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섬과 바다에서 평화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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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달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전쟁은 그 자체로도 비극이었지만 전쟁 후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긴장과 대립도 큰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긴장과 대립의 중심에 인천의 섬과 바다가 있다.

인천의 섬과 바다는 한반도 긴장과 대립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뉴스에도 종종 등장하는 북방한계선, NLL이 지나는 공간이 바로 인천의 해역이다. 남북관계나 한반도 정세에 난기류가 흐르면 가장 먼저 긴장감이 높아지는 곳이다. NLL에서의 갈등은 교전과 희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99년의 1차 연평해전, 2002년의 2차 연평해전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2차 연평해전에서는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했다. 두 차례 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의 사망자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 2010년 3월에는 백령도 해상에서 우리 해군의 천안함이 폭침되어 46명의 젊은 생명들이 스러져 갔다. 같은 해 11월에는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여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인천의 바다는 분단이 만들어낸 비극의 공간이었다.

평시에도 백령도, 연평도 등의 서해5도나 강화도, 교동도에 가면 냉혹한 분단의 현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평소에 남북분단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북한과의 서해 접경지 섬들의 해안을 따라 설치된 차가운 철책선과 경비 초소 그리고 바다 넘어 북한 땅을 보면 남과 북의 분단과 대립이라는 상황이 가슴속에 다가온다.

인천의 섬에는 분단의 역사를 몸으로 지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실향민들이다. 특히 교동도에는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한 채 한 맺힌 세월을 보내야 했다. 분단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세상을 떠난 실향민도 많다. 현재 생존한 고령의 실향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인천의 섬과 바다는 오늘날만이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서도 전쟁과 긴장, 대립의 공간이었다. 강화도는 대몽항쟁,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에서 손꼽히는 대제국, 열강들의 침입을 직접 겪었던 곳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고, 문화재의 약탈과 파괴도 일어났다. 한편 교동도는 고려시대 왜구의 잇따른 침입에 고통받아야 했다.

인천의 섬과 바다는 전쟁과 긴장, 대립 그리고 그로 인한 많은 사람의 희생과 고통이 함축된 공간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 공간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바로 평화이다. 전쟁과 대립, 긴장을 넘어 미래로 나가는 평화의 공간으로서 인천의 섬과 바다를 바라보아야 한다. 인천의 섬과 바다를 찾는 많은 사람이 전쟁과 분단의 역사적 공간을 체험하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인천의 섬과 바다는 한반도에서는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위에서 손을 맞잡는 모습은 우리에게 크나큰 감격을 안겨주었다. 당장이라도 완전한 평화의 시대가 찾아올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정에서 실제 많은 어려움에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우려, 실망, 허탈의 감정이 교차할 것이다. 분단 이후 긴장, 갈등, 대립으로 점철된 기나긴 세월을 생각해보면 평화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평화를 향한 인내와 의지가 필요한 시기이다.

한반도 평화를 향해 살얼음판 같은 길을 가는 상황에서 인천의 섬과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부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정이 꾸준히 이어지고, 그와 함께 인천의 섬과 바다가 긴장과 대립을 넘어 평화와 화합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사진 안홍민(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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