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없는 해외여행’, 인천의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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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아무리 작은 섬도 그 자체로 하나의 왕국이다. 그래서 섬으로의 여행은 여권 없는 해외여행이다! 잠깐만 배를 타도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다. 인천에는 168개나 되는 섬이 있고, 게다가 섬들은 수도권의 안마당이나 다름없다. 과거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는 위성 도시 인천의 문화정체성 확립에 방해자였다. 하지만 인천 섬들의 가치가 재발견된다면 서울은 오히려 인천의 든든한 후원자로 바뀌고, 서울을 비롯한 2,500만 수도권 인구의 일상 탈출 욕구는 인천 섬 여행 문화를 향유할 수요자 풀(Pool)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숨겨진 인천 섬 왕국의 유물들을 발굴해 내는 일이야말로 인천 가치 재발견의 중요한 진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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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시는 2조 3230억 원이란 거액을 투입해 인천 168개 섬들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섬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관(官) 주도와 개발 위주 사업이 아닌 주민 주도의 자연경관을 최대한 보존해 섬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을 한다니 환영할 일이다. 인천시는 4가지 추진전략을 세우고 모든 섬을 1시간 내 접근이 가능하도록 백령도 공항 건설이나 영종도 제2연안여객터미널 확충 등 시설투자는 물론 인천의 섬들을 매년 12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애인(愛仁)섬’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 6차 산업을 육성해 섬의 경제기반을 조성, 주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선착장 주변 문화 공간 확충과 해수담수화 시설, 신재생 에너지 자립 섬 조성사업 등도 계획하고 있다.

6차 산업 기반 조성을 통한 주민 소득 증대나 신재생에너지 자립 섬, 해수담수화를 통한 물 문제 해결 등의 인프라 구축은 섬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들이다. 하지만 섬 관광의 측면에서 본다면 인천시의 섬 프로젝트는 일견 우려스러운 점도 적지 않다. 섬 문화 가치 발견보다는 시설투자와 물량주의 관광에 더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관광객의 무한 증가가 꼭 섬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인천의 이름난 섬들은 주말이나 성수기면 너무 많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섬에 돈 한 푼 쓰고 가지 않는다. 섬의 수용 역량을 초과하는 관광객 유입은 오히려 섬에 독이 된다. 그래서 관광객을 무한정 늘리는 것보다는 관광객 차량 입도금지와 입도객 총량제 등을 도입해 재방문율을 높이기나 ‘체류시간 늘리기’처럼 전략을 수정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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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접근성 개선도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숙원 사업이다. 하지만 가깝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멀다고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가까우면 그만큼 일찍 돌아보고 빠져나간다. 먼 것이 매력일 수도 있다. 부러 오지를 찾아다니는 세상 아닌가. 그래서 섬의 접근성 개선을 위해서는 제2여객터미널 확충 등을 통한 섬 여행 시간 단축보다는 전천후 여객선 도입, 야간운항 허용과 시설지원, 여객선 공영제, 해사안전법 개정 등을 통한 안전성과 접근성 확보로 정책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백령도 같은 원도의 경우 소형공항 건설은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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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 프로젝트는 4개의 추진 전략이 있지만 결국 핵심은 섬 관광업의 활성화를 통한 주민소득 증대다. 그런데 아쉽게도 인천 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가치 재발견 전략이 부족해 보인다. 가깝다는 것 말고도 왜 인천 섬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있어야 섬 관광도 지속가능하다. 섬 선착장 주변 문화 공간 확충 같은 시설 투자보다 문화가치 재발견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168개 애인 섬 만들기’ 같은 관광객 유인 전략은 실패한 여수의 ‘365 생일 섬 프로젝트’만큼이나 추상적이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요즘 세계의 여행 추세는 에코투어리즘이 대세다. 변화하는 시대 트렌드에 맞는 컨셉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환경 파괴로 논란이 되고 있는 굴업도는 리조트 개발 포기를 선언하고 ‘인천 바다의 제주, 화산섬 굴업도’라는 컨셉의 에코뮤지엄 조성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 과거 잘못된 개발로 파괴된 섬의 자연환경을 복원하는 것도 섬의 가치를 재발견해 인천 섬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의 하나다. 논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황금갯벌을 없애고 간척 사업을 했으나 논에 물을 댈 담수호가 소금 호수가 되는 바람에 황무지로 버려져 있는 백령도의 1백만평 간척지와 40만평의 백령호를 역간척을 통해 다시 갯벌로 환원시킨다면 어떨까. 천혜의 비경에 시너지 효과를 더한 백령도는 분명 생태 섬 관광의 메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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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천의 와덴해 섬, 랑어욱이 역간척으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랑어욱은 1923년부터 시작된 간척으로 섬이 황폐화됐는데 1986년, 역간척을 택했다. 10년이 지나 갯벌 생태계가 복원되자 랑어욱은 생태관광의 메카가 됐다. 덕분에 독일에서 가장 가난 했던 섬마을은 생태관광만으로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마을 중 하나가 됐다. 인천시가 이런 사례에 주목해 섬 프로젝트를 보완한다면 고맙겠다. 그것만이 눈앞의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자원으로서 인천 섬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글 / 강제윤(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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