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인형이 들려준 생의 희노애락 – 인천비타민연극축제 극단 나무 ‘이야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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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현실은 노래, 그림, 사진 등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이를 통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감동 받기도 하며 다시 한 번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연극도 그 방법의 하나이다. 연극을 보며 배우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은 온전히 그와 우리만의 시간이며, 우리는 그와 함께 울고 웃고 호흡하며 우리의 삶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인천에는 2006년부터 연극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인천비타민연극축제가 있다. 연극인들의 순수예술공연축제인 이 축재는 올해 11회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연극, 주파수를 맞추다’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연극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시도가 이뤄졌다. 올해는 가장 먼저 아이들과 소통하며 교감하는 ‘하하 호호 주파수로’ 연극으로 인천비타민연극축제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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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나무의 <이야기 하루>는 노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무대 위에 종이로 만들어진 투박하고 거친 가구들이 있고 그 사이로 하루라는 노인이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인 하루는 폐지를 주우며 생활하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다.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힘든 일상을 보내고 외로이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며 깊은 잠을 잔다. 그런데 곤히 잠든 그의 뒤로 세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정체 모를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하루의 머리맡에 둘러서고 하루의 머리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보이지 않는 그것은 그들에 의해 상자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때부터 노인 하루는 걸음마를 막 뗀 자신의 모습을 한 종이인형과 그의 과거 속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복했던 과거와 마주한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즐겁게 친구들과 어울리던 그 시절부터 전쟁 참전까지… 그러던 하루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갑순이와의 만남을 겪는다. 갑순이와 하루는 첫눈에 반하여 평생을 약속하게 되고, 하루는 꿈에서 행복한 자신과 갑순이를 바라보며 눈물 어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꿈속에서 그들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자신들을 닮은 아이들을 낳아 놀이공원에 가기도 하고 연을 날리기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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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평생을 살면서 행복한 순간만 있을까? 가장이 되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중년의 하루에게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쉼 없이 반복되는 일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족의 무게 속에 마냥 행복했던 하루의 얼굴에선 세월의 흔적과 고난이 역력했다. 순탄하지 않은 세상살이는 사랑하던 갑순이와 하루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하루는 갑순이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던 하루는 쓴 물을 삼키며 “저 때 저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며 뒤늦게 한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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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들은 살아갔다. 장성한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손주·손녀를 보며 행복했으며, 그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함께 했다. 굴곡지고 탈 많은 순간도 있었지만, 갑순이와 단둘이 남은 하늘 아래서 둘은 서로를 의지했다.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갑순은 결국 하루의 곁을 먼저 떠나버리고 만다. 꿈에서마저 아내가 떠나버리자 노인 하루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홀로 남아 투박하게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하루에게 세 명의 검은 옷은 입을 사람들과 아내 갑순이 다시 나타난다. 다시 나타난 아내를 보며 눈물 가득한 행복한 웃음을 짓는 하루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그들과 함께 사라진다. 그렇게 노인 하루의 인생 구경은 끝난다. 세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무리는 저승사자들로 홀로 외롭고 고독한 그리고 힘겨운 노년을 보내는 노인 하루에게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기억을 보여주며 그를 위로하고자 했던 것 같다. 우리의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구겨지고 주름진 인형을 통해 다시 돌아보는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공연인 <이야기 하루>는 사실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작품이다. 하루라는 한 사람을 소재로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황마다 필요한 최소한의 대사만이 쓰이는, 표정이 부재한 종이인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비언어 이미지극이기에 아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극에 참여시키고, 곳곳에 아이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과 장치를 배치한 것은 물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극을 가득 채우는 국악과 섬세한 종이인형의 움직임이 효과가 있었다. 시작 전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며 천방지축이었던 아이들은 이러한 노력 끝에 연극과 교감하고 소통이 되었는지, 극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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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나무의 <이야기 하루>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소재였고, 비언어 이미지극이라는 낯선 개념이었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야기 하루>는 아이들에게 종이인형을 통해 꿈과 과거를 여행한다는 상상의 즐거움을 주었고, 어른들에게는 낡고 구김이 많은 인형들과 노인 하루를 통해 유년시절의 향수와 부모의 인생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기에 사실은 모두와 주파수를 맞춘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 시민기자 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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