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IAP 7기 입주작가 소개 – 최선

0
image_pdfimage_print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들과 함께 2016년도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작가들을 만나봅니다. 첫 번째 만날 작가는 “예술의 가치가 외형적 근사함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답다고 간주되는 통념적 미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그 태도 속에 담긴 생산적 가치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최선입니다.

작가 홈페이지 ssunya.net

환영을 넘어서
전시장에 추상표현주의 혹은 엥포르멜 회화 즈음으로 보이는 정갈하고 도도한 거대한 회화작품이 걸려있다. 강렬한 색채, 익숙한 선과 획으로 포장된 드라마틱한 물결 앞에서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사실 더러운 오수의 장식적인 부분을 그림의 형식으로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지하게 된다. 작가 최선의 < 오수회화(적분의 그림), 2015 >이다. 최선은 돼지 한 마리에서 짜낸 기름으로 만들어 관람객의 체온에 녹아버리는 그림을 만들고, 공기 중에 유출된 무색무취의 맹독성 화학물 불산(HF, Hydrofluoric Acid)을 채취해 작품을 만든다. 그는 짐승과 사람 털을 태운 가루를 온 전시장 벽에 발라 가득 채우기도 하고, 심지어 물감 대신 캔버스에 침을 뱉어 말려 그림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으나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롯해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점을 주지하고 관례적인 표현방식과 형식의 예술 틀에서 한 걸음 비껴나 본다면, 물질성 너머 보이지 않는 가치 속에서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은 동시대 미술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하며, 문화의 한 형식으로 현대미술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의미의 균열을 만들어 내는지를 탐구해 왔다. 그는 오늘도 스튜디오에서 자신과 사회 현재의 문제들을 어떻게 시각적 언어로 담아낼 수 있을지를 실험해 나간다.

Q. 작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한 메아리전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 메아리, 2015 >는 급격히 사회가 과거로 회귀해가는 요즘, 어린시절 똥물로 넘쳐나던 변두리 개천 다리 밑에서 토치로 개의 털을 태우던 어른들의 과거 문화를 떠올리며 손바닥이 까지도록 벽에 짐승의 털가루를 발랐다. 짐승들의 털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벽은 한국의 과거를 들춰내는 벽화이며 동시에 시대적인 오브제이다. 미화되는 과거를 현대적인 화이트큐브 속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주고자 했다. 접착제 없이 벽에 달라붙어 있는 털가루들이 먼지처럼 떨어진다.

Q. 사람들과 함께 진행한 < 나비 프로젝트 > 또한 인상적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회 속 개인의 존재를 너무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한 명 한 명의 보이지 않는 숨길을 드러내는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 나비 프로젝트 >는 2014년 안산의 길거리에서 마주친 외국인 노동자들과 처음 시작했으며, 참여자들은 관념적으로만 인식하기 쉬운 자신의 숨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질적인 개인들이 동일한 숨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작가는 누구이고 또 예술작품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미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하나의 담론을 만들고자 했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졸업 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 동냥젖, 2005 >이다. 당시 이 작품을 선보인 전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모든 언어를 총동원해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당시 관념화된 미술교육이 몸서리치게 싫었기 때문에 이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작품을 전시하며 배운 것이 크게 두 가지 있다. 내 스스로 예술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작품은 작품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기에 사람들을 벗어난 세계에서는 예술이 있을 수 없고, 의미도 없다는 것. 다 른 한 가지는 내가 그토록 찾던 ‘새로운 것, 새로운 예술’ 이라는 것이 너무나 낯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그저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낯선 것’을 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이를 격려해주고 공감해주는 이들도 생겨났다. < 동냥젖 >을 통해 아름다운 것만이 벽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불쾌한 것, 부식되어 형식은 없어지고 시간이 지나 짓밟히고 그 형태가 뭉그러뜨려지는 것을 통해 진정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Q. 똥, 피, 침, 폐유, 오수, 재 등 더럽다고 간주되는 재료나 소재가 대거 등장한다. 이런 소재들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 실바람 >은 요코하마의 화장터에서 유골 분진을 얻고 그걸 전시장 바닥에 뿌려 설치한 작품이다. 사람들이 움직이면 뼛가루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뜨면서 실바람처럼 움직이는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뼛가루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먼지처럼 달라붙어서 또 다른 곳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그동안 강제 출국당할 위기도 있었고, 전시를 못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언짢아하기도 하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대응하다가 지금은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일 수 있으니까.

Q. 작가 최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나는 모호한 예술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호한 의문을 더 선명한 물음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실천을 해왔다. 내 시간과 겹치는 한국현대미술의 부조리한 과거를 뒤에 두고, 과연 무엇이 예술적이며, 무엇으로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이곳을 둘러싼 서구중심적 예술의 통념들이 낳은 모호함 앞에서 당신과 내가 또렷이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의 참혹함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예술적이다. 미술품을 만드는 나의 ‘미술’에는 이중적인 것이 있다. 가시적인 것과 가시적이지 않은 것, 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이지 않은 것, 선명한 것과 선명하지 않은 것, 그리고 미술적인 것과 미술적이지 않은 것, 마지막으로 예술적인 것과 예 술적이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예술’이 사라져 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술품을 만들고 있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예술적’이지 않은가?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회화에서 시작된 내 작업은 ‘환영과 형식적인 조건’, ‘비재현적인 방식과 재료’ 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제도권 속에서 미술로 수용된 회화라는 양식의 범주를 벗어난 비회화적인 재료와 비재현적인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조형과 가치 인식이 가능한지를 실험해 왔으며 그런 맥락 속의 대안적인 미술과 미술품을 제안하고 제작해왔다. 소비되는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고 기술과 자본의 영향 밖에서 새롭게 가능한 미술이 무엇이 될지 사회와 역사, 그리고 문화라는 컨텍스트(Context) 위에서 계속해서 실험해 보고자 한다.

 

Share.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