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 국제교류사업인 <후쿠오카성 재건축 기념 기획 전시>에 참여한 작가의 소식을 싣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작년 여름에 있었던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서의 레지던시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인천재단 후원의 Yaloo Castle Site의 계기가 된 나의 첫 후쿠오카 생활에서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적어본다.
카와바타 시장에 전시된 야마카사
환영식 티세레모니 자원봉사자 분들, 말레이시아 작가 Sum Yen과 함께
대학원 졸업 후 작업에 계속 집중하고자 레지던시를 연이어 다녔다. 후쿠오카 아트 뮤지엄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다른 레지던시들과 성격이 매우 달랐다. 대부분의 사설 재단 레지던시는 자유분방하고 매우 사적인 분위기다. 숙소와 스튜디오만 제공하고 작가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대신 모든 일을 작가 스스로 해결한다. 아시안 아트 뮤지엄은 후쿠오카시 소속으로 회계팀, 학예팀 모두가 공무원이다. 계약 기간 내 작업 활동에 관련된 모든 결정이 여러 단계의 승인을 거쳐야 했다. 이런 경직된 시스템 안에 작가로서 창작 활동을 장려받는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답사, 자료 수집, 강의, 워크숍, 전시 기획, 협업, 전시 설치까지 모든 과정은 많은 회의와 준비과정을 거쳤다.
얄루파크 전시협업 회의중
처음엔 이런 번거로움이 불편하고 창작에 제약을 준다 느껴졌다. 하지만 ‘네 작업이니까, 너 혼자 알아서 해’라던지 오픈 스튜디오, 렉쳐 프로그램, 전시 때만 급하게 작가를 쪼아 작업 내놓으라 하는 태도가 아니라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위해 공정한 과정을 꼼꼼히 거치고 작가가 목표한 최상의 작업을 풀어내는 것이 곧 팀의 성공이라는 목표로 함께 일한다는 점이 뜻깊게 느껴졌다.
야마카사 장인 스튜디오 방문
교외로 야마카사 장인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는 출장으로 분류하여 출장비가 나오기도 했다. 봉투를 건네는 큐레이터분이 부끄러워하실 정도로 적은 액수였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거치는 절차와 격식이 오히려 고마웠다. 작은 부분까지 업무로 분류된다는 게 오히려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여름 내내 다양한 강의, 워크숍, 행사, 수많은 미팅, 전시까지 신나게 임했다. 작업실에 혼자 앉아 작업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작업을 소개하고 그분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의미 있다. 미국 각지를 다니며 강의 경험은 많지만, 일본에서 일반 미술관 관객을 위한 강의나 워크숍은 처음이었다.
싱가포르 학생들과 애니메이션 워크숍
대체적인 작업에 대한 반응은 어디든 비슷하지만 동, 서양 관객들의 감성과 배경 지식에 따라 작품별 이해도나 선호도가 조금 갈린다. 예를 들어 미국 중부의 농업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얄루농장> 작업 시리즈물을 한국이나 일본에서 소개할 때 부연설명도 길어지고 관객호응도 밍밍하다. 미국에서라면 설명이 길어질 홍삼이나 케이팝을 소재로 한 작업은 관객들과 내가 같은 맥락 속에 있기에 부연설명 없이도 유연한 소통이 가능하다. 강의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국 관객에게 ‘작업이 오리엔탈 하네요’ 또는 ‘일본적이에요’라는 코멘트를 종종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참 한국적이네요’라는 코멘트를 들었다. 같은 해 겨울, 한국에서 한 강의에서는 한 관객분이 ‘작업이 되게 중국적이네요’라고 말했다.
강의사진
일본에서 최연소 관객은 유치원 단체 관람객으로, 작업 하나하나에 서로 느껴지는 바를 필터 없이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학급에서 가장 우수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모범생이 가장 진부한 질문과 해석을 해낸 점도 재밌었다. 여자 어린이들은 부끄러웠는지 질문이나 응답을 전혀 하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 후쿠오카 지역사회 문화 종사자들을 접촉하고 큐레이터분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후쿠오카가 아시아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쿠오카에 아시아 최초로 아시아 아트 뮤지엄이 생긴 것도 같은 이유라 한다. 무시무시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핑계로 사용된 ‘아시아니즘’이 처음에는 순수한 개화 운동사상이었다는 것도 배웠다. 후쿠오카 출신 개화 학자들은 당시 유럽처럼 아시아도 함께 뭉쳐 서양 강대국에 맞서야 한다는 이론을 세우고 다른 아시아 국가의 개화 학자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꾀하여 그들의 자국 개혁과 개화 활동을 돕는다. 지리적 위치가 큰 몫을 한 건 물론이다. 그러나 일본이 식민주의 노선을 택하고 아시아니즘이 공식 사상으로 채택되면서 처참하게 의미가 변질되었다.
후쿠오카 전통주택 가정을 방문
일부 학자들, 그들의 자손과 제자들은 계속해서 좋은 뜻을 이어가고 있다. 후쿠오카에는 아시아를 울타리 삼아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작가들이 아직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후쿠오카 아트 뮤지엄도 그 산물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친일파를 가려내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 미묘한 후쿠오카 아시아니즘의 유래와 역사인 듯하다. 대중매체와 인기 역사 서적에만 의존하지 않고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비판적 시각을 길러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후쿠오카시 소속 공공 기관이고 학예 팀 대부분이 일본인 공무원이라는 한계가 아쉽지만, 그 딱딱함이 무색하게 내가 머무는 잠깐 사이에도 수많은 아시아 작가들과 학자들이 끊임없이 방문하고 활발한 연구, 전시가 이어지는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아시아’ ‘한국’ ‘일본’이라는 인위적, 물리적 울타리 또는 정체성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 더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후쿠오카 시립 박물관 야마카사 축제 모형 | 하카타역에 설치된 카자리야마 |
레지던시 관련 사전 조사를 할 당시에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야마카사 축제였다. 하카타 주민들이 건물 10층 높이의 거대한 가마를 이고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빈다는 이 축제는 구역별로 가마를 만들어 경주를 연다고 한다. 사진으로 접한 대형 가마들은 아름다웠고 나에게 최적의 리서치 주제였다.
야마카사 경주 리허설
야마카사 경주 리허설 | 가마 제장 장인과 가마꾼으로 활약하고 있는 나카무라 작가와 함께 |
도착 전 사전 조사를 할 때는 야마카사 장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었다. 창작 과정, 장인만의 노하우나 에피소드 등이 궁금했다. 조사과정에서 더 흥미롭게 관찰했던 점은 야마카사 축제를 계승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역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특유의 배타성이었다.
야마카사 가게 | 주인 아저씨 어릴 적 모습과 그의 아버지 |
야마카사 축제 참여를 통해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계승하는 지역 사회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축제를 준비한다. 여름 한 달을 통째로 할애해야 하는 축제 특성상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실제로 후쿠오카 곳곳에 축제 기간 동안 문이 닫혀있는 가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야마카사 축제를 사랑하는 하카타 사람들은 다양한 희생을 감수하면서 야마카사 전통을 지켜낸다. 조사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영어로 된 자료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장대한 축제는 해외에 많이 소개됐을 법한데 말이다. 야마카사 협회 관계자를 만났을 때 여쭤봤다. 굳이 외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노력해서 알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 축제는 그들만의,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일본 밖 사람들에게 알려져 축제 본연의 가치가 흐려지는 걸 원치 않는 것이다. 여러 언어로 친절하게 설명하는 안내문과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힘쓰지 않는다. 지역사회 관광 상품 개발에 큰 공을 들이고 관광객 유치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세계 대부분 도시와는 대조적이다.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대하는 하카타 사람들의 대담한 태도가 인상 깊었다.
쿠시다 신전에 위치한 야마카사 협회 방문
야마카사 기록을 빌려 신난 얄루작가
글·사진/ 얄루
얄루(Yaloo)
얄루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다. 미국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학부를 전공하였고 대학원에서는 비디오 아트를 공부했다.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비디오 아트 계에서 권위 있는 프로그램인 비디오 데이타 뱅크에서 린블루멘탈 수상을 하였으며2016년 뉴욕한인예술재단이 주최하는 비쥬얼 아트 어워드에서 금상을 받았다. 벨기에 리지 비엔날레, 퀘벡 비엔날레 등 전세계 크고 작은 도시에서 다수의 전시 경험이 있다.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해드랜드 아트센터, 퀘백 라반데 비디오 등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면서 역량을 쌓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