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평가나 시선에 의연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스위쏨>인터뷰

0
image_pdfimage_print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부당한 상황에 처해있어도 몇 번이고 말을 삼켜야만 했다. 마치 김근희 작가의 <조중균의 세계>에서 한 대목은 이를 반영한 듯했다.

혜란씨에 따르면 조중균씨는 매일 똑같은 시를 쓴다고 했다. ‘지나간 세계’라는 제목이었고 “어머니, 깃대를 들고 거리를 걷는다”로 시작해 “우리가 버린 꽃은 말이 없네”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조중균의 세계> 인용

이처럼 침묵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통쾌하게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만났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안락한 집을 탈출한 <스위쏨>이다.

 

스위쏨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진아 : 스위쏨은 5명의 청년이 가던 길을 버리고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모인 팀이에요. 그중 3명은 현재와 같이 생활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사범대를 다니다가 영화에 관심을 둔 계기가 있으셨나요?
진아 : 처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단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했었죠. 근데, 주위 사람들에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고 말하거나 혹은 다 같이 세상을 바꿔보자고 얘기하면 거부감을 가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제가 사범대를 나왔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러던 친구들도 영화나 문화예술을 통해서 사회문제를 접하면 이러한 문제들이 나와 멀지 않다고 느끼거나 혹은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부분이 재밌게 느껴져 영화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졌고, 복수전공으로 영화를 선택했죠.

자신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제작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진아 : 네, 직접 말로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는 영상으로 제작할 때 제 목소리가 더욱 잘 전달되어 사람들이 더 공감하고 와 닿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물넷 엄마를 만나다>에서는 사회적 문제를 부각하기보다 자신과 엄마의 내적인 이야기를 첫 작업에서 선보이셨어요.
진아 : 제가 임용고시를 준비하지 않고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 엄마였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 작업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독립출판 프로젝트 <스물넷 엄마를 만나다> 교환일기, ©스위쏨
2016년 인천문화재단 ‘바로그지원’에서 선정된 <스물넷 엄마를 만나다> 프로젝트는
집 나온 스물넷 딸들이 엄마와 주고받은 일기 내용을 담고 있다.

<스물넷 엄마를 만나다>를 통해 엄마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에 대한 변화도 있었을 것 같아요.
진아 : <스물넷 엄마를 만나다>를 하기 전에는 저에 대한 엄마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막연하게 있었죠. 근데 이 작업을 통해서 엄마의 생각을 좀 더 알 수 있었고 마음의 부담을 덜어 놓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민경 : 저도 진아와 같이 사범대를 졸업했는데, 저희 엄마도 제가 임용고시를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항상 이야기하셨어요.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연기하고 싶었거든요. 당시에는 엄마가 원하는 방향을 정해놓고 나를 거기에 맞추어 살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근데 작업을 하면서 엄마도 내 미래와 진로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엄마의 두려움을 떨칠 수 있도록 내 길을 열심히 걸어야겠다고 느낀 것 같아요.

<스물넷 엄마를 만나다>에서 엄마와 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는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진아 : 엄마가 일기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숨기려고 하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엄마는 스물네 살 때 공장에서 일하셨는데, 그것이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였던 것 같아요. 엄마한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쉽게 이야기를 꺼내시지 않으셨죠. 그때 <바로그지원>프로그램에서 선배 예술가들이 멘토로 계셨는데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그분들 중 김재민 작가께서 엄마랑 둘이서 의미 있는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제안하셨죠. 그래서 엄마, 아빠의 신혼여행지로 둘이 여행을 다녀왔죠. 그때 엄마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던 것 같아요.

현재 <미스사이비-인천 청년 보이콧 스터디>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계시는데, 시작하게 된 모티브가 있나요
진아 : 작년에 <스물넷 엄마를 만나다>를 영화로 찍었는데 편집을 오랫동안 못하고 있었어요. 처음으로 지원금을 받아서 찍은 영화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충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이 영화를 마무리해서 남들에게 평가를 받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왜 나는 남들의 평가와 시선에 연 연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죠. 생각을 좇다가 스스로 결론을 내렸는데, 어렸을 적부터 평가나 경쟁에 익숙해진 탓에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만 행복할 수 있다고 배워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왜 이렇게 배웠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 틀을 벗어나 보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죠.

보이콧 스터디 1화-자기소개, ©스위쏨
영상 (자세히보기 ▶)
<미스 사이비-인천 청년 보이콧 스터디>는 단편 극영화<미스 사이비>의 제작을 위해 진행하는 프리프로덕션 과정의 일부로
SNS를 통해 청년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영상 프로젝트이다.
<인천 청년 보이콧 보이콧 스터디>는 대학 입시, 졸업, 취직 등 사회가 말한 평범한 길을 가지 않고
독립영화에 뛰어든 다섯 명의 청년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을 그룹스터디 형식으로 보여주었다.

보이콧 스터디 2화-수능, ©스위쏨 제공
영상 (자세히 보기▶)

<보이콧 스터디> 프로젝트의 주요키워드를 공시, 청년, 인천으로 꼽으셨어요. 인천 청년들의 고민이 단지 인천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인 청년들의 고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특정 지역으로 한정시킨 이유가 있는가요.
진아 : 물론, 지금 말씀드린 것들이 인천뿐만 아니라 모든 청년이 가진 문제의식일 것이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청년들이 가지는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스위쏨 친구들은 인천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성장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저희만이 혹은 인천 청년들만이 가진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이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그 지점이 바로 서울에 대한 열등감과 인천에 살아온 자기 부정인 것 같았어요. 인천에 오랫동안 살면서 ‘인천을 떠나야 해, 인천을 벗어나야 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했는데, 20년 동안 인천에서 만들어온 정체성을 왜 우리 스스로가 부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었죠.

9월 13일 인천문화통신3.0은 <스위쏨> 김진아, 김민경, 한세하(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지연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인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진아 : 20대 초반까지는 항상 벗어나고 싶었어요. 주변에서 항상 인천을 떠나야 한다고 들었고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든지 아니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했죠. 이런 얘기를 계속 듣다가 21살에 처음으로 인천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선배들이 앞에서 끌어 주며 내가 살아온 인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이 즐거웠어요. 그때 처음으로 인천에서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인천에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진아 : 인천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기보다 제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인천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일단 제가 계속 살아온 곳이기도 하고 재미난 일들을 함께 벌일 사람들이 여기 다 있거든요. 조금만 손만 뻗더라도 나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들, 선배들, 선생님들이 있으니까요. 특히, 제가 지금 인천 독립영화협회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인천 독립영화인들인 모여서 만든 협회인데, 서로 같이 얼굴을 마주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보기도 하죠. 그래서 굳이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진 것 같아요.

이번 청년레지던시 지원사업에 선정되셨을 때 소감이 어떠셨나요?
진아 : 작년 말에 동료들이랑 함께 영화를 찍었는데, 때마침 청년문화예술 레지던시 사업이 생기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 지원 사업에서는 몇십 년의 경력을 갖춘 선배님들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지원 사업을 받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분들의 기획에 프로젝트 보조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었죠. 물론 선배님들로부터 배우는 부분도 많았지만 정작 제가 하고 싶은 기획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어요.

단편영화 <스물넷 엄마를 만나다> 촬영현장 ©스위쏨

보이콧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먼저 있어야 할 텐데요. <보이콧 스터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진아 : <보이콧 스터디>조회 수가 저조해서 다른 영상을 제작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상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 시험 준비로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이 이것을 보고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왔어요. 뭔가 공감된다고 하더라고요. 이 계기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마음먹은 대로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보이콧 스터디> 6,7화에서는 ‘선배 미스사이비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미스사이비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건가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진아 : <미스사이비>는 저희가 12월에 찍으려는 단편영화에요. 미스사이비는 독서실 총무로 일하고 있는 데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공부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죠. 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쓰인 문학작품에 비슷한 인물이 없는지 살펴보았어요. 그 중 ‘필경사 바틀비’와 ‘조중균의 세계’를 찾았는데 두 캐릭터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노동이나 그 가치에 대해서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에요. 특히 둘 다 무엇을 보이콧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미스사이비>가 자칫 실업 포기를 유도하는 영화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관람객이 영화 <미스사이비>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진아 : 어떻게 보면 상당히 과격하다는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이 친구들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이런 고민을 했었는데’,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라고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내가 왜 남들과 경쟁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당장 내 눈앞에 시험이 있고 생계가 걸렸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의식들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미스사이비> 프로젝트에서는 경쟁, 차별, 평가에 대해서 과격하게 다루고 있지만, 넓어진 스펙트럼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평가나 시선으로부터 의연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요. 시험에 응시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요.

<보이콧 스터디> ‘자기소개서’ 편에서 불평불만이 작업의 원동력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어떠신지 궁금해요.
진아 : 네 맞아요. 제가 짜증도 많고 화도 많이 내기도 해요. 근데 눈앞의 사회 문제를 무난하게 넘겼다면 모든 프로젝트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물론 제 성격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지만, 작업할 때는 제 성격이 좋게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민경 : 나쁘게 표현하면 불평불만인데, 좋게 생각하면 문제의식을 느끼고 현상을 바라보는 거잖아요. 제가 모르고 스쳐 지나간 점에 대해서 진아가 문제 제기하면 그 부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고 해결하려고 이야기를 나누죠. 이러한 과정들이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같아요. 사실 진아뿐만 아니라 저희도 불평불만이 많아서 같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저희의 일상을 담은 영화를 제작할 거에요.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문제들을 계속 발견하려고 해요. 현재는 저희가 청년레지던시 사업이 끝난 3개월 뒤에 어디서 작업해야 할지 고민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거든요. 이러한 고민이 향후 작업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스위쏨 모두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페미니즘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보이콧 스터디에서도 수능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결국에 페미니즘으로 끝이 나더라고요. 언젠가 페미니즘과 관련된 영화를 제작해보고 싶어요.

단편영화 <364일> 촬영현장 ©스위쏨
<스위쏨>의 한세하 감독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겪은 일을 영화로 제작함

단편영화 <364일> 스틸컷 ©스위쏨

 

인터뷰 정리/ 이진솔(정책연구팀)

사진/ 스위쏨 제공
김지연

Share.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