를 갖게 됐고, 어떤 이는 새롭게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영화감독이 됐다. 2004년 작은 시도로 시작된 하품학교가 바꾸는 인천을 기대해본다.

글 / 시민기자 오지현

Share.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